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근대 지식인들의 근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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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要 旨>日本の近代は外との接とその見を通して作られたイメジをきにしては語れない。特に外の植民地獲得は否無しに日本の近代を特付ける大きなモメントになるだろう。その外なるものは日本近代小でどのように描かれ、小の中の近代的主はどのように外についての認識を抱いてきたのか、というのを考察するのが本論の目論見である。
そのため有島武を軸にして、日本近代小の主要な小に表現された外のイメジを討し、小の人物が抱いた近代のイメジを捉えたい。日本の近代小は知識人主のあり方を問題にしてきているが、彼らの眼は外と西洋を同一視しており、西洋は知識人性を保する置にまでなっているのだ。日本の近代小に描かれた近代的主がどのように外を媒介にして、日本人としての自己像を捉えるのか明らかにしたい。
키워드 : 근대적 주체, 아리시마 다케오, 외국 이미지, 지식인, 외국=서양, 국가
1. 일본문학과 ‘국가’
아시아 지역 중 가장 먼저 유럽권의 체제에 적응한 일본은 발빠르게 제국주의의 ‘시선’을 그들의 세계관에 적용하였다. 유럽인들의 ‘시선’에 빈약한 몸체로 노출된 ‘일본’은 대동아공영권 담론 등의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아시아를 좌표로 하여 유럽권을 되돌아보는(대항하는) 시선의 획득’이라는 반전을 이끌어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본은 동아시아 인근 제국의 안쪽에서, 스스로 보는 ‘시선’으로서 군림코자하는 욕망을 통해 유럽권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고자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욕망과 콤플렉스의 간극에서 일어나는 충돌이야말로 식민지 획득과 태평양전쟁의 변주곡일 것이다. 즉 일본의 ‘근대’는 외부(외국)와의 접촉과 그에 대한 ‘발견’을 통해 형성된 이미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따라서 해외 식민지 확대는 필연적으로 일본의 ‘근대’를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로서 작용하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쓰보우치 쇼요(坪逍)의 소설신수(小神)(1885~1886) 이래 일본의 근대소설은 근대적 주체가 ‘사회’를 매개로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 주목해왔다. 예를 들면 일본근대문단의 두 거장인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와 모리 오가이(森外) 역시 ‘서양’ 체험과 그 인식을 통하여 ‘동/서’의 관계성을 그렸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근대적 주체’가 ‘서양’을 의식하면서, ‘일본인’이라는 자기인식에 도달하는 과정은 일본근대문학의 중요한 표현 대상이었던 것이다.
가까운 예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아름다운 일본의 나(‘美しい日本の私)(1968. 12)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의 애매한 일본의 나(‘あいまいな日本の私)(1994)라는 노벨상 수상 강연은 모두 ‘일본’ 속에 있는 ‘나’라는 주체를 문제삼고 있는 것을 우리들 독자는 읽어낼 수 있다. 가와바타와 오에의 발언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발화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가들의 담론은 ‘나’라는 주체와 그 주체가 속한 ‘일본’이라는 국가에 대한 인식과 그들의 입장을 밝히고 있는 공통점을 지닌다. 가와바타의 경우는 일본  동양  종교의 관점에 ‘주체’를 국한시킨 반면, 오에는 일본의 지식인층이 지향하는 ‘서양’과 외국이라는 발견을 통해 근대적 주체의 문제를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읽을 수 있겠다.
물론 아시아 여러 나라를 배제하면서 서양을 통해 일본이라는 국가를 발견하기에 이르렀고, 그 토대 위에 일본인이라는 ‘주체’가 설정되는 문제를 오에만 지적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에 대하서 일본근대문학이 정면으로 다루지 못한 것(혹은 다루지 않은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환기시켜 주는 정도로도 충분할 것이다. 오구마 에이지(小熊英二)가 단일민족신화의 기원(一民族神話の起源)(1995)에서 지적한 것처럼, 일본의 국가적 팽창과 관련한 인종국가정치적 담론은 상당히 구체적이고 일상적으로 지식인들 사이에서 회자되었으며, 대중 매체도 그것을 이슈화시키고 있었다. 그것이 피압박 국가에 유리하게 전개되지 않았을 망정, 지식인들 스스로가 ‘일본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형태로서든 ‘국가’와 대치해야만 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에 비하여, 일본근대문학의 담론 공간에서는 그것을 은유적으로 다루었고, 반면 유럽권에 대한 의식은 지나치게 현저하였다.   물론 정보 유통의 경로로 보아 일본의 ‘근대’ 문학의 담당자들이 유럽권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그들 속에서 아시아 속의 일본이 배타적 특권으로서 용인되고 있었음에는 틀림없다. 왜냐 하면 필자가 졸고에서 기술한 것처럼 대다수의 일본 지식인들은 대만과 한국 합병에 대해 심리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설령 마음 속에서 반대했을 지라도 그들은 공론화시키지 않았고 애써 그것을 못 본 척했다. 그러한 점에서 식민지 획득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을 사적인 형태였지만 직설적으로 표출하고, 작품 속에서 문제화한 아리시마 다케오(有島武)의 문학사적 위치는 흥미로운 것이다.
근대적 주체의 형성과 전개 과정을 검토하는 작업은 일본의 근대문학 담론 공간의 형성과 전개 과정을 통시적공시적인 맥락에서 파악해야 될 문제이고, 이 글은 그 중의 미세한 한 부분을 다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아리시마 다케오 문학에 주목하는 이유는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형성전개된 일본의 국가주의적 가치관과 근대적 주체의 갈등을 그의 문학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연구의 초점을 근대적 주체의 형성에 관심을 두면서 아리시마 다케오를 축으로 그의 소설 속의 주체들이 인식한 ‘외국’ 이미지와 그를 통해 형성되는 ‘일본(인)’의 이미지를 파악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2. 근대적 주체와 ‘외국’의 발견
모리 오가이는 무희(舞)(1890)에서 국가와 ‘개(個)’ 사이에서 갈등하는 지식인을 그리고, 나쓰메 소세키는 그리고 나서(それから)(1909)에서 아버지와 대립갈등하는 젊은 지식인을 그렸다. 또 1910년대에 소세키의 후계자를 자처하던 시라카바파(白樺派)의 작가들도 지식인 주체의 강한 욕망을 그려냈다. 이와 같은 ‘주체’에 대한 표현을 거칠게 묶어 말하면 ‘근대’ 속에서의 주체 형성과 전개의 표현 방법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근대적 문학 담론을 제기한 쓰보우치 쇼요의 소설신수는 가메이 히데오(井秀雄)의 지적처럼 유럽권의 소설론에 영향을 받으면서, 때로는 과잉근대주의라 평할 만큼 소설의 자립을 주장하였다. 본론에서 다룰 범위를 넘기 때문에 쓰보우치 쇼요의 소설론을 다룰 여유는 없지만 가메이의 논의처럼 소설신수가 의식한 영미권의 소설론 혹은 수사론의 도입 과정은 ‘일본’과 ‘근대문학’의 이문화 접촉으로 파악해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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