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 -텍스트연구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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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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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Ⅱ. 본론
1. 김춘택의「북헌잡설(北軒雜說)」
2. 이본(異本)
3. 국문창작설
4. 한문창작설
5. 한문과 국문이원표기설
Ⅲ. 결론
-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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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본(異本)
2-1. 필사본
① 한문본 : 노존본(老尊本) -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구운몽. 제 1장제가 ‘노존사남악강묘법 소파미석교봉선녀(老尊師南嶽講妙法 少婆彌石橋逢仙女)’ 운운(云云)으로 시작하기에 첫 두 글자를 따서 이를 ‘노존본’이라 부른다. 이 노존본은 1725년 이전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서울대학본과 국문노존본으로 파생되었다.
② 국문본 이가원본 : 1책, 무분회(無分回), 한문/한시 등의 직역으로 보아 번역본임이 확실. 이 번역본을 보고서 구운몽을 한글 소설이라고들 봤다. 국문본 중에서 가장 문체가 아름다워서, 가장 좋은 작품이라고들 한다. → 唯一書館本 유일서관본이나 영역본의 대본이 되었음. 국문본 중 최선본(最善本).
③ 국문본 서울대본 : 4-4책, 16회 → 궁녀들이 궁궐에서 쓰던 필체이다. 궁녀들은 궁중에서 ‘궁체’를 교습시켰기 때문에 글씨체가 다들 아름답게 비슷했다.
2-2. 방(판)각본(목판본)
① (한문)을사본(1725) → 경판본, 완판본(1862) 파생
② (한문)계해본(1803, 6권 3책, 16회본) → 신번구운몽(新飜九雲夢 1913.4), 유일서관본(唯一書館本 1913.7), 박문서관본(博文書館本 1917.2) 등으로 파생
③ (국문)경판본 : 1책, 무분회, 19세기 중엽 이전. 이본 중 가장 간략함. → 국문은 19C나 되어서 나온 것.
④ (국문)완판본 : 2권 3책, 무분회, 한문본의 축약본. 판각 연대 (1862, 철종 13)
2-3. 활자본
① 신번구운몽(新飜九雲夢, 1913) : 경성 동문관(東文館) → 여기서부터 ‘고대소설’이라 불리는 활자본이 찍혀서 나왔다. 활자본은 동문관이 가장 먼저였다.
② 연정 유일서관본(演訂 唯一書館本, 1913) : 1책, 53회, 이가원본과 동계. 후대 활자본(박문, 회동, 영창)들의 대본 → 이후로부터 여러 출판사에서 많이 찍어내기 시작했다.
3. 국문창작설
김태준이「조선소설사」에서 구운몽의 국문창작설을 가장 먼저 말했고 이후 이명구 교수가 국문본인「서울대학본」으로 국문창작설을 확정․추론하였다. 이 국문원본설은 대부분의 국문학 및 고대소설 관계 논자들이 이를 따르고 있으나 정규복 교수에 의해 꾸준히 도전받았다. 지연숙,「구운몽 텍스트 연구」, 한국문학이론과비평학회, 2001
2-1. 김태준 호 천태산인(天台山人, 1905~1949)
구운몽이 국문소설이라는 것을 최초로 발설했다.「朝鮮小說史」에서 구운몽의 국문원작설과 김춘택의서포의 한글로 지은「남정기」는 김춘택이가 일부러 수고스럽게 한자로 번역하였다. 이로 보면 서포는 국문소설가이었던 것이 분명하고「구운몽」과 「남정기」는 서포의 원작인 정음본(正音本)과 춘택의 한역한 한문본과의 두 종류가 이적부터 생겼다. 김태준,『증보 조선소설사』, 학지사
한역설을 제창했다.
이유 ①「남정기」에 대한 국문원본설과 김춘택의 한역본의 그 뚜렷한 기록과 서포의 탁월한 국문창작론이 함께 작용했다.
② 서포가 국문으로 소설을 많이 썼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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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복,『구운몽연구』, 고려대학교출판부, 1984
설성경,『구운몽연구』, 국학자료원, 1999
정규복,「구운몽 텍스트의 문제」, 어문논집, 1992
다니엘 부쉐,「구운몽저작언어변증」,『한국학보』68, 일지사, 1992
지연숙,「구운몽 텍스트 연구」, 한국문학이론과비평학회, 2001
김병국,「구운몽 연구의 현황과 문제점」, 일지사,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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