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사회 연구 해녀문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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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해녀는 일반적으로 “산소공급 장치 없이 무자맥질하여 해산물을 채취하는 ‘물질’을 직업으로 하는 여성”을 말한다. 그러나 해녀들 스스로는 자기들을 잠수(潛嫂)나 잠녀(潛女)로 부르는 사람이 많기에, 잠수나 잠녀는 행위자(내부자)의 용어이며, 해녀는 관찰자(외부자)의 용어라 할 수 있다(유철인, 1998:315). 전 세계에서 해녀는 일본과 제주 두 군데 밖에 없다고 알려지고 있기에,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왔다.
바다(위 또는 속)에서 하는 노동은 육지에서 하는 것보다 힘들다. 그래서 왜 이렇게 힘든 노동을 일반적으로 육체적 힘이 남성보다 약한 여성들이 담당하는지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따져 들어가 보면 중세 제주사회에서의 포작인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해녀의 기원에 대해 권귀숙(1998:342)은 해녀를 비시간적이거나 ‘전통’의 산물이라기보다는 ‘근대’의 산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1) 일제시기에 들어 도드라진 해산물의 ‘상품화’는 밭일보다 ‘물질’의 가치를 상승시켰고, 2) 일제시기와 4.3에 이은 제주의 특수한 현대사적 맥락에서 많은 남성노동력이 도외로 이동하여, 남아있는 노동력은 여성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주장에 동의한다. 또한 위와 같은 요인들이 변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에는 해녀가 쇠퇴하고 있다고 한다. 즉, 해산물 생산방식이 전통적인 채취(해녀)에서 산업화된 양식으로 변화했고, 육상작물 중 감귤이라는 대단히 가치가 높은 환금작물의 재배가 그러한 상황의 변화라고 꼽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점점 들어들고 있는, 보다 명확히 표현한다면 신규 물질 참여자가 전무한 상황에서, ‘해녀’는 제주의 특수한 현대사와 근대화 과정에서 생겨났던 20세기의 독특한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한 지역의 독특한 자연환경과 그를 둘러싼 사회적 배경에서 생겨난 노동자로서 해녀의 문화를 살펴보려 한다면, 해녀 그 자체의 삶의 방식과 더불어 그들을 둘러싼 다른 사회집단뿐 만 아니라, 그들 개별과 또 다른 인간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를 동시에 살펴봐야 한다.
해녀들은 그들의 성취량에 따라 상군-중군-하군으로 나누며, 그 지위는 ‘불턱’에서의 자리와 바당밭에서의 노동장소 구분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공동으로 작업하지만, 채취량은 전부 개별적인 몫이다. 이는 집단 내에서 상호의존적이면서도, 개별적으로는 경쟁적인 해녀의 모습이다. 또한 바당밭, 즉 그들의 노동장소이자 가치를 획득하는 자원의 원천에 대해서는 공동으로 관리하고, 인근의 다른 해녀집단과의 소송도 불사한다.
해녀들의 생산한 수산물은 화폐로 교환되어, 그들의 가정과 지역사회에 커다란 경제적 기여를 했다. 그들은 밭을 사서 가세를 확장하거나, 동네의 학교 또는 마을회관 설립에 자금을 모아 쾌척하였다.
해녀들은 해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고, 제주도 해안마을에서의 여성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부여받았으며, 기존의 성권력 구조 아래에서 남성의 지배를 일정정도 받았다.
해녀에 대한 신화화는 제주 여성들의 삶의 방식을 사실 그대로 그리지 않고, 어떠한 가치를 전제하고 분석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오히려 이로 인해 제주 남성들의 모습이 왜곡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게으른 제주남자들과는 결혼하면 안 된다”라는 말이 육지사람들에게 통용되고 있는 것은 이와 관련 있을 지도 모른다.
한림읍과 한림읍 주민자치위원회에서 해녀 학교를 열었고, 수 십명의 사람들이 참가했다. 어떤 이는 육지에서 주말마다 비행기를 타고 오기까지 했다. 그러나 해녀학교를 통해서 사라져가는 해녀를 되살리겠다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고, 또 이렇게 함으로 인해 해녀가 다시 부활할지도 모르겠지만, 그저 새로운 관광상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질에 대한 지식은 전부 귀동냥을 통하거나, 몸으로 체험해서 알게 되는 것이기에 해녀 ‘학교’라는 것은 전통적인 해녀형성과는 거리가 먼듯하다. 또한 해녀의 채취물이 양식한 것보다 비싸다면 해녀는 자연스레 소멸할 수 밖에 없다. 다만 용두암, 중문해수욕장 입구, 용머리, 그리고 곳곳의 해안도로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직접 장사를 하는 것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수산물 생산방식에 대한 사회변동에 이어, 해수온 및 해수면 상승이라는 자연환경의 변화는 해녀집단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더불어 탑동, 도두 및 이호 공유수면, 강정 앞바다 등의 매립사업과 어항증축 공사 등의 해양개발사업도 해녀들의 공간을 축소/위협하고 있다.
참고문헌
※ 참고문헌
권귀숙, 1998, “제주해녀의 신화와 실체”, 『제주사회론2』, 한울아카데미
안미정, 2007, “제주 잠수의 어로와 의례에 관한 문화인류학적 연구”, 한양대학교 대학원 문화인류학과 박사학위논문.
유철인, 1998, “물질하는 것도 머리싸움”, 『제주사회론2』, 한울아카데미
조혜정, 1982, “제주도 해녀사회연구”, 한상복 편, 『한국인과 한국문화』, 심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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