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 선생과 복덕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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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불우선생』과 『복덕방』
이태준이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관찰하여 선명한 인간상으로 부각시킨 인물은 대체로 사회에서 소외당한 인물이다. 그 가운데 노인을 작중 인물로 등장시켜 그들의 사회적 역할과 의미를 조망한 것이 <불우 선생>과 <복덕방>이다. 대부분 현실사회에서 소외되어 궁상맞게 살아가는 초라한 그림으로 이태준은 이렇게 사회의 변화와 인간관계를 그 시대 가장 주변적인 인물들의 애달픈 삶을 통해 잔잔히 그려내 우리에게 삶의 진실을 일깨워준다. 이들은 사회 중심부에서 밀려나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가해지는 외부 압력에 대해 느낌조차도 둔감한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피해를 받는 사람들이다. 작품 속 노인들은 모든 욕심을 버리고 한가로이 과거를 반추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얻어 과거의 젊음, 가족, 명예, 부 등, 현재의 시간과 공간에서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회복해야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과거를 다시 회복할 수 없음은 이미 미래도 없다는 것을 말한다.
『불우선생』
1932년 4월 『삼천리』에 발표된 불우선생은 이후 『달밤』(1934), 일어판 『복덕방』(1941), 『이태준단편집』(1942) 그리고 『복덕방』(1947) 등 네 곳에 재수록된 단편이다.
- 송모(宋某)라는 노인(나와 나의 친구 H는 그를 ‘불우선생’이라 부른다)은 십 여년 전만 해도 천여석 추수를 하던 부농이었고 한 때는 신문사의 주요 간부로 재직하기도 한 인물이지만 현재는 퇴락하여 가족들이 서울에 있음에도 여관을 전전하며 불우하게 살아간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한 여관에 있을 때였는데, 그는 만나는 동안 자신의 과거를 잘 이야기해 주었다. 집이 빚에 넘어가 주인이 바뀐 이야기, 교통사고를 당해 죽을 뻔한 이야기 등. 그러면서도 시국적인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나를 압박하는 위품은 잃지 않고 있다.
여기 ‘나를 압박하는 위품’을 잃지 않은 송노인의 모습은 『삼천리』에 발표된 것보다 『달밤』에 수록된 것에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살아난게 또 욕이지요...... 그런데 요즘 일중문제는 꽤 주의를 끌지요 맹랑하게 전개되거든......
이 말을 하는 불우선생은 돌연히 지난 여름 의신여관에서 보든 때와 갓치 이상한 정렬에 눈이 빗나기 시작하엿다.(『삼천리』,1932.4)
내...... 그런데 요즘 일중문제가 꽤 주의를 끌지오? 한다.
글쎄요 저는 그런 방면엔 문외한이올시다.하니
그럴리가 있소 그렇게 발랄한 청년시기에...... 요즘 극동풍운이 맹랑해지거든..... 하는데는 불우선생은 돌연히 지난 여름 의신여관에서 보던 때와 같이 형형(炯炯)한 정렬에 눈이 빛나기 시작하었다. 그리고 그는 나의 음식을 먹으면서도 나를 자기가 먹이는듯 무엇인지 나를 압박하는것이 있었다.(『달밤』,1934.7)
위에서처럼 그는 파행적으로 전개된 근대화의 오류를 시정하고자 분투하는 민족 지사의 반열에 속하는 인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현재의 불우선생의 몰골은 현실 생활에서 빗겨난 패배자이며 시대착오적인 기인이며, 보잘 것 없는 걸인의 모습이다. 이런 상반된 평가가 가능한 인물을 통해 작가는 송영감이 기인으로 취급되는 현실을 반어적으로 꼬집고 있다. 과거의 경력으로는 학식도 있고 물질도 가졌던 사람이지만 현재 그에게는 삶의 방향과 지표가 없다. 한말의 혼란기와 식민지 시대에 여관방을 전전하며 굶주린 생활을 하지만 부조리한 시대적 상황에 대해서만은 비분강개하는 ‘불우선생’ 은 시대 속에서 철저히 소외당하는 인물로서 현실에 대해 처절한 저항은 하지 않지만, 웃지 못할 웃음과 소멸의 비애감 속에 반어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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