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과 삶 읽기 1 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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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과 삶 읽기<1>을 읽고
처음 책을 봤을 때 제목에 쓰인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이라는 말에 관심이 갔다. 식민지 시대는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한 번쯤 관심을 갖고 봤을 법한 주제이다. 제목은 식민지 시대가 아닌 그 뒤를 의미하는 듯한 탈식민지 시대를 말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제목을 읽었을 때는 단순히 ‘식민지 시대에 억압받던 지식인의 관점에서 탈식민지사회가 된 시대를 접하게 되었을 때의 글이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저자는 딱히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현상을 뜻하기보다는 지식과 삶이 겉도는 현상을 뜻하는 의미로 ‘식민지성’이라는 단어를 정의 내렸다. 또한 “자신의 문제를 풀어갈 언어를 가지지 못한 사회, 자신의 사회를 보는 이론을 자생적으로 만들어 가지 못하는 사회”를 식민지적이라고 봤다. 이러한 글쓴이의 생각을 보면서 식민지라는 단어에 대한 신선한 시각에 참신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식민지라는 극단적인 단어를 사용해야 할 만큼 우리 사회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가지지 못했는가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요즘에는 내가 무언가에 대해 찾고자 하면 손쉽게 인터넷에서 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원래 나와 있는 이미 가공된 정보에 사람들이 익숙해지면서 사람들은 점차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소홀이 하는 것 같다. 이런 면에서 우리가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을 하거나 새로운 방법과 길을 찾는 힘이 매우 약해졌다. 이미 있는 정보를 토대로만 생각하고 새로운 것을 생각하기 보다는 기존의 것을 베껴서 다른 정보인 척, 내가 쓴 글인 척 하는 것이 지금의 우리이다. 그 정보가 옳은 것인지, 검증된 정보인지는 어느새 우리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잘 암기하면 끝이었다. 나 역시도 이런 사람들 중 한명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모습들을 ‘식민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라고 따끔하게 꼬집어 말하는 저자의 말에 무비판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척 공감이 되었던 부분은 우리나라의 주입식 교육에 대한 비판부분 이였다. 저자는 이러한 주입식 교육이 서구화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난 서구화의 영향도 물론 있겠지만 그 전에 우선 서구화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인 우리에게 그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본다. 또한 전에 겪은 식민지시대의 무조건적으로 명령을 받는 우리의 습관이 낳은, 무조건 받아들이기 식의 방식만이 남고 비판성이 사라진 폐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앉아서 책을 읽고 밑줄을 치고 선생님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받아 적는 방법으로, 모든 학생들이 수동적으로 공부를 한다. 서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서 활발한 토론을 하거나 책의 내용을 비판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다. 이러한 수동성에 대해서 기억나는 대표적인 일화가 있다. 초등학생 시절에 국어 수행평가 쪽지 시험에서 “슬픔이 밀려가고 기쁨이 찾아왔다.”라는 구절을 넣어서 한 줄 작문을 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때 나는 “전쟁에 나갔던 아버지가 돌아오시자 슬픔이 밀려가고 기쁨이 찾아왔다.”라고 답을 써서 냈었다. 나중에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우리 반 전체에서 이 문제의 답을 써 낸 사람이 단 둘이라고 하셨다. 당시에는 선생님이 날 칭찬하셨다는 생각에 우쭐해서 신나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창의력이 풍부한 어린나이에도 그런 단순한 작문조차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우리의 뇌가 경직되어 있다는 생각에 씁쓸해진다. 원래 배운 것을 쓰는 단답형이나 객관식을 맞추는 것은 잘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넣어서 길게 늘여 쓰는 서술형에는 약한 우리들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앞으로 시험문제에서 주관식이 단답형이 아니라 서술형으로 나오도록 정해졌다는 말을 들었었다. 당시에는 서술형으로 나온다면 어떻게 채점을 할 것이고 그 기준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애매하기 때문에 어처구니없는 방침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문제들이 나올지 기대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들을 보니까 그저 우리가 배운 내용들을 전에는 핵심 단어만 빈칸으로 냈다면 이번에는 그 문장 전체를 문제로 내는 것 외에는 바뀐 점이 없었다. 그것을 보면서 채점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겠지만 이렇게 해서는 학생들의 공부 부담과 스트레스만 늘어날 뿐, 얻는 것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서술형을 당당히 쓸 수 있는 실력과 자신감은 그런 의무적인 교육과 암기가 아니라 자유로운 생각에서 나올 수 있다. 틀에 박힌 공부와 무조건 암기식의 주입식 교육으로는 학생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끌어낼 수 없을 것이다. 흔히 이런 창의력과 상상력을 기르기 위해서 ‘비판적으로 읽어라.’라고 많이들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비판적으로 읽는지를 알지 못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비판한다는 것은 타인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판한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생각으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 발전해 나간다는 것이다. 우리는 비판하기에 앞서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또한 누가 가르쳐 줄 수는 없는 것이지만 스스로 생각하도록 도움을 받을 수는 있다. 어릴 때부터 답을 알려주기 보다는 왜 그렇게 되는지에 대한 의문을 심어준다면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찾게 될 것이다. ‘왜’라는 의문을 심어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식의 식민화를 벗어나는 길일 것이다.
나는 이제까지 하나의 정보를 받으면 그 정보를 무조건적으로 암기하고 이해하려고만 했었다. 그보다 하나 더 나아가서 그 정보를 비판하거나 왜? 라는 의문을 품은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 정보가 이미 나에게 왔다는 그 자체로 나는 더 이상 그 정보를 변형하거나 의문을 품을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라고 은연중에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어릴 적에 입에 달고 살았던 ‘왜요?’라는 질문을 다시 꺼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비판적으로 무조건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의문을 가지고 다시 한 번 내 방식대로 해석해보고 다른 방면으로 생각하면서 비판해보는 힘을 길러야겠다. 주체적인 사고를 갖는 것. 이게 현대를 사는 지식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일 것이다. 어떤 정보를 받았다면 받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더 얻어낼 수 있도록, 더 많이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하나의 정보는 거대한 나무의 뿌리와도 같다. 작은 잔뿌리라도 그 위를 올라가다 보면 거대한 나무뿌리의 하나이고 더 위로 올라가다 보면 수많은 가지가 뻗어있듯이 우리에게 온 작은 정보일 지라도 연결되어 있는 수많은 정보가 있을 수 있다. 어떠한 정보를 얻게 되었을 때 단순히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정보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얻어내고 더 생각이 뻗어나갈 수 있도록 사고의 틀을 한정짓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계속 습관을 들여 나가다 보면 제목처럼 언젠가는 정신까지도 ‘탈식민지화’되어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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