조선후기시대와 한문학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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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조선 후기 시대와 한문학

2. 박지원

2.1. 연암의 생애

2.2. 연암의 사상

2.3. 연암의 문체

2.4. 연암의 작품

<참고문헌>

본문내용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 후기는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 제 1기 이다. 중세문학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과 근대문학을 이룩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서로 얽혀 있으므로, 그 시기를 중세문학의 연장이라고 보는 것은 잘못이고, 근대문학의 시발이라고 해도 무리가 있다.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는 단순한 과도기가 아니고, 그 나름대로의 뚜렷한 특징을 가진 독자적인 시기이다.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3』, 지식산업사, 2000. p.9

임진왜란․병자호란은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가 시작될 수 있게 하는 계기였다. 전란을 겪으면서 이룩된 각계각층의 수많은 기록과 증언, 술회와 상상은 문학사가 새로운 단계로 들어서는 조짐을 나타내주었다. 그때까지의 문학은 일정한 규범에 따라서 지배층의 재능과 여유를 자랑했다. 이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계속 나타났어도 대세를 바꾸어놓기 어려웠다. 하층에서는 생활의 필요성과 직결된 절실한 하소연을 했어도 작품으로 정착되지 못했으며, 문학으로 평가되지 않았다. 그런데 엄청난 시련이 닥치자 그동안의 관습이 그대로 유지될 수 없었다. 전란을 겪으면서 보고, 느끼고, 통탄한 바를 나타내는 공동의 과제가 제기되어 상하층의 간격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좁아졌으며, 기존의 표현방식은 규범적인 것일수록 더욱 불신 받아야만 했다. 임진왜란․병자호란의 충격은 조선 전기의 사회와 문화가 이미 지녔던 모순을 격화시켜 상하관계의 질서를 뒤바꾸어놓고, 현실인식의 새로운 표현상식을 개척하면서 문학에서도 변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참고문헌
김지용, 『박지원의 문학과 사상』, 한양대학교출판부, 2000.
이가원, 『한국한문학사』, 보성문화사, 1982.
이병수, 『한국한문학사』, 반도출판사, 1991.
이지호, 『연암 박지원 글쓰기의 방법론 연구 : <열하일기>의 대상해석을 중심으로』,서울대 학교 대학원 , 1996.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3』, 지식산업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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