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꿈 화성 답사 감상문 수원 화성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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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정조의 꿈, 화성
답사 감상문
수원 화성을 다녀와서
수원화성을 답사하게 된 동기
나는 조선시대 많은 왕들 중에도 특히 정조대왕을 존경한다. 정조대왕은 조선사회를 문예부흥 시기로 이끌며 많은 변화와 개혁에 중심에 서서 조선사회를 애민정신으로서 다스렸던 왕이다. 그는 재위 24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조선 사회를 이끈 왕 이었지만 결코 그 기간이 짧지 않았음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많은 업적을 쌓은 왕이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평소 정조대왕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였기에 자연스럽게 답사지를 수원화성으로 정하게 되었다. 수원화성은 정조대왕이 이루고자 한 모든 꿈과 이상이 투영된 곳이기 때문에 수원화성을 통하여 정조대왕을 조금 더 이해하고 알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수원화성을 떠나기 전 사전조사
수원화성은 조선왕조 제22대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조선 최대의 명당인 수원의 화산으로 천봉하고 화산부근에 있던 읍치를 수원의 팔달산아래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축성되었다. 수원화성은 정조의 효심이 축성의 근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쟁에 의한 당파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정치구상의 중심지로 지어진 것이며 수도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원화성은 규장각 문신 정약용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하여 만든 「성화주략(1793년)」을 지침서로 하여, 재상을 지낸 영중추부사 채제공의 총괄아래 조심태의 지휘로 1794년 1월에 착공에 들어가 1796년 9월에 완공하였다. 축성 시에 거중기, 녹로 등 신 기재를 특수하게 고안·사용하여 장대한 석재 등을 옮기며 쌓는데 이용하였다. 수원화성은 축조이후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성곽의 일부가 파손·손실되었으나 1975~1979년까지 축성직후 발간된 "화성성역의 궤"에 의거하여 대부분 축성 당시 모습대로 보수·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수원화성은 축성시의 성곽이 거의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을 뿐 아니라, 북수문(화홍문)을 통해 흐르던 수원천이 현재에도 그대로 흐르고 있고, 팔달문과 장안문, 화성행궁과 창룡문을 잇는 가로망이 현재에도 도시 내부 가로망 구성의 주요 골격을 유지하고 있는 등 200년 전 성의 골격이 그대로 현존하고 있다. 축성의 동기가 군사적 목적보다는 정치·경제적 측면과 부모에 대한 효심으로 성곽자체가 "효"사상이라는 동양의 철학을 담고 있어 문화적 가치 외에 정신적, 철학적 가치를 가지는 성으로 이와 관련된 문화재가 잘 보존되어 있다.
수원화성을 향하여
오늘만큼은 바쁜 나의 일상을 내려두고 편히 문화유적을 답사하며 역사의 숨결을 느끼기로 다짐하였다. 오늘따라 따스하게 비쳐주는 가을 햇볕과 시원한 가을 바람이 수원화성을 향하는 나의 기분을 더욱 좋게 만들어 주었다. 사당 역에서 친구와 만나 고속버스 4000번을 타고 출발한 우리는 버스 안에서 곧 도착하게 될 수원화성을 생각하며 설레이는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가 무르익기도 전, 채 30분도 되지 않아서 우리는 12시 반쯤에 화성의 장안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실 계획은 팔달문을 시작으로 해서 화성을 한바퀴 돌려고 했으나 현재 장안문에 서 있는 이상 이 곳에서부터 시작해서 화서문까지 답사하기로 했다.
예상치 않게 답사의 처음 시작이 되어버린 장안문은 처음 본 순간 서울의 숭례문과 같은 그 크기와 규모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돌로 쌓은 석축과 무지개 문, 이층의 문루와 지붕의 생김새까지 비슷하지만 옹성이나 적대등과 같은 시설이 있다는 점이 차이점이라 할 수 있었다. 성 전면에 벽돌로 쌓은 반원형의 옹성은 적군이 성문을 쉽게 부수지 못하게 하며, 만약 옹성 안으로 적군이 들어오게 된다하더라도 사방에서 공격을 받게 되므로 적군을 독 안에 든 쥐 꼴이 되게 만든다고 한다. 그래서 옹성은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모습이며 항아리 옹자를 써서 옹성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옹성만으로도 분명 난공불락의 성이 될 것 같은데 선조들은 이에 머물지 않고 장안문의 좌우에 적대를 설치했다. 이것은 성문과 옹성에 접근하는 적을 막기 위해 설치한 방어 시설물로 그 위에 대포가 놓여 있었다. 이것들만 보아도 화성이 얼마나 진보적인 성벽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북동적대를 지나 성벽 위로 난 길을 따라가니 북동포루가 보였다. 포루는 성벽을 돌출시켜 만든 치성 위에 건물을 세워서 군사들이 적에게 노출되지 않게 하기 위한 초소나 대기소와 같은 곳이다. 특이한 점은 벽면에 네모난 구멍들이 여러 개 뚫려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대포발사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분명 적군들은 이 구멍을 처음 보았을 때 용도를 잘 알지 어리둥절하다가 구멍 속에서 무수히 터져 나오는 대포들로 인해 아연실색하며 도망가지 않았을까 하는 재밌는 상상도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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