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래론 - 생애,시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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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박용래론
1. 생애
박용래는 1925년 충남 논산군 강경읍 본정리에서 박원태와 김정자의 3녀 1남 중 막내로 출생하였다. 부친은 인근 동네에서 한학과 한시로 이름을 떨쳤던 유생 출신이다. 집안의 가세가 기울고 허약한 체질 때문에 바로 위 홍래 누님의 등에 업혀 자랐다. 1939년 강경 상업학교에 입학하였다. 이 학교는 이 곳 출신들이 1970년대 까지 상업, 금융계의 요직을 두루 맡을 정도로 일제 시대 명문 중 하나였다. 그 학교에서 박용래는 학업과 품행이 모범이었고 미술반장으로서 미술에 특기를 보였다. 한편, 1940년 바로 위 누이 홍래가 초산의 산고로 사망하였다. 이 충격 때문에 이 충격 때문에 삶의 회의를 느끼기 시작하고 내성적이고 우울한 성격으로 돌변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춘기 소년기에 겪게 된 이 혈육과의 사별의 기억은 그가 후에 맞이하게 된 간난의 시대 환경 속에서 겪게 되는 좌절과 회의와 함께 시인 박용래의 시적 정서와 상상력의 토대를 이루게 된다. 1943년 강경상업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조선은행에서 근무하다 1945년 일제의 징집영장을 받고 8월 14일 야간 군용열차를 타고 상경하다 용산역에서 해방을 맞았다. 1946년 충남문인들과 ‘동백시인회’를 결성해 동인 활동을 시작했고 같은 해 호서중학 교사로 취임해 교편을 잡으며 본격적으로 시작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6.25가 발발하자 논산의 과수원집에서 가정교사를 하며 피난생활을 했고 시동인들과 어울리며 시를 썼다.
1956년 박두진 추천으로『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다. 등단한 해 오로지 시만 쓰려 교직을 사임하고 대신 그 전 해 결혼한 부인이 간호원으로 직장에 나가게 된다. 이후 1960년 다시 교편을 잡았으나 1965년 그만두고 대전시 오류동으로 이사해 택호를 ‘청시사靑枾舍’라 짓고 죽을 때까지 정착한다. 1969년 첫 시집『싸락눈』을 내고『현대시학』제정 제 1f회 작품상을 수상하며 중앙 문단으로부터 관심을 받게 된다. 이후 1971년 대전 시인들과 6인시집『靑蛙集』, 1975년 시선집『강아지풀』, 1979년 시집『白髮의 꽃대궁』을 펴냈다. 대뷔 이전인 1953년부터 사후에 발견된 유고까지 전집『먼바다』에 실린 시가 160편인데 시력 30여년에, 누구보다 더한 ‘전업시인’으로서는 보기 드문 과작(寡作)이다. 이는 그가 완성도 높은 시만을 발표한 결과다.
1980년 7월 교통사고로 3개월간 입원치료를 받은 지 두 달만인 11월 21일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타계직후인 그해 12월 박용래는 시집『 白髮의 꽃대궁』과 시「먼바다」로 한국문학작가상을 받았다.
2. 시의 특징
1) 내용적 특징
(1) 과거회상과 고향회귀
박용래 시의 특징 중의 하나는 회상과 회귀의 세계이다. 유년과 과거에의 회상. 그리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들이 많이 있다. 시제도 과거형과 불분명한 시간 개념을 설정하고 있다. 현실을 외면하고 과거적 이상향을 향한 하나의 창문을 열고, 그의 상상력은 언제나 그곳을 넘나들곤 하였다.
현실에서의 부적응, 문명 사회의 메마름은 시인의 설 자리를 없게 하고, 이때 시인은 자시의 과거를 돌아보게 되며, 작품을 통하여 본래의 고향 속으로 회귀하고자 갈망하였다. 이것은 일종의 패배주의이며, 현실회피 의식의 결과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도시문명 속에 각박해진 현대인에게 잃어버린 유년과 고향을 일깨워 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년시절로의 회귀의식은 비단 박용래 시인에게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거의 모든 시인들이 한 번씩은 다루고 넘어가는 통과제의와도 같은 것이지만 박용래 시인의 생애를 통해서 볼 때 시 세계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현실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인이라는 이름 하나로 살아가는 그에게 유년 시절의 삶은 행복 그 자체로 비춰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용래 시인이 행복과 구원의 원형으로 파악하고 있었던 유년 시절의 기억들은 그의 글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
어린 날을 금강 하류에서 보냈다. 긴 겨울이 가고 잔설이 녹으면 강물은 지면보다 먼저 부풀어 온통 감및으로 반짝거렸다. 추위가 풀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곧잘 강변을 혼자서 걸었다. 이른 봄, 우연히 그 강변 삐기풀 사이에서 발견했던 처음 핀 민들레꽃 몇송이의 감동은 영 읹을 수 없다. 흩어졌다 모여들던 까마귀떼도 뒤뜰에 호젓한 대싸리 나무도 고샅길 안까지 가득했던 개구리 울음도 아직은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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