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의 이해 - 문인답사 보고서 - 이광수 선생의 생가 답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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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광수 선생의 생가 답사보고서
목차
1. 이광수의 생애와 문학관
(1) 이광수의 생애
(2) 이광수의 문학관
2. 주요 작품 해설
3. 학력 및 경력 사항
(1)이광수 선생의 생애
소설가 · 시인 · 평론가 · 언론인. 평안북도 정주 출생. 본관은 전주(全州). 아명은 보경(寶鏡), 호는 춘원(春園) · 장백산인(長白山人) · 고주(孤舟) · 외배 · 올보리 등. 익명은 노아자 · 닷뫼 · 당백 · 경서학인(京西學人) 등이다. 아버지는 종원(鍾元)이며, 어머니는 충주김씨(忠州金氏)이다. 5세에 한글을 비롯하여 천자문을 깨우치고 외할머니에게 〈덜걱전〉 · 〈소대성전〉 · 〈장풍운전〉등을 읽어드릴 정도로 명석하였다고 한다.
8세경에는 동리의 글방에서 《사략》 · 《대학》 · 《중용》 · 《맹자》 · 《고문진보》 등을 읽어 한시 백일장에서 장원하여 인근동리에서 신동으로 소문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여 가난의 설움을 속깊이 느끼다가 11세 때인 1902년 콜레라로 부모를 여의었다. 이듬해 동학에 입도하여 천도교의 박찬명대령 집에 기숙하며 서기일을 맡아보다가 1905년 일진회(一進會)의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도일, 대성중학(大成中學)에 입학하였으나 학비곤란으로 이해 11월에 귀국하였다. 이듬해 다시 도일하여 메이지학원(明治學園) 중학부 3학년에 편입하여 학업을 계속하였다.
이 무렵 안창호(安昌浩)가 미국으로부터 귀국하는 중 동경에 들러 행한 애국연설을 듣고 크게 감명을 받았다. 메이지학원의 분위기에 따라 청교도적 생활을 흠모하게 되고 서양선교사들의 성경시간에서 익힌 기독교생활을 하기로 결심하기도 하였다. 홍명희(洪命熹) · 문일평(文一平) 등과 공부하며 소년회(少年會)를 조직하고 회람지 《소년》을 발행하면서 시 · 소설 · 문학론, 논설 등을 쓰기 시작하였다.
1909년 11월 7일에 〈노예(奴隸)〉, 18일에 일문 〈사랑인가〉, 24일에 〈호(虎)〉를 쓸 정도로 습작에 열중하였다. 그해 12월에는 〈정육론(情育論)〉을 《황성신문》에 발표하였다. 1910년 메이지학원 보통부 중학 5학년을 졸업하고 귀국하여 정주 오산학교의 교원이 되었다. 이해에 언문일치의 새 문장으로 된 단편 〈무정〉을 《대한흥학보》에 발표하였다. 그해 7월에 백혜순(白惠順)과 중매로 혼인하였으나 날이 갈수록 애정없는 혼인을 후회하며 실망의 나날을 보냈다.
1912년 나라를 잃은 슬픔과 자신의 장래에 대한 번민으로 건강을 많이 상하였다. 오산학교 재직시에는 톨스토이를 애호하면서 학생들에게 생물진화론을 가르쳤다고 하여 교계에서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1913년 스토(Stowe, H.E.B.)부인의 〈검둥이의 설움〉을 초역하여 신문관에서 간행하고, 시 〈말 듣거라〉를 《새별》에 발표하였다. 그 해 11월 세계여행을 목적으로 상해에 들렀다가 1914년 미국에서 발간되던 《신한민보(新韓民報)》의 주필로 내
되어 도미하려고 하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귀국하였다. 김병로(金炳魯) · 전영택(田榮澤) · 신석우(申錫雨) 등과 교유하며 사상가 내지 교육자가 되기를 꿈꾸었다.
1915년 9월 김성수(金性洙)의 후원으로 재차 도일하여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고등예과에 편입한 뒤 이듬해 1916년 9월 와세다대학 철학과에 입학, 광범위한 독서를 하였다. 계몽적 논설을 《매일신보》에 연재하여 문명(文名)을 높이고, 이듬해 1917년 1월 1일부터 한국신문학사상 획기적인 장편 〈무정〉을 연재하였다. 이어서 〈소년의 비애〉 · 〈윤광호〉 · 〈방황〉을 《청춘》에 발표하였다. 격심한 과로 끝에 폐환에 걸려 1917년 귀국, 《매일신보》 특파원으로 남한지역 오도답파여행(五道踏破旅行)을 떠났다.
1917년 두번째 장편 〈개척자〉를 《매일신보》에 연재하기 시작하여 청년층의 호평을 받았다. 이듬해 폐환이 재발하였으나 허영숙(許英肅)의 헌신적 간호로 위기에서 소생하였다. 전통적인 부조중심의 가족제도와 봉건적인 사회제도를 비판하는 〈신생활론〉 · 〈자녀중심론〉 등의 논문을 발표하여 많은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백혜순과 이혼에 합의한 뒤 1918년 10월 여의사 허영숙과 장래를 약속하고 북경으로 애정도피를 떠났다. 그러나 11월 중순경 윌슨 미국대통령의 14원칙에 의거한 파리평화회의가 열리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하였다가, 다음달에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청년독립단에 가담하고 2 · 8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뒤 상해로 탈출하였다. 상해에서 안창호를 만나 그의 민족운동에 크게 공명하여 안창호를 보좌하면서 《독립신문》의 사장 겸 편집국장에 취임하고 애국적 계몽의 논설을 많이 쓰면서 안창호의 인도로 주요한(朱耀翰) · 박현환 등과 독서 · 정좌 · 기도를 함으로써 수양생활에 힘썼다.
1921년 4월 단신으로 상해를 떠나 귀국, 선천에서 왜경에게 체포되었으나 곧 불기소처분되자 이때부터 변절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해 허영숙과 정식으로 혼인하였다. 《개벽》에 〈소년에게〉를 게재한 것이 출판법위반협의를 받아 종로서에 연행된 바 있었다. 이어서 《개벽》에 〈민족개조론〉을 발표하여 민족진영에게 물의를 일으켜 문필권에서 소외당하였다. 이 무렵 《원각정(圓覺經)》을 탐독하면서 단편 〈할멈〉 · 〈가실(嘉實)〉을 집필하였고, 김성수 · 송진우(宋鎭禹)의 권고로 동아일보사의 객원이 되어 논설과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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