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시가론] 안민영 -그의 작품 `매화사(梅花詞)`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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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안민영의 생애
Ⅱ. 그와 관련된 시대적 배경
Ⅲ. 매화사의 표현상 특징
Ⅳ. 매화사 해석
ⅰ. 매화 그 자체 감상
ⅱ. 매화를 기녀로 감상
ⅲ. 매화를 흥선대원군으로 감상
Ⅴ. 결론
※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안민영의 생애
안민영은 그 출생과 사망이 명확하지 않다. 그는 조선 말기 고종 때 가객으로서 활동하였을 것으로 짐작되며 자는 성무(聖武), 호는 주옹(周翁)이다. 그는 서얼(庶孽) 출신으로 성장배경 또한 명확한 것이 없다. 1876년(고종13)에 《가곡원류(歌曲源流)》를 편찬 간행하였고 가곡의 전통을 살려 그 음악성과 문학적 가치를 계승하였다. 《가곡원류(歌曲源流)》에는 그의 시조 《영매가(咏梅歌)》외 26수가 실려 있다. 또 다른 그의 저서로는《금옥총부(金玉叢部)》와 《주옹만필(周翁漫筆)》등이 있다. 《금옥총부(金玉叢部)》는 안민영의 시조 181수를 가고창의 곡조별로 분류 수록하고 있는 개인 가집이며 《금옥총부(金玉叢部)》에 수록된 작품 수는 181수로 확인된다. 《금옥총부(金玉叢部)》의 내용은 편찬된 글의 성격에 따라 서문 및 가곡에 대한 각종 기록을 모아 엮은 서두 부분과, 안민영의 작품을 곡조별로 배열한 본문에 해당되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181수 가운데 연시조는 6편 28수인데 <운애산방 매화사>, <석파대로 갑연 하축>등과 같이 제목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모두 왕실과 대원군 일가 및 박효관 관련 내용을 작품화한 것으로 안민영의 가객 활동이 왕실과 대원군 일가 및 박효관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Ⅱ. 그와 관련된 시대적 배경
1. 기녀와 관련하여
안민영은 가객으로서 기녀들과 어울려 지냈으며 또한 기녀들을 소재로 하여 많은 시조를 남겼다. 이 시조들에서 안민영은 기녀들을 애정의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실생활에서도 기녀를 노류장화로 대하기보다 동료 예인처럼 대우하였다. 당시 고급 기녀들은 가무나 거문고에 능하여 가창자로서 충분한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조선전기 사대부 시조 연행판의 이름 없는 가창자였으며, 18세기 육담풍 사설시조의 구체적인 대상쯤으로만 떠올려지던 기생이 19세기 가객 안민영의 시조에서는 재색을 겸비한 예인으로서 예찬의 대상이 되었다.

2. 흥선대원군과 관련하여
안민영은 왕실을 송축하는 시를 지었는데, 그 중에서도 대원군을 예찬하는 시가 20수나 되었다. 또한 안민영의 대표 시조집인 《금옥총부(金玉叢部)》는 왕실과 대원군 일가 및 박효관과 관련된 내용을 작품화한 것으로, 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안민영은 대원군과 친밀했던 사이로 보인다. 가객 중 개인 시조집을 펴낸이가 안민영 하나인 점에 비추어 보자면 안민영은 대원군에게서 많은 후원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즉 안민영의 대원군 예찬은 종래의 연군시조와는 질적으로 다른 계열, 즉 구체적인 이해관계와 결부된 것이며 이 이해관계는 예술적인 방면의 것임을 보여준다.
안민영은 대원군을 칭송할 때 대원군의 밝은 예술의식을 예찬하였다. 19세기, 대중들의 기호가 가곡에서 판소리 등의 민속악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던 시대에 고객으로서의 왕실은 매우 중요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안민영이 「매화사(梅花詞)」를 지었을 당시는 흥선대원군이 하야를 하던 시기인 동시에 세도정치의 시기가 지나고 정책을 재정비하던 시기였다. 따라서 안민영은 자신,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예술능력을 알아봐주는 대원군이 하야한다는 소식에 슬퍼하며 「매화사(梅花詞)」를 짓지 않았을까 추측해보았다.

3. 가곡창과 관련하여
19세기로 들어오자 공연에서는 가곡창과 시조창의 대립이 생겨났다. 가곡은 가장 빠른 곡조 삭대엽만 남고 그것이 다시 세분화되었으나 직감적인 흥밋거리를 찾는 추세를 따르지 못해 밀려났다. 가곡에 비해서 격이 낮은 시조창이 더 행세하게 되어 1863년(철종 14)의 「남훈태평가(南薰太平歌)」를 비롯해 시조창을 위한 시조집이 따로 여럿 필요하게 되었다. 가창가사(歌唱歌詞), 잡가, 판소리 등의 공연물이 등장해 관중을 모은 것이 더 큰 변화였다.
박효관(朴孝寬)과 안민영(安玟英)은 그런 추세를 그대로 둘 수 없다고 하면서 삼대 시조집 가운데서 세 번째인 《가곡원류>(歌曲源流)》를 1876년(고종13)에 편찬해 원류가 분명한 올바른 가곡을 정리하고자 했다. 박효관은 발문에서 녹록모리지배(碌碌謀利之輩)라고 한 돈벌이만 바라는 미천한 소리패가 근거 없는 소리와 맹랑하게 웃기는 괴이한 짓을 일삼는데 귀천을 가리지 않고 놀이채를 내니 개탄할 일이라고 하며 그릇된 풍조라고 비판하였다. 정악으로 자부해온 가곡이 쇠퇴하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어, 고저와 장단을 표시한 가곡집을 펴내 표준으로 삼도록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이루어지기 어려운 이상이었다. 박효관과 안민영이 잡가를 부르는 소리패나 판소리광대와도 평소에 가까운 교분을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함께 어울려 합동공연을 하기도 했다. 공연자의 신분이나 공연 종목의 지체 구분이 무너지고 있는 판이어서, 가곡의 위신을 제대로 유지하겠다는 희망은 실제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참고문헌
이동연, 『19세기 시조 예술론』, 월인, 2000.
김상진,『흥선대원군의 영웅성과 예술성 -『金玉叢部』소재 시조를 중심으로-』, 2011.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3』, 지식산업사, 2012.
안민영, 『금옥총부』, 박이정, 2003.
류준필, 『한국고전시가작품론 2』, 집문당,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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