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보橫步염상섭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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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횡보(橫步) 염상섭
Ⅰ. 작가의 생애와 활동
염상섭은 1897년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서 부 염규환과 모 경주 김씨 사이의 6남 2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조부는 대한제국 시대에 중추원 참의를 지냈으며, 부친은 어린 시절 영친왕의 생모인 엄비와 소꿉동무였던 관계로 쉽게 벼슬길에 오를 수 있었는데, 여러 곳의 군수를 두루 지내 생활은 넉넉한 편이었지만, 평생을 술로 보냈다고 한다. 상섭은 5살 때 조부로부터 「동몽선습」을 배우다가, 1905년 보성소학교에 입학하여 1911년 졸업했다. 소학교를 마친 그는 이어 보성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이듬해 학교를 중퇴하고 15살의 어린 나이로 일본 유학의 길을 떠났다. 동경으로 간 그는 아사부 중학(麻布中學)에 편입하였고, 1917년에 게이오 대학(慶應大壑)에 입학했으나 학비 조달이 여의치 않자 중퇴하고 복음인쇄소 직공으로 취직했다.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그는 오사카(大阪)에 거주하는 동포들을 상대로 <독립선언서>를 골필로 등사하여 돌리고 궐기를 준비하다 체포되어 한동안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때 동아일보가 창간을 서두르고 있었는데, 1920년 진학문(秦學文)으로부터 동아일보에 입사하라는 편지가 왔고, 이것이 ‘기자 염상섭’의 출발이었다. 동아일보의 기자 활동과 함께 귀국 후에 동인지 「폐허」에 참여하였다. 횡보는 처음에 소설 뿐 아니라 시, 수필, 평론 등 다방면에 걸쳐 관심이 많았고, 또 어느 분야든 손을 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1919년 경부터 「삼광송」「법의」「박래묘」「이중해방」등의 시, 수필, 평론을 발표했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소설가로서 이름이 부각되고 성과를 거둔 작품은 1921년 「개벽」지에 발표한 「표본실의 청개구리」라고 하겠다. 우리 나라 최초의 자연주의 소설이라 할 수 있는 「표본실의 청개구리」발표 이후 그는 일약 <문단의 재인(才人)>이란 찬사를 들으며 「암야」(1922년 개벽 1월호), 「제야」(1922년 개벽 2월호)를 냈고, 이어 1923년 「신가정」지에 중편 「묘지」를 실었는데, 이 작품은 훗날 단행본으로 발간할 때 「만세전」이라 개칭하였다. 그리고 그는 소설 외에 <개성과 예술>, <지상선을 위하여> 등의 평론을 발표하여 한국 최초로 자연주의 문학을 소개하였다. 이후 그는 1925년에 단편 「금반지」「전화」「고독」「윤전기」를 발표하고 1927년에는 장편 「사랑과 죄」, 단편 「밤」「두 출발」등을 발표하면서 사실주의에의 경도가 더욱 농후해진다.
1929년 상섭은 조선일보사 학예부장을 지내는데, 이 무렵 그는 32살의 노총각으로 18살의 김영옥과 결혼을 한다. 1931년에는 대표적인 사실주의 작품인 장편「삼대」를 발표한다. 이 작품은 1931년 당시 그가 학예부장으로 있던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다. 결혼 후 서울에서 살던 횡보는 1936년 만선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부임하여 만주로 건너가 살았다. 이때 상섭은 39살의 원숙한 풍모를 지녀 묵중하고 빈틈없는 짜임새와 사실 묘사로 중류 이하의 서민 생활을 취재하였는데, 그 때 그의 부친이 돌아갔다. 815 광복 후 1946년 월남하여 돈암동에 거주하였고, 그때 창간된 경향신문사의 편집국장으로 일하였다. 1949년에는 두 여인을 통해 해방 후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실주의 소설인 단편 「두 파산」을 발표한다. 1951년 625 동란 중 해군 정훈장교로 종군하였다. 휴전 후 횡보는 북아현동에 있는 그의 조카 집에서 기거하였는데 한 방에서 여섯 식구가 아주 어려운 생활을 하였다. 이 무렵부터 그의 건강은 더욱 나빠지고, 이마에는 불그스름하고 조그만 혹이 생겨났고, 생활도 극도로 어려워졌다. 건강이 매우 나빠진 염상섭은 1962년 31문화상 수상, 대한민국 문화훈장 서훈 등의 영예를 받으나, 「사상계」에 「횡보 문단회상기」를 연재하다 1963년 3월 14일 그의 나이 66세에 직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초기의 많은 작가들이 만년에는 거의 붓을 놓고 지낸 것과는 달리 사망하기 직전까지 계속 붓을 놓지 않고 작품을 썼는데, 생전에 장편 28편, 단편 150여 편, 평론 100여 편, 기타 잡문 240여 편의 방대한 분량과 그 수준을 보아 그의 치열한 작가 정신을 엿볼 수 있다.
Ⅱ. 작가의 경향
염상섭은 우리 근대소설사에 있어서 특히 김동인과 비교되는 자연주의와 사실주의 작가로 정평되고 있다. 염상섭의 문학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정신의 구현 및 서울 중류 계급의 어휘와 문체의 완벽한 구사라는 특징을 갖는다. 또 보수적인 세계관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속한 계층의 한계를 인식함으로써 당대 현실을 냉혹하게 드러내어 비판하였고, 또 본격적으로 전형적이라고 할 만한 인물을 창조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염상섭은 채만식 등과 함께 리얼리즘 문학을 발전시키는 데 뚜렷한 공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처녀작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비롯해서 「암야」(1922)「제야」(1922)「신혼기」(1923)「만세전」(1924) 등 초기의 작품에서는 어둡고 침울한 경향을 보이면서 절망적인 사회 현실을 실험주의적자연과학적인 방법으로 작품화한 자연주의 문장을 구사해 갔다. 이러한 경향의 작품들은 현실을 비판적 시각에서 바라보고 작품 내적 질서를 통해 재해석함으로써 개성적인 색채가 짙게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그 가운데는 아직 작가의 냉철한 관점이 정립되어 있지 않은 듯한 면모를 보이는 작품도 있다. 그러나 그 다음 시기에 씌어진 것으로 묶을 수 있는 「금반지」(1924)「전화」(1925)「조그만 일」(1926)「밥」(1927) 등과 같은 작품들에서는 훨씬 사실주의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져서, 식민지적 현실의 암담함 속에서 생존을 위해 애쓰는 서민들의 애환과 그들의 생활상에 내재되어 있는 불암정, 빈궁 등의 문제를 매우 리얼하게 그려내었다. 이후로도 주로 치밀한 관찰로 구체적인 현실감을 드러내는 사실주의 계열의 작품을 썼으며, 특히 1931년에 발표된 「삼대」는 사실주의 경향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Ⅲ. 문학적 특성
염상섭은 김동인, 현진건과 같이 한국 근대소설 초창기의 선구자이며, 개척자의 한 사람이다. 그는 한국 근대소설사의 초기에 사실주의 문학을 건설한 선구적 작가 중의 하나이며, 최초로 자연주의 염상섭 자연주의의 한계 : 그의 평론<개성과 예술>에 표명되어 있는 자연주의 사상이 당시의 자연주의 이론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지만, 여기에는 자연주의 변호론 외에 개성주의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짐에서 알 수 있다. 즉 염상섭은 자연주의를 르네상스적인 개인주의 및 낭만주의와 혼동하고 있었고, 당시 이론적으로 자연주의의 개념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갖고 있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문학론을 제기한 중심 인물이며, 근대적 비평활동의 선구자였다.
1. 시대적 현실 인식
염상섭의 많은 작품 중 그의 초기작에 해당하는 두 장편 「만세전」(1922)과 「삼대」(1931)는 식민지 체제하의 당대적 현실의 충실한 제시를 통하여 작가의 현실 인식을 잘 나타내 주고 있는 작품이다. 염상섭의 시대 현실에의 관심은 처녀작 「표본실의 청개구리」(1921)에서 이미 시사되었지만, 「만세전」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다.
참고문헌
※ 참고 문헌
김봉군 공저(1984), 한국현대작가론, 민지사
이주일(2002), 한국현대작가연구, 국학자료원
권영민(2002), 한국현대문학사, 민음사
윤병노(1991), 한국근현대문학사, 명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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