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황동규 최승 자시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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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과거나 지금이나, 금전적 여유가 없는 남자와 평생을 약속하는 여성은 그다지 많지 않다. ‘나타샤’도 ‘나’를 ‘사랑’은 하지만, 평생을 함께 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결혼은 ‘현실’이니까.
시 속의 ‘나’는 이미 ‘나타샤’에게서 버림받았다. 시의 가장 첫 연을 보면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라고 화자는 말하고 있다. 이 시에서 ‘눈’이란 시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장치이자, 화자의 쓸쓸하고 외로운 처지를 더 잘 보이게 만들어주는 요소인 것 같다. 그런 눈이 푹푹 날리는 한 가운데 화자는 혼자 앉아 쓸쓸히 소주를 마시고 있다. 실연당한 남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슬프게도 ‘나’는 아직 ‘나타샤’를 사랑한다. 그래서 생각한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고. 하지만 ‘나’는 ‘나타샤’가 자신과 함께 산골로 가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것은 3연, 3행인 ‘아니올 리 없다’에서 알 수 있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 하였지…. 결단코 ‘나타샤’가 ‘나’에게 다시 돌아올 리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동안 순수문학의 깊이를 사랑하고 경외하던 사람들은 이수일과 심순애의 속물적인 사랑의 파멸을 벗어나려 애썼다. 사랑이라는 고귀한 감정이 한낱 금전적 가치에 의해 사라지다니. 이런 저열한 현실이 있을까. 그런데, 지금의 ‘나’가 그 상황에 처해있다. ‘나타샤’는 ‘산골’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 인정하는 순간. 정말 ‘나타샤’는 나의 삶에서 사라지는 것이니깐. 그래서 나는 지금 최선을 다해 멋진 척을 하고 있다. ‘나타샤’ 니가 버리고 간 ‘나’는 너와 다르다. 너와 훗날을 약속할 그 누구와도 다르다. 세상을 등지고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바로 내가.
마지막 연을 보면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라는 말이 나온다. 맞다, ‘나타샤’는 나를 사랑한다. 하지만 남은 인생을 ‘나’와 함께 하지도 않을 것이다. ‘흰 당나귀’도 ‘나타샤’가 ‘나’를 사랑해주는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소주와 억지로 고개를 든 허세가 없으면 이 눈 오는 밤을 지새기 가 힘들다.
즐거운 편지-황동규
소년(으로 추정되는 화자)은 지금 사랑을 하고 있다.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는 일은 소년에겐 자연의 흐름처럼 ‘사소한 일’이다. 하지만 소년의 마음과 소년이 사랑하는 이의 마음의 깊이가 같지 않다. 사랑을 하는 소년은 시에서 지금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소년은 미래를 기약할 뿐이다.
소년은 자신의 사랑이 사랑으로 완성되는 까닭은 자신의 사랑을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다고 말한다. 이건 슬픈 말이다. 잘 안될 사랑에 자신이 푹 빠져 있다는 것을 알기에, 소년은 자신의 사랑을 기다림으로 바꿔버린다. 그렇게 하면 자신의 기다림이, 사랑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 기억이 사라지는 미래의 어느 날까지 자신의 사랑은 이어질 테니깐. 그때까지 우리의, 나의 사랑은 이어지는 것이겠지. 현실에서 완성될 수 없는 사랑의 끈을 소년은 놓고 싶지 않은 것이다.
어떤 종류의 것이든 ‘결핍’은 아이를 어른으로 만든다. 충족되지 않는 사랑의 결핍은 소년의 정신만 쭉 늘린 것처럼 애어른으로 만들어 버린다. 사랑을 하기 전의 자신보다 훨씬 커버린 소년은 이미 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말이다. 그리고 ‘그때’ 자신이 취하고 있을 ‘자세’를 생각할 뿐이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 다고 했던가. 길게 찢어져 있던 상흔도 흐르는 시간에 의해 무뎌지고 아물어 간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단단한 새살이 올라올 것이다. 무수한 상처와 경험으로 소년은 오늘도 자랄 것이고, 언젠가- 어린 날 사랑의 상처쯤은 추억으로 회상할 수 있는 깊은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앳된 얼굴에 어른의 눈을 가진 소년은 보기 안쓰럽지만, 자라는 모든 것엔 성장 통이 필요하다. 죽을 것처럼 아픈 오늘 날도 모두 과거의 일이 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년은 지금 사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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