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여大餘김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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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大餘) 김춘수
Ⅰ. 생애
대여(大餘) 김춘수는 1922년 11월 25일, 남망산 조각 공원이 있는 통영 동호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김영팔(金永八)씨와 어머니 허명하(許命夏)씨의 3남1녀 중 장남 이었으며, 근동의 대지주였던 할아버지의 손자로서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통영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기중학교와 니혼 대학에서 공부 했지만, 그다지 평온한 학창시절을 보내지는 못했다. 경기 고등학교 재학 중에 학급담임이던 일본인 교사가 싫어 졸업을 몇 달 앞두고 자퇴를 했고, 이후 동경 니혼 대학 예술학부에 입학하게 되고 예술과 전문부에 다니던 옛 벗을 만나 그곳 대학이 4년 수료자를 위해서 전문부에 예과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간단한 테스
트를 거쳐 그 대학 창작과에 입학을 한다. 이때 그의 문학의 첫 싹을 틔운 때라 할 수 있겠다. 이 무렵 그의 문학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게 되는 릴케와 운명적으로 만난다. 김춘수는 릴케와의 만남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라는 시인의 일역(日譯) 시집이었다. 이시는 나에게 하나의 계시처럼 다가왔다. 릴케를 통하여 나는 시를 (그 존재를) 알게 되었다. 마침내 시를 써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김춘수 전집2』P.358, 문장사, 1982
1948년부터는 마산에서 근무했고, 첫 시집 <구름과 장미>를 발표 했다. 1949년에는 천상병 시인의 담임을 맡아 그의 시 ‘강물’을 월간 문예지에 추천 했고, 또 수업 외에도 연극 연출을 맡아서 ‘호동 왕자와 낙랑공주’등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1959년부터 대학 강단에 서기 시작 했다. 그의 강의는 언제나 열강 이었고, 국문학과 전공 강의인 <시론>시간에는 학년 정원의 3배를 웃도는 수강생으로 북적였으며 늘 시간이 끝나는 것도 모르고 강의를 계속해 다음 시간의 교수를 복도에 오래 세워 놓기도 했다고 한다. 첫 시집 <구름과 장미>이후, 1952년에 김춘수는 ‘꽃’을 발표한다. 이때부터 그의 시들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다.
김춘수는 시인으로서는 뜻밖의 경력으로 1979년부터 1981년까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 때의 활동에 대해 김춘수는 “내 의지가 아니었던 인생의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본인이 원하지 않았던 자리였지만, 제 5공화국 출범과 동시에 전국구 국회의원이 되어 정계로 진출한 뒤 오해와 지탄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내게 있어 시는 최선의 도덕적 결백을 위한 윤리요, 의지라고 말할 수 있다면, 정치란 최선을 우선하다 차선, 삼선의 여지로서 운영되는 현실에 대한 나의 참여이다.” 라고 자신의 입지와 견해를 밝혔다.
미당 서정주가 준 아호 ‘대여(大餘)’의 의미처럼 ‘서두르지 않는 큰 그릇의 시인’으로 산 그는 시인이요, 교수요, 국회의원이기 이전에 조금은 어리숙하고 세상물정에 어두운 한사람의 인간이었다. 2004년 11월 여든의 나이로 세상과 이별하였다.
동인지로는 1946년『로만파(魯漫派)』(조향, 김수돈), 1956년『시 연구』(유치환, 김현승, 송욱, 고석규)를 발간한 바 있으며, 주요저서로는 『구름과 장미』(1948년)/ 『늪』(1950)/ 『기(旗)』(1951)/ 『인인(隣人)』(1953)/ 『꽃의 소묘』(1959)/ 『부다페스트의 소녀의 죽음』(1959)/ 『타령조 기타(打令調 其他) 』(1969)/『처용(處容)』(1974)/『김춘수 詩選』(1976)/ 『남천(南天)』(1977)/ 『비에 젖은 달』(1980)/ 『김춘수 全集』(1982)/ 『처용이후(處容以後)』(1982)/ 『김춘수 시집』(1986)/ 『너를 향하여 나는』(1988) 이 있다.
Ⅱ. 작품세계와 변모과정
김춘수는 60년이라는 시력(詩歷)을 축적하고 있는 시인으로 그의 작품들이 매우 방대하여 논자들에 의해 시기 구분에 있어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40년대 습작기, 50년대 언어와 존재 탐구의 시기, 60-80년대 무의미의 실험기, 그 이후에는 기존의 시작 방식에 대한 반성적 태도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시적 모색의 시기로 각각 규명되어 왔다. 여기서는 김춘수의 언급 “내 개인 입장에서 볼 때 이십여 년 실험적 서정시를 써 오다 보니까 내 시가 막다른 데에 와 버렸다 이거죠. 내가 서정시라는 한 장르를 개인적으로 의도적으로 끌고 와 보니까, 방법론적인 면에서 자승자박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사바다> 이후 더 이상 나가려 하니 매너리즘이 오고 비슷비슷한 것이 나오니까 일보 후퇴할 필요가 있다는 거지요. <처용단장>, <타령조> 그 정도까지 후퇴해서 시를 쓸 수도 있겠죠”(조정권·김추수, 『생리와 방법』, 『문학사상』, 1985.10, p119
을 고려한 <의미→무의미→의미>라는 세 단계의 구분으로 나누어 살펴보겠다.
1. 의미의 시 (초기 ~ 1950년대)
김춘수의 초기시는 릴케의 영향을 입고 있다. 릴케와 관련된 평론 <릴케와 천사>, <릴케적 실존> 등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97년에는 자전소설 <꽃과 여우>를 간행했다. 김춘수는 사물의 사물성을 집요하게 탐구했다. 모든 것이 인식의 대상으로서의 사물이고, 그의 언어는 인식을 위한 연장이다. 그가 인식의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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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최라영(2004), 『김춘수 무의미시 연구』, 새미
오세영(2005), 『20세기 한국시인론』, 월인
문혜원(2007), 『한국 근현대 시론사』, 역락
유재천(2005), 『경남 문인 연구, 경남의 시인들』, 박이정
정민구(2007), ‘김춘수 시의 무의미성 연구’, 전남대학교 대학원
박인수(2004), ‘김춘수 시의 변모양상 연구’, 관동대학교 교육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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