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관 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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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조동관 약전
나는 문학의 장르 중에서 특히 소설을 좋아한다. 소설의 분류 중에서도 좋아하는 부분만을 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이런 독서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나에게 필요한 줄 안다하더라도 재미있지 않은 책은 도저히 읽혀지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있어 재미있는 책이란 한마디로 말해 무겁지 않은 책이다. 즉 나는 가벼움의 미학을 즐기는 편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가벼움은 대체로 소재 혹은 서사의 가벼움이라 하겠다. 소설에서 소재로 삼는 것이, 그리고 이끌어 가는 서사가 심각하지 않은 편이 좋다. 또한 그 구성과 결말에 있어서 어떤 교훈이라던가 주제적인 것을 상당히 드러나게 던져주는 것은 내게 부담을 줘서 무겁게 만든다.
즉 나는 재미있고 가벼운 소설을 즐긴다. 바꿔 말하면 소설은 무조건 재미있고 가벼워야 한다는 것과 같다. 최소한 나의 소설 세계에서는 말이다. ‘조동관 약전’은 이런 나의 소설 세계에 꽤나 들어맞는 작품이었다. 이와 함께 이 작품을 쓴 성석제라는 작가의 소설관 또한 마음에 들었다. 어딘가에서 읽기를, 소설이란 건 무엇보다도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소설관이라 하였다. 물론 그가 말하는 소설의 재미와 내가 말하는 재미와 가벼움은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지만 조금은 공통성을 가지는 것 같기에 마음에 들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조동관 약전’은 가볍고 재미있는 소설이다. 이제 이 소설의 즐거움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보려 한다.
우선 그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은 ‘전(傳)’의 형식으로 쓰여졌다. 소설의 서두는 ‘똥깐의 본명은 동관이며 성은 조이다. 그럴싸한 자호(字號)가 있을 리 없고 이름난 조상도, 남긴 후손도 없다. 동관이라는 이름이 똥깐으로 변한데는 수다한 사연이 있어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다’라고 시작된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은 ‘똥깐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달구어지고 이야기 속에서 다듬어져 마침내 그의 짧고 치열한 일생이 전(傳)으로 남기에 이른다. 그 이름은 조동관 약전이다.’라고 마무리된다. 이것은 전통적인 ‘전(傳)’의 형식을 인유 혹은 패러디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형식에 그 내용은 ‘조동관’이라는 깡패가 얼마나 뛰어난 드잡이질의 능력과 악명과 위엄을 갖추고 있는가를 그의 일화와 무용담을 중심으로 펼쳐 보여 준다. 소설은 ‘똥깐’의 생을 성장, 사랑의 좌절, 죽음이라는 궤도를 따라가며 보여주는 것이다. 흔히 예부터 ‘전(傳)’이라는 형식이 신화나 위인전설 등에 많이 사용되었음을 생각해 보면 이 형식을 빌어 깡패의 이야기를 쓴다는 점부터가 한번 꼬여있는 것 같아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이 소설의 화자는 똥깐의 존재와 그의 죽음을 신화화하는 것 같아서 또 한번 그러한 비틈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화자는 똥깐의 죽음에 관해 직접적으로 슬픔을 드러낸다. 그리고 ‘남산의 못생긴 바위에는 ’똥깐이 바위‘라는 이름이 붙었고 그 아래의 굴에는 ’똥깐이 굴‘이라는 이름이 보태졌고, 그 앞의 비석은 ’똥깐이 비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훌륭한 깡패가 되려는 소년은 모름지기 그 바위, 그 굴, 그 비석으로 순례를 떠나야 한다는 전통이 생겨났다.’와 같은 설명 등은 똥깐의 삶을 신화화한다고 생각되어진다. 그 신화는 새로 부임한 경찰서장보다는 똥깐이라는 일그러진 영웅을 마음으로 숭배하는 토착적인 공동체 의식에 편승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신화화되고 숭배되어지는 이 소설의 주인공 똥깐은 어떤 인물일까? 한마디로 그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는 재미있으면서도 오묘하고 다중적인 느낌의 성격을 가진 캐릭터이니 말이다.
우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의 이름은 본디 조동관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똥깐이라고 부르며 그렇게 부르게 된 사연에 대해서는 정확히 나오지 않는다. 하여 이후에는 계속 그를 똥깐이라 하겠다. ‘똥깐은 이란성 쌍둥이의 동생으로 태어났는데 죽을 때까지 형 은관과 대략 일천 회 이상의 드잡이질을 벌였다. 그 드잡이질은 똥깐의 타고난 체격에 담력과 기술, 자잘한 흉터를 안겨주며 그가 은척 역사상 불세출의 깡패로 우뚝 서는 바탕이 되었다.’ 이런 똥깐이 한창 기찻간의 여자들을 쫓아다니더니 결국 한 여자를 데리고 은척으로 돌아온다. 똥깐이 데려온 여자는 ‘언뜻 보아도 스무 살은 훌쩍 넘어 보이고 떠꺼머리 총각 백 명은 능히 그의 치맛속에 돌돌 말아 다닐 것처럼 보였으며’, ‘도시에서 뭇 사내깨나 홀렸을 듯, 그러고서 뭇 사내의 손길에 농락 당하여 골병이 든 듯, 닳고 때묻은’ 느낌의 여자였다. 천하의 처녀 사냥꾼으로 군림하던 똥깐이 그런 여자를 선택하여 데려 왔다는 것부터 그가 오묘한 성격을 가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녀를 데리고 돌아온 후부터 몇 달간을 주말이고 주중이고 기찻간이고 읍내고 간에 똥깐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그저 그녀와 함께 차린 신방에서만 지낸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도 그의 오묘한 성격이 느껴졌다. (오묘하다는 표현이 더 오묘할 수도 있지만 필자의 느낌은 말 그대로 오묘하기에 계속 이렇게 표현하려 한다.) 사람의 성격이라는 것이 혹은 성질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사리 변하는 것이 아닌데 어려서부터 온 동네를 뒤흔들 정도로 드잡이질을 해오던 똥깐이 여자 하나에, 더군다나 이전에 이미 기차에서 호적상의 처녀가 아닌 진짜 처녀만 해도 백 명을 정복했다는 그가 몇 달을 그녀에 매달려 드잡이질을 하지 않고 산다는 것이 신기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진정 사랑에 눈뜬 것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이해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이해를 요구하는 일이 이후에 생겨난다. 어느 날 똥깐이 낮잠을 자는 사이 시어머니가 될 뻔한 똥깐의 홀어머니와 며느리가 될 뻔한 여인이 옴팡지게 싸우고는 이 일로 똥깐의 그녀가 은척과 똥깐을 말없이 떠나버린다. 이후 똥깐의 행적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조금 생각하게 만든다. 똥깐은 그녀와의 이별 후에 온갖 난동을 부렸으며 이 일로 재판을 받고 감옥으로 가게 된다. 계절이 두 번 바뀌고 나서 감옥에서 나온 똥깐은 그 여인을 찾아 동에 번쩍 서에 반짝 전국을 누비기 시작한다. 그녀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그녀와 비슷한 사람을 봤다는 제보가 있으면 어디든지 달려갔으며, 그녀의 육촌 언니가 하는 가게 일까지 무보수나 다름없이 묵묵하고 성실히 일을 해주며 그녀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는 것이었다. 사실 화자는 전하기를 ‘그 뒤로 몇 년, 똥깐의 순애보가 은척 사람들의 가슴을 사정없이 적셨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 전후의 똥깐의 행실을 볼 때 정말 이렇게 그녀를 찾아 헤맨 것이 그의 순애보였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만약 진정한 순애보였다면 깡패의 로맨스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혹 그의 성격으로 짐작할 때 배신에 대한 일말의 복수였다면 어떨까. 대체로 화자는 그의 순애보로 나타내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의문을 가지는 건 그녀를 만나기 전의 똥깐과 일명 정신을 차렸다는 이후의 똥깐의 모습을 볼 때 정말 그가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랑과 관련하여 볼 때 그는 조금 오묘한 사람인 것이다.
앞에서 그를 다중적인 캐릭터인 것 같다고 하였는데 이는 그의 태도와 관련한 것이었다. 똥깐은 자신이 데려온 여인에게는 분명히 강제적이지 않고 잘해주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똥깐에게 강제로 끌려온 것이 아니라 분명 그를 따라 은척에 제 발로 걸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신방을 차린 이후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그녀와의 생활을 즐겼으며 앞서 말한 사건을 똥깐의 순애보로 생각한다면 그는 그녀에게 무척이나 공들이고 잘 대해주었을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똥깐은 자신의 부모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그녀와의 신방을 차리기 위해 똥깐은 그의 홀어머니와 은관을 비루먹은 나귀를 팔아 나귀가 들어 있던 마굿간에 방을 들여 살게 하였으니 말이다. 여기서 또 한번 앞서의 문제가 나타난다. 즉 홀어머니와 쌍둥이 형에게 이렇게 대하는 자가 과연 순애보를 가졌었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그의 순애보에 대한 얘기는 덮어두고 또 다른 태도에 대해 살펴보자. 그렇게 잘해 주기만 했을 것 같은 그녀에게 똥깐은 낮잠에 취해서 떠나겠다는 그녀의 말에 잘가라는 둥 혹은 화를 내고 욕을 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런 점을 보면 도무지 똥깐의 성격을 종잡을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는 어떻게 보면 이렇다가도 또 다르게 보면 저러니 말이다. 물론 전반적으로는 깡패라는 성격으로 일관되고 있지만 그녀가 개입되어지는 그의 삶에서는 꽤나 일관되지 않는 성격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일관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거의 깡패의 성격과는 극을 달리는 부분을 보여주기도 하고 그와 또 극을 달리는 부분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 같다. 이런 점에서 똥깐이 다중적인 느낌의 인물이지 않나 하고 생각해 본다.
이렇게 소설의 전반을 차지하는 똥깐도 재미를 주지만 똥깐을 제외한 소설 속의 인물들 또한 똥깐 못지 않은 흥미롭고 재미를 가져다 준다. 우선은 그의 형인 은관이다. 은관은 동생인 똥깐과 함께 ‘조십단‘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이는 합기도, 유도, 태권도의 단수를 합하여 10단이 된다는 것을 말하는데 사람들은 똥깐과 같이 은관이 있는 곳에서는 절대 이 별명으로 부르지 않았다. 이유인 즉 이 별명이 나쁘게 발음하면 그대로 욕이 될 수 있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들이 없을 때에는 ’똥깐이가 조씹다니하고 술 먹다가 전당포 주인을 깔고 앉은 사연‘ 등을 즐겼다. 별명에서만 겨룬다면 아마도 똥깐보다는 ’조씹다니’가 더 웃기고 우위에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별명만으로도 웃음이 나지만 그의 옥상 사건에는 미치지 못한다. 똥깐과 함께 드잡이질을 하던 은관이지만 그의 아내에게는 이기지 못하였다. 노름판에서 다방 아가씨와 함께 노닐고 있는데 아내가 나타나 은관은 자신의 신체 일부를 잡힌 채 그 건물 옥상에서 머리에 피칠갑을 한 것이다. 그 다음부터 은관은 그 좋은 노름도 여자 올라타는 일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은관의 활약은 이후 경찰이 산에 숨은 똥깐을 설득하기 위해 은관에게 종이를 읽도록 시킨 사건에서도 나타난다. 가족인 것을 감안하여 경찰은 은관에게 미리 준비된 내용을 읽도록 시키지만 은관은 글자를 잘 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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