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전을 읽고(미워 할 수 없는 악당 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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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전을 읽고
(부제 - 미워 할 수 없는 악당 놀부)
어렸을 때 흥부전을 읽으면서 제일 못마땅했던 것이 형이 나쁜 놈이라는 점이었다. 사실 알고 보면 근원설화인 방이 설화에서 나쁜 놈은 동생인데 설화를 근거로 쓴 소설에서는 형이 나쁜 놈이니 억울하지 않을 수 가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소 것일지 몰라도 첫째인 나에게 못된 형이란 존재는 맘에 영 걸렸다. 동생과 싸울 때도 불리했었다. 첫째라서 그런지 놀부 같다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못된 형의 대명사인 놀부는 착한첫째인 나의 미움을 받았다.
난 놀부와 흥부를 착한사람이 복 받는다 그러므로 우리도 흥부같이 착하게 살자 라는 걸로만 알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흥부와 놀부에 대한 평가 가 엇갈리기 시작하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흥부보다는 놀부가 환영 받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마치 토끼와 거북이 달리기시합 이야기에서 자는 토끼를 모른체하고 혼자만 달려(?)정정당당한 경기를 펼치지 않은 거북이가 못됐다는 이야기처럼 무능력하고 가족계획이 없는 흥부보다는 나쁜 쪽 이지만 수완 좋고 경제관념이 투철한 놀부가 낫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샌가 놀부는 나쁜 형의 이미지와 동시에 부자라는 이미지도 갖게 되었다. 그 예로 수많은 상호들이 흥부보다는 놀부 쪽을 선호 하지 않는가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모두 이야기구조를 경제사회로만 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놀부는 동생을 모른체하고 지 혼자만 잘살겠다고 한 나쁜 사람이고 흥부는 가난하긴 하지만 착한사람이다. 빈부의 격차는 부모의 유산을 모두 놀부가 가로채게 된다는 데서 오는데 시작부터 불공평한 환경을 무능력과 능력의 차이로만 보면 안 된다. 그러고 보면 흥부전은 자본주의사회의 모순을 말하는 사회비판적인 소설인 것이다. 갖은자는 자신의 재산을 불리기 위해 나쁜 짓을 다하는데도 계속 잘 먹고 잘 살고 못 갖은자는 밥을 안 굶을려고 갖은 노력을 하는데도 결국 굶을 수밖에 없는 빈익빈 부익부현상을 비판한 것 같이 느껴지는 건 비약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계속 굶던 흥부가 부자가 된 후 밥을 너무 많이 먹고 잠시 죽는 모습은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당시 사회의 현실과 관련시켰을 때 이해가 가는 상황이다. 박을 타 보니 금은 보화와 쌀이 나오고, 그 쌀을 배가 터지도록 밥을 먹어 본다는 것은 당시 서민들의 꿈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시대를 살아가는 서민들에게는 죽을 정도의 가난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소설속에서는 박이라는 비현실적인 소재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꿈을 이루려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흥부의 박은 굶는 자들이 안굶을려는 생존의 수단이었고 놀부의 박은 갖은자가 더 많이 갖으려고 하는 욕심이었다. 그러므로 놀부의 부도덕성은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미화되어는 안 될 것이다.
이렇게 사회의 문제를 고발하는 형식의 이소설이 어둡고 무겁게 가지 않는데 에는 희극적이 요소가 크다고 하겠다. 그래서 흥부전을 읽으면서 감유정의 소설들이 떠올랐다. 김유정의 소설이 놀부전의 영향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서운 주제를 어둡지 않은 분위기로 썼다는 점은 비슷한 것 같다.또 놀부만큼은 아니지만 봉필이 영감도 심술가득한 사람이고 결코 미워 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비슷한 것 같다. 흥부전의 희극적 요소는 흥부도 우리를 불쌍하게 웃기지만 희극적인 요소의 가장 큰 인물은 놀부가 아닐까 싶다. 놀부를 단순한 악당으로 몰기에는 미워 할 수 없는 점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흥부전의 결정적장면은 바로 놀부가 부리는 심술대목이다.
본명방(本命方)에 벌목하고 잠사각(蠶絲角)에 집짓기와 오귀방(五鬼方)에 이사권코, 삼재든 데 혼인하기 동네 주산을 팔아먹고 남의 선산에 투장(偸葬)하기 길 가는 과객 양반 재울 듯 이 붙들었다 해가 지면 내어쫓고, 일년고로(一年苦勞) 외상 사경(私耕) 농사지어 추수하면 옷을 벗겨 내어쫓기, 초상난 데 노래하고 역신 든데 개 잡기와 남의 노적에 불지르고 가뭄 농사 물꼬 베기 불붙은 데 부채질, 야장(夜葬)할 때 왜장 치기 혼인뻘에 바람 넣고 시앗 싸 움에 부동(符同)하기, 길 가운데 허방놓고 외상 술값 억지 쓰기 전동(顫動)다리 딴죽치고 소 경 의복에 똥칠하기 배 앓이 난놈 살구 주고 잠든 놈에 뜸질하기 닫는 놈에 발 내치고 곱사 등이 잦혀놓기, 맺은 호박 덩굴 끊고 패는 곡식 모가지 뽑기 술 먹으면 후욕(逅辱)하고 장시 간(場市間)에 억매하기 좋은 망건 편자 끊고 새 갓 보면 땀대 떼기 궁반 보면 관을 찢고 걸인 보면 자루 찢기 상인을 잡고 춤추기와 여승보면 겁탈하기 새 초빈(草殯)에 불지르고 소 대상에 제청치기, 애 밴 계집의 배통 차고 우는 아이 똥 먹이기 원로행인의 노비 도둑 급주 군(急走軍) 잡고 실랑이질, 관차사의 전령 도둑 진영교졸(鎭營校卒) 막대 뺏기 지관을 보면 패철(佩鐵)깨고 의원 보면 침 도둑질 물 인 계집 입맞추고 상여 멘 놈 형문 치기 만만한 놈 뺨 치기와 고단한 놈 험담하기 채소반에 물똥 싸고 수박밭에 외손질과 소목장(小木匠)이의 대패 뺏고 초라니패 떨잠 도둑 옹기짐의 작대기 차고 장독간에 돌 던지기, 소매치기 도자속 금(盜者贖金) 고무도적의 끝돈 먹기와 다담상에 흙 던지기 계골(計骨)할 때 뼈 감추기 어린 애의 불알을 발라 말총으로 호아매고 약한 노인 엎드러뜨리고 마른 항문 생짜로 하기 제주 병(祭酒甁)에 개똥 넣고 사주병(蛇酒甁)에 비상(砒霜)넣기 곡식밭에 우마 몰고 부형 연갑에 벗질하기 귀먹은 이더러 욕하기와 소리할 때 잔말하기,
이 수많은 심술들을 보라 얼마나 기발하지 않는가 나쁜쪽 이지만 놀부가 머리가 좋았던 건 틀림없다. 일일이세기도 힘든 이 심술들은 간혹 진짜 악질인 것도 있지만 읽는 사람 입에 슬그머니 웃음이 나오게 하는 심술들이다. 좀 심한 장난들부터 범죄까지 다양한 놀부의 심술은 흥부전의 생기를 불어 넣는다. 그리고 결말부분의 놀부가 흥부의 박이 탐이나 제비다리를 부러뜨려서 얻은 박을 탈 때 해학은 절정에 이른다. 놀부의 박에서 계속 흉한 것이 나오나 아내까지 말리는데도 결국 놀부는 박을 타고 결국 온 동네가 똥 바다가 된다는 놀부의 벌은 끔찍하다기보다는 슬금슬금 웃음이 나온다. 이러한 흥부전의 해학들은 그 시대 하층민들의 힘든 삶이지만 밝은 웃음을 떠올리게 한다.
흥부전의 판본에 따라 여러 가지 결말이 있지만 놀부가 망해서 마음을 고쳐먹을 데에는 중산층이 자각하길 바라는 작가의 바람이 보인다. 결국 흥부가 용서한 것은 흥부전을 해학적으로 그려낸 사람들의 계층간의 대립을 버리고 화합을 바라는 바람이 아니었을까 진짜로 확실한건 만약 놀부가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더 잘 먹고 잘살고 벌도 안 받았을 것이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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