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여(大餘) 김춘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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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대여(大餘) 김춘수론
1. 작가의 생애와 활동
대여(大餘) 미당 서정주가 준 아호로 ‘서두르지 않는 큰 그릇’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김춘수는 1922년 11월 25일 경남 통영에서 父 김영팔씨와 母 허명하씨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인근에서 알아주는 대부호로서 조부는 고을원을 지낸 만석꾼이었으며 그의 아버지 또한 천석꾼의 지주였다. 때문에 김춘수 역시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는 통영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기중학교에 입학하였는데, 이는 그의 부친의 영향이 컸다. 그의 부친은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서울로 이사를 할 정도로 교육열이 강한 인물이었으며 그 결과 3형제가 모두 당시 명문으로 알려진 경기중학교를 다녀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그 후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한 김춘수는 서울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시기를 보냈으며, 1939년 경기 고등학교 재학 중에 자신의 담임이던 일본인 교사가 싫어 졸업을 몇 달 앞두고 학교를 자퇴하고 동경으로 건너가게 된다. 입시학원에 있던 시절에 헌책방에 들어갔다가 릴케의 시집을 사게 되었고, 시집을 통한 릴케와의 만남은 김춘수가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 김춘수는 릴케와의 만남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라는 시인의 일역(日譯) 시집이었다. 이시는 나에게 하나의 계시처럼 다가왔다. 릴케를 통하여 나는 시를 (그 존재를) 알게 되었다. 마침내 시를 써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김춘수 전집2』P.358, 문장사, 1982
이후 동경 니혼 대학 예술학부에 입학하게 되고 예술과 전문부에 다니던 옛 벗을 만나 그곳 대학이 4년 수료자를 위해서 전문부에 예과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간단한 테스트를 거쳐 그 대학 창작과에 입학을 한다. 그러나 1942년 일본 천황과 총독 정치를 비방했다는 혐의로 퇴학당하고 6개월간 유치되었다가 서울로 송치되었다. 이후 금강산 장안사에서 요양하다가 1944년 부인 명숙경씨와 결혼하였고 1945년에는 통영에서 유치환, 윤이상, 김상옥, 전혁림, 정윤주 등과 통영문화협회를 결성해 근로자를 위한 야간 중학과 유치원을 운영하면서 연극, 음악, 문학, 미술, 무용 등의 예술운동을 전개, 극단을 결성해 경남지방 순회공연을 하기도 했다.
해방 후 1946년 통영중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해방 1주년 기념 사화집>에 시 「애가」를 발표하였고, 조향, 김수돈과 함께 동인 사회지 <노만파>를 발간하였으나 3집 발간 후 폐간되었다. 그리고 1948년 8월 첫 시집 <구름과 장미>를 발표했다. 1년 뒤 마산중학교로 전근을 갔으며 1949년에는 천상병 시인의 담임을 맡아 그의 시 ‘강물’을 월간 문예지에 추천 했고, 1951년까지 근무하는 동안 제 2시집 <늪>과 제 3시집 <기>를 발표한다. 그리고 1952년 대구에서 설창수, 구상, 이정호, 김윤성 등과 시 비평지 <시와 시론>을 창간하고 창간호에「꽃」과 함께 첫 산문 「시 스타일론」을 발표하며 주목을 받게 된다. 그리고 1956년 5월 유치환, 김현송, 송욱, 고석규 등과 시 동인지 <시연구>를 발행하였으나 고석규의 타계로 창간호로 종간되고 만다. 이후 여러 시집을 발표하다가 1960년에는 마산의 해인대학(현 경남대학교 전신) 조교수로 임용된 데 이어 1961년에는 경북대학교 문리대 전임 강사를 거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임용되어 1978년까지 재직하면서 1969년 시집 <타령조.기타>, 1972년 시론집 <시론>, 1974년 9월 시선집 <처용>, 1976년 시론집 <의미와 무의미>, 시선집 <김춘수 시선>, 1977년 시집 <꽃의 소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등을 발표하면서 왕성한 시작 활동을 했으며 1966년에는 경상남도 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김춘수는 시인으로서는 뜻밖의 경력으로 1981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시인 김춘수, 소설가 김동리, 문학평론가 조연현, 수필가 조경희 등이 앞 다투어 군부독재정권을 미화하는 글을 남겼다. 그 결과, 김춘수는 11대 민정당 전국구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 사건으로 김춘수는 서정주 등과 함께 많은 비난을 받고, 그 시적 순수성마저 비판받는다. 이때의 활동에 대해 김춘수는 “내 의지가 아니었던 인생의 아이러니”, “내게 있어 시는 최선의 도덕적 결백을 위한 윤리요, 의지라고 말할 수 있다면, 정치란 최선을 우선하다 차선, 삼선의 여지로서 운영되는 현실에 대한 나의 참여이다.”라고 자신의 입지와 견해를 밝혔다.
이후 방송심의위원회 위원장 및 한국시인협회 회장, KBS 이사 등을 지냈으며 1982년에 시선집 <처용이후>, 시집 <김춘수 전집>등을 발표하면서 시작 활동에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리고 2004년 8월 기도폐색으로 쓰러져 성남시 분당구 소재 서울대학병원에서 지병으로 치료를 받아오다 같은 해 11월 29일 82세의 나이로 작고하였다.
2. 시적 경향의 변모
김춘수는 60년이라는 시력(詩歷)을 축적하고 있는 시인으로 그의 작품들이 매우 방대하여 논자들에 의해 시기 구분에 있어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여기서는 그의 시 표현 형식을 바탕으로 존재에 대한 탐구와 관념의 색채가 짙은 초기의 의미시적 경향, 이미지를 관념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이미지를 탐구하며 시에서 관념과 사상 등을 철저히 분리시키는 중기의 무의미시적 경향, 그리고 다시 의미시로의 회귀적 색채가 나타나는 후기의
의미시적 경향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1) 초기의 의미시적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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