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문학] `모리 오가이`와 `시노다 마사히로`의 `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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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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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가 소개
2. 소설 등장인물
3. 소설 줄거리
4. 소설 작품 특징
5. 소설 원문 발췌i
소설 원문 발췌ⅱ
6. 영화 소개
7. 영화와 소설 비교
-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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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희 작가소개
일본근대문학사상 시, 소설, 번역, 평론, 그리고 희곡 등 문예 각 분야에 걸쳐서 다채로운 활동을 하여 많은 업적을 남긴 모리 오가이(森 鷗 外)는 1862년 1월 19일 이와미노쿠니(石見国)현에서 린타로 林太郎로 출생하였다. 오가이란 필명을 쓴 린타로는 대대로 쯔와노(津和野) 한슈’ 의 전담의사였던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는 모리 시즈오였고 어머니는 미네코였다.
모리 오가이는 10살이 된 1872년 아버지를 따라 동경으로 상경을 하여 동경대학교의 입학위한 예비교인 ‘진문학사’(進文學舍)에서 독일어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이곳에서 습득한 독일어로 오가이는 훗날 독일에서 생활 할 수 있게 된 기회의 문을 열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1877년 그는 동경대학교 의학부 입학하게 되고 1881년에는 동경대학 의학부를 최연소로 졸업한다. 이후에 오가이는 동경육군병원 군의관으로 임관하여 근무하게 된다. 1884년 23세의 나이에 육군위생제도 조사 및 군대 위생학 연구를 위해 독일에서 유학하고 1888년에 일본으로 귀국한다.
귀국 후 모리 오가이는 군의관으로서 의학활동 뿐만아니라 문학, 예술, 철학 등 다방면에 걸친 계몽활동을 전개하였고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또한 그는 육군대학교의 교관을 겸임하였다. 다음해인 1889년 모리 오가이는 해중군장 남작의 장녀 도시코와 결혼하였다. 같은 해에 <국민지우>에 발표한 번역시집인 ‘おもかげ’를 시작으로 여러 번역본과 소설을 발표하였으며 같은 해에 일본에서 최초의 문예평론잡지인 ‘시가라미조오시’(しがらみ草紙)를 창간하여 평론가로도 활동하였으며 서구 근대문학을 소개하는 동시에 평론을 문학의 한 장르로 자리잡게 하였다. 특히 이 시가라미조오시는 안에는 여러개의 논쟁이 전개 되었는데. 특히 ‘문학에 있어서 이상의 유무에 관한 논쟁이었던 쓰보우치쇼요를 상대로 했던 “몰이상논쟁”이 유명했다고 한다.
모리 오가이는 생애에 무려 127편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작품을 남겼는데 그 중 그의 작가 데뷔의 처녀작은 그의 나이 29세인 메이지 22년(1890년) 1월에 <국민지우>에 발표한 <무희>이다. 이후 이어서 발표한 <うたかたの記>(1890)와 <文づかい>(1981년) 등의 삼부작이 있다. 이 작품들은 그가 독일유학을 마치고 발표한 것으로서 작품의 사상적 바탕은 낭만주의에 둔 이국적 정서가 물씬 풍기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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