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쇼몽의 영화 속 화자는 어떤 코드에 입각해서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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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몽’의 영화 속 화자는 어떤 코드에 입각해서 말하는가?
과제에 언급된 ‘코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자료를 찾아보았으나 영화 속 인물들의 코드를 정확하게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을 밝히며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우선 영화 속 인물이 아닌 감독과 영화의 내용에 대해 잠시 언급하고 이 영화가 ‘상징적 코드’에 입각해서 제작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소설 ‘라쇼몽(나생문)’과 ‘야부노나카(수풀 속)’ 두 편을 혼합하여 만들어진 영화 ‘라쇼몽’은 영화의 내용 대부분이 ‘야부노나카’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제목이 ‘라쇼몽’이다. 이것은 단순히 이야기가 전개되는 장소가 비를 피하기 위해 모이게 되는 ‘라쇼몽’이어서는 아닐 것이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영화를 만들면서 무엇보다 ‘상징적 코드’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반쯤 허물어진 듯한 외관을 가진 ‘랴쇼몽’의 모습을 비추면서 시작하는 영화는 1950년대 당시 시대상의 피폐함과 궁핍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의 불완전함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감독은 영화 전반에서 느낄 수 있는 ‘에고이즘에 바탕을 둔 자기합리화’를 통해 추악한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었고 그것을 허물어져 가는 라쇼몽으로 상징하고 싶어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뭇꾼이 버려진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할 때 스님은 인간에 대한 불신을 거두고 희망을 찾게 된다. 이 때 화면 가득 허물어져 가는 ‘라쇼몽’에는 햇살이 비친다. 영화 속 주인공 중 누가 진실을 말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인간에 대한 신뢰 회복, 희망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영화 ‘라쇼몽’에서는 허물어져가는 ‘라쇼몽’이 갖는 ‘상징’이 중요하다.
그럼 영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라쇼몽’에 등장하는 사람은 도둑 타조마루,사무라이(남편)와 아내, 나뭇꾼, 행인, 스님으로 모두 6명이다. 영화 속 인물들 중 사무라이의 죽음과 관련된 진술을 한 사람은 모두 4명(도둑, 아내, 무당의 입을 빌린 남편과 나뭇꾼)이다. 그리고 그들의 진술은 일치하지 않으며 사건과 직접 관련이 있는 세 사람(도둑, 남편과 아내)은 서로 자기가 죽였다고 한다. 이것은 교수님께서 앞부분에 언급하신 ‘일본인들의 특성’과 감독이 영화에서 보여주고 싶어한 ‘인간의 특성’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일본인들에게 있어 ‘명예’, ‘치욕’은 아주 중요하다. 즉 자기 행동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중요하고 그것에 관심을 갖게 되고, 신경을 쓰게 되면 결국은 그에 맞게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등장 인물 세 사람은 숲 속에서 일어난 일을 진술함에 있어 자기합리화를 하는 동시에 일본 사회 전반에 깔린 명예와 치욕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사람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코드’에 입각해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수 있다는 도둑 타조마루.
그는 지금껏 누구와 대결하든 져본 적이 없을 것이고, 그가 사무라이를 죽이지 않았다면 그와의 대결에서 도망을 간 것인데 그렇게 말하는 것은 스스로 명예롭지 못한 행동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정말 사무라이를 죽였다 하더라도 묶여 있는 사람을 이유없이 죽였다고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살인에 정당한 이유가 필요했고 그가 내세운 이유는 ‘아내가 두 사람 중 살아남은 사람을 따르겠다’고 말해서 살의를 느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묶여있는 사람을 해치는 것은 악명 높은 도둑이 할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남편을 풀어준 뒤 23합이나 겨루었다고 말한다. ‘23합’이라는 것은 자신의 진술이 정확하고 진실되다는 알리고자 하는 심리적인 의도를 포함하는 것처럼도 여겨지고, 그만큼 자신의 실력이 좋다는 것을 또한 알리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던 것 같다.
남편을 따르며 일부종사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시대를 살아가는 아내.
그녀는 남편이 보는 앞에서 폭행을 당했고 남편은 죽었지만 자신은 살아남았다. 폭행을 당한 아내로서 살아있다는 것도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았을 것이고, 어떤 과정을 겪었던 남편만 죽게 두었다는 것 또한 치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절개를 잃고서 살기는 어려울 것 같아 자살을 결심했고 자신의 봉변을 목격한 남편을 혼자 남겨둘 수 없어 함께 죽자고 말했다고 그녀는 진수했다. 실제로 그렇게 말했는지, 남편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는 ‘죽여라’라는 말을 들었다고 함으로써 남편 살해의 이유를 말한다. 폭행당한 유부녀가 살아가기 어렵다는 사회적 특성을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죽음보다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인 인간의 모습이다.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진정 그녀가 자살을 결심했는지도 의심하게 되고, 그녀는 남편의 죽음 이후 혼자 살아가기 위한 타당한 이유가 필요했던 게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남편의 죽음 후 여러 차례 자살 시도가 실패하였고 그래서 ‘관세음보살조차 자기를 버린 게 아니냐며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말하는 그녀. 그녀는 자신이 절개를 잃은 것은 폭행을 당한 것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말하면서 당시 아내들에게 절개를 강요하던 사회에 대한 비난을 자신을 이해하거나 보호해주지 않은 남편, 비웃음이 담긴 남편의 차가운 눈빛으로 대신 표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12세기 사무라이였던 남편.
일본의 사무라이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지만 그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명예’였던 것 같다. 그는 어떤 이유에서든 숲 속에서 만난 도둑에 의해서, 혹은 도둑에게 폭행당한 아내에 의해서 죽었다고 말할 수 없는 사무라이였다. 그가 진정 용감한 사무라이였다면 아내의 폭행을 막았거나 도둑과 목숨을 건 결투를 벌였겠지만 그는 나약한 사무라이였던 것 같다. 그래도 그는 사무라이였다. 그는 아내를 구해주지 못한 것을 반성하기보다는 폭행당한 아내가 예뻐보였고 아내가 도둑에게 자신을 데려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죽음과 관련된 모든 잘못을 아내에게만 뒤집에 씌운다. 도둑도 기가 차서 아내를 걷어찼고 도둑이 도망가면서 새끼줄을 한 군데 끊어 놓고 갔다는 표현을 하면서 은근히 도둑을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진술들을 보면 그가 진정한 사무라이라고 할 수 없지만 사회는 그가 사무라이인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그는 사무라이처럼 죽어야 했기에 스스로 자살했다고 말해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여섯 명의 아이를 키워야 하는 가난한 나무꾼.
나무꾼은 사무라이 남편의 죽음과 직접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앞서 진술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부인하면서 영화가 진실의 모호성을 향해 나아가게 만든다. 그리고 나무꾼도 가난하고 피폐한 일본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는 인물이다. 사실 그의 진술은 그렇게 진술할 수 밖에 없었던 사회적 코드에 입각했을지 모르지만 그의 진술 내용은 심리적 코드에 가까운 게 아닐까? 자신이 보석이 박힌 단도를 가져갔다는 걸 숨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도둑이 남편을 찌르고 두 개의 일본도를 가지고 갔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들의 진술 내용이 어떤 코드에 입각했느냐 보다는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체면이나 명예를 위해 거짓을 말할 수 있고, 자기합리화를 할 수 밖에 없는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진실이 무엇이든 가끔은 그 진실을 숨긴 채 거짓을 말해야 하는 그들을 이해할 수 밖에 없는 우리들 또한 나약한 인간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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