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와 인치 - 법의 논리와 도덕의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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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와 인치 - 법의 논리와 도덕의 논리
Ⅰ. 유가의 통치 이념
1. 유가는 법치를 반대하는가? - 예치가 지닌 도덕적 성격과 법적 성격
공자(B.C551~479)는 예가 무너지는 춘추시대의 상황 속에서 예를 다시 회복할 것을 주장한다. 공자는 "예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말하고, 또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에서도 각국의 군주들이 토지 쟁탈전을 멈추고 예를 준수할 것을 요구한다. 나라를 예로써 다스린다고 할 때, 이러한 의미의 예는 어떤 성격의 통치 규범일까? 유가가 법에 반대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예에 의한 통치는 도덕에 의하 통치로 이해되며, 법에 의한 통치와는 전혀 별개라고 간주된다. 그러나 "예를 어기면 곧 형벌의 적용을 받게 된다"는 예기의 구절에 비춰 본다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법은 행위규범과 강제규범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는 중층구조이다. 행위규범은 사회 생활에서 인간의 행위를 해야 한다, 하면 안된다는 도덕적 기준점을 제시한다. 반면 강제규범은 사회의 구성원이 금지 사항을 위반할 때 공권력에 의해 강제 집행을 하며 그 위반의 대가로 처벌을 내린다. 그런 점에서 법은 둘 모두를 성격으로 가진다. 반면 도덕은 행위규범의 단층구조만을 가진다. 따라서 도덕이 법과 구분될 수 있는 가장 큰 차이점은 공권력에 의한 강제집행력의 유무에 있다. 중요한 건 유가의 예치에는 이러한 행위규범과 강제규범이 모두 들어있다는 것이다. 다음의 몇가지 사례는 강제규범을서의 예의 성격을 드러내 준다. 맹자(B.C372~289)는 "제후가 한번 입조하지 않으면 그 지위를 떨어뜨리고, 두번 입조하지 않으면 그 영토를 깎고, 세번 입조하지 않으면 군대를 동원하여 내쫓아 버린다"고 되어 있고 또, 예기에서는 "예제를 변경하고 음악을 바꾸는 자는 순종하지 않는 자이다. 순종하지 않는 자는 귀양에 처한다. 제도와 의복을 바꾸는 자는 배반자이다. 배반자는 군사력으로 토벌해 버린다"고 적고 있다. 이는 예가 단순한 도덕 차원의 행위규범이 아니라 형사적 처벌이 뒤따르는 강제규범의 기능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예가 행위규범과 강제규범의 중층을 가진다면 이는 결국 예가 법과 동등한 성격과 기능, 효력을 가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의 상당히 많은 조목들이 법적 성격을 지니고 강제규범으로 기능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책 ‘유가사상의 사회철학적 재조명’. 1998/이승환. (171~177)
2. 유가의 자연법주의
유가의 예가 법의 성격을 지니고 기능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유가는 예와 도덕의 일치를 확신하는 점에서 자연법주의의 특징을 띈다. 예기에서는 "예는 하늘의 도를 이어받아 인간의 정을 다스리는 규범이다"라고 적고 있다. 천도는 우주의 근본 원리로서 자연계의 규율성과 인간 행위의 규범성을 총망라한다. 인간 세계의 법은 자연계의 보편적 원리를 따라야 한다. 공자와 동시대 사람인 자산은 "예는 하늘의 길이고 땅의 준칙이며 또한 사람이 행해야 할 바"라고 하며 인간 사회의 규범을 자연계의 보편 원리로부터 도출했다. 맹자는 인간이 가진 도덕적 본성으로부터 예의 타당성을 도출해 낸다. 맹자의 자연법 사상은 악법은 법이 아니고 나쁜 임금은 임금이 아니라고 본다. 그의 역성혁명론은 아무리 임금이라도 도덕적으로 용납받지 못할 폭군이라면 실정법을 어겨서라도 타도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여기서 인간이 만든 실정법 위에 이를 지도하는 도덕적 원칙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순자 역시 "걸과 주는 천하의 도덕원칙을 무시하였으므로 탕과 무가 이들을 제거한 것은 국가원수 시해가 아니라 처벌이다"고 하며 천도인 도덕원칙을 실정법을 어겨서라도 수호해야 한다는 맹자와 뜻을 같이 했다. 한마디로 유가의 법사상에 의하면 실정법은 반드시 도덕적 원칙의 지도를 받아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실정법을 위반하는 일이 있더라도 도덕적 원칙은 반드시 관철되어야 하는 자연법 우위에 기반하고 있다. 핵심은 유가의 통치(예치)는 단순히 도덕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도덕과 천도에 의거한 법을 기반으로 하는 통치라는 것이다. 책 ‘유가사상의 사회철학적 재조명’. 1998/이승환. (177~183)
3. 유가의 ‘덕치’ 이념 - 유가에서의 ‘형벌’
유가의 예치는 법치와 무관하거나 배타적인 통치이념이 아니라, 실정법은 인간의 본성에서 도출된 도덕원칙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고 보는 자연법주의라고 할 수 있다. 도덕을 실정법보다 우위에 놓는 유가의 입장은 자연스럽게 덕치의 주장을 연결된다. 덕치란 지도자의 도덕적 감화력에 의해 백성을 끌어모으고, 백성을 교화시켜 범죄나 분쟁이 없는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려는 통치 방법이다. 지도자가 도덕적 모범을 보일 때 백성들도 사심없이 양보하고 협동하게 될 것이라는 게 덕치사상의 핵심이다. 이러한 덕치사상은 형벌에도 적용된다. 공자는 죄질과 형벌이 서로 적정하게 부합될 것을 주장한다. 이를 죄형상부주의라고 할 수 있다. 공자는 "형벌이 적정하지 않으면 백성들은 손발조차 마음대로 둘 곳이 없게 된다"고 했다. 또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가르치지도 않고, 죄를 지었다고 해서 곧바로 사형에 처하는 것은 백성을 학살하는 일이다"고 하여 형벌에 앞서 교화가 선행되어야 함을 주장했다. 공자는 정치의 방법을 묻는 계강자에게 "어찌 사형만을 일삼는 공포정치를 하려 하는가"하고 힐난하면서, "형벌에 의한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하며 중벌을 남발하는 공포정치를 비판한다. 중형과 엄벌에 의한 공포정치 대신, 공자는 너그러움과 은혜를 베풀 것을 권한다. "정치가 너그러우면 백성이 모여들게 되고, 임금이 은혜로우면 백성 부리기가 한결 쉬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자는 법의 시행과 형의 적용에 있어서 너그러움만을 주장하지 않는다. 너그러움과 사나움을 적절히 조화시킬 것을 강조한다. "정치가 너무 너그러우면 백성이 태만해지고, 너무 태만해질 때에는 사나움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정치가 너무 사나와지면 백성이 쇠잔해진다. 백성이 쇠잔해지면 너그러움으로 베풀어야 한다. 정치는 이렇게 조화롭게 해야 하는 것이다." 유가는 형벌의 기능과 목적에 관해서 특별예방주의를 표방한다. 특별예방주의는 형벌을 개개의 범인에 따라 개별화하여 구체적인 동기와 상황을 참착함으로써 범죄인의 성격개선에 알맞는 형을 부과할 것을 주장한다. 공자가 노의 탈영병에게 형벌 대신 상을 준 일도, 부친의 절도죄를 은폐한 자식을 칭찬한 일도 이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공자는 "먼저 가르치지도 않고 죄를 범했다고 사형에 처하는 것은 학살이나 다름없다"고 하고, 또 "법령으로 통제하고 형벌로써 다스린다면 백성은 법망을 뚫고 요행히 형을 면함을 수치로 여기지 아니한다. 그러나 도덕으로 인도하고 예로써 다스린다면 수치심도 알게 되고 바르게 될 것이다"고 하여, 사람의 마음을 도덕적으로 교화시켜 심리적으로 수치심과 염치를 알게 하여 범죄의 동기 그 자체를 없애버릴 것을 주장한다. 따라서 공자는 아무리 법이 잘 정비되어 있어도 개개인이 도덕적으로 교화되지 않으면 실질적인 범죄행위는 근절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책 ‘유가사상의 사회철학적 재조명’. 1998/이승환. (184~189)
4. 유가의 인치 이념 - 유가의 법해석
지도자의 도덕적 감화력에 의해 백성을 교화시키려는 유가의 덕치 이념은 인치로 구체화될 수 있다. 인치란 덕이 있는 사람에 의한 통치를 말한다. 덕치라는 개념이 통치 방법으로서 도덕교화의 과정에 주안점을 둔다면 인치는 지도자의 도덕적 자질-품성에 착안하는 용어이다. 그러나 실질 내용에 있어서 덕치와 인치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공자는 정치를 묻는
계강자에게 "정치란 바로잡는 것이다. 그대가 솔선수범하여 몸을 바르게 한다면 누가 감히 바르게 행하지 아니하겠는가?"라며, 윗사람의 몸가짐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백성이 행할 것이라 했다. 이처럼 윗사람이 도덕적 모범을 보일 때 아랫사람도 본받게 된다는 유가의 덕치 이념을 구체적으로 명칭지은 것이 인치이다. 오늘날처럼 입법-사법-행정이 분리되어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법을 제정하도록 되어 있는 상황에서 도 당리당략을 위한 날치기가 끊이지 않는 마당에, 그 당시에는 오죽했을까. 입법권을 장악하고 있는 군주의 도덕적 인격에 기대를 거는 유가의 입장이 매우 현실적으로 현명한 판단인지도 모른다. 유가의 인치 이념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백성이 전제군주에게 거는 도덕적 기대를 나타낸다. 유가는 법해석에 있어서 판관이 제정된 법조문의 구속을 받지 않고 판관 자신의 도덕적 판단에 의해 자유롭게 재판하도록 자유재량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본다. 공자가 성문법 대신 불문법을 고집한 일이나 전장에서 도망친 병사와 부친의 절도죄를 은폐한 자식에게 벌 대신 상을 준 고사는 법해석에 있어서 공자의 자유재량주의의 입장을 잘 나타낸다. 책 ‘유가사상의 사회철학적 재조명’. 1998/이승환. (189~191)
그러나 이러한 인치적 유가의 통치 특성은 국가의 기강과 예법의 흥망은 전적으로 통치자, 특히 군주 개인의 인품과 덕성에 달려있는 것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위험할 수 있다. 모든 군주들이 요, 순, 문왕, 무왕, 주공과 같은 이상적인 성현이 되기를 바라며, 그렇게 성군이 존재해야 비로소 예치가 실현되고 덕화가 실천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치 사상은 한편으로 오직 혈연관계에 의해서만 사람을 썼던 기존의 세습제를 극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보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결국 법치주의를 경시하고 군주 개인을 법 위에 위치시킴으로써 군주의 독재적 전제주의를 합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여지도 많다. 논문 ‘중국의 비법치주의 전통에 대한 유가사상의 영향’. 2004/소준섭. (256)
Ⅱ. 법가의 통치 이념
1. 법가의 성립 배경과 성격
한비자(B.C280~233)는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법가의 대표이다. 한비자의 나라 한은 당시 약소국들 중 하나였으며, 강대국인 진과 국경을 접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남쪽의 강국인 초나라의 압력을 받기도 했다. 국력이 쇠약해진 한나라는 진나라의 침략으로 영토의 대부분을 상실한 지경에까지 갔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한비자는 한나라 왕에게 책과 의견을 적극적으로 올리면서 법가 사상을 구축했다. 또한 당시 전국시대는 이러한 법가적 통치제도가 최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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