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교육1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5.06.27 / 2015.06.27
  • 14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1,0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본문내용
삼국시대를 전후하여 우리나라에 들어온 유교는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확고한 통치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들어온 유교는 고려 말을 전후로 하여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고려 말에 여말 신진유학자인 안향이 송(宋)의 새로운 유교 학풍을 들여오기 이전에는 주공(周公)과 공(孔) · 맹(孟)을 따르는 경사학(經史學)으로 종적(縱的) 윤리인 충효라는 중심 덕목을 강조하는 유교였다. 고려 말 신진 유학자에 의하여 받아들여진 흔히 성리학(性理學) 내지 주자학으로 불리는 새로운 유교는, 인간의 성품과 우주의 이치를 합리적으로 궁구 하려는 한편, 존왕양이(尊王攘夷, 자민족의 왕조를 높이고 이민족을 배척함)의 민족주의적 대의명분론을 특징으로 내세웠다.
불교가 추상적 심학이고 도교는 자연적 대상을 문제로 삼은 데 비하여, 유교는 인간과 사회의 현실에서 정치, 교육 그리고 윤리 영역에서 활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성리학은 우주의 두 가지 양상이 하늘과 땅이며, 하늘은 높고 땅은 낮다는 질서가 사정에서는 부부 · 부자 관계에서 나타나야 하고, 나라에서는 군신관계에서 나타나야 하며, 천하에서는 화이(華夷)관계에서 나타난다. 라는 이론적 바탕이 유교의 사상적 정통성과 합리성을 주장하였다.
고려 초나 조선 초의 정치적 상황으로 볼 때 군신간의 수직적 위계질서 확립은 큰 과제였으며, 이러한 큰 과제를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불교나 도교보다도 이질적인 위계질서를 학문적으로 합리화시켜 주고 신성화시켜 주는 유교가 통치이념으로 적합했기 때문에 조선이 유교를 통치 이데올로기로 삼았다.
조선시대 또한 통치이념으로 유교를 삼은 이상, 조선시대의 교육과 유교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하겠다.
고려 말의 정치적 혼란과 사회기강의 문란, 국민경제의 피폐 등으로 고려사회가 더 이상 유지되는 것이 불가능 하다고 생각했던 신세력(혁명파)과 고려왕조를 부정하지 않고 계승하면서 중흥하려는 세력(온건파)가 있었다.
의리를 중심으로 한 보수세력과 현실에 입각한 신세력 간의 대립은 초기에는 포은 정몽주와 삼봉정도전으로 대표되었다.
포은 계열은 인간의 내면적 본성을 강조하며 만고불면의 도덕의식을 계발하는 데 목적
삼봉 계열은 불변하는 인간성의 계발보다는 상황에 대응하는 창의적 변혁을 강조, 인간의 의지적 연마와 지식의 능력 및 문화의식을 고취하는 데 중점
두 파는 후에 관학파(官學派)와 도학파(道學派), 훈구파(勳舊派)와 사림파(士林派)를 각각 형성, 각기 교육에 있어서 관학과 사학을 설치하여 그들의 이념 보급에 힘썼다.
관학파는 여러 관학을 통해 천명사상 등을 보급하여 사회질서를 이룩하려 했고, 사림파는 서원 등의 사학을 통해 의리정신과 대의명분을 가르펴 왔던 것이다.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