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향기 묻어있던 전남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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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4.24 / 2015.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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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향기 묻어있던 전남을 다녀와서
출발하며
개강을 하기 훨씬 전부터 기대를 했던 것이 학술답사였다. 우리 문학의 거장들의 유적지를 내 두 발로 밟을 기회가 흔히 있었던가! 따라서, 이 답사에 대한 설레임은 예비 국어교사로서의 나의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기분 좋은 것이었다. 그러나, 답사 하루 전날까지 답사비를 준비하지 못해 전전긍긍할 때에는 정말 낭패였다. 아버지께 ‘죄송하지만, 이번 한번만 빌려주십시오.’하고 받은 7만원을 손에 쥐고, 학교로 향하던 길에는 햇볕이 좋아 다행이었다. 돈을 준비 못한 것이 답사에 대해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고 출발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나하고 자책을 했었던 것이다. 복스럽게도, 기분 좋은 날씨 덕에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첫째날
새로 오신 조교 선생님과 나란히 앉아 첫인사를 나누고, 첫 만남의 어색함이 좀 사라질 즈음에 남원에 도착했다. 시간은 예정에 10분 늦은 오전 11시 40분이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차분하고 조용한 거리를 바라보며, 나는 준비해 간 수첩과 학술답사 자료집, 그리고 나름대로 만들어 본 ‘유적지 조사’ 뭉치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 답사기를 쓸 자료도 만들고, 기억력이 별로인 내 머리에 좀 더 남길 요량으로 답사 내내 이것들을 들고 다녔다. 물론, 답사에 더 순수하게 집중하지 못한다는 생각도 했지만, 이렇게 답사기를 쓰려니 분명 도움이 되어 반갑다. 아무튼, 생전 처음 발을 디디는 전라도는 말이 느리다더니 공기마저 천천히 움직이는지, 나는 마음이 차분해지고, 호흡도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야~ 전라도 좋구나. 남원 좋다.’ 하며, 입장한 처음 답사지가 광한루였다.
광한루원
광한루로 들어서면서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뎐’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춘향과 몽룡이 처음 만난 곳이라 했던가? 영화 속의 그 곱던 춘향이를 몽룡이가 여기서 처음 보고 반했다지? 나는 아는 데까지 사랑가를 흥얼거리며 출입문으로 들었다. 청허부(晴虛府)라 적힌 출입문은 아래를 지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게 했다. 높다랗고, 널찍한 규모가 시원스러웠다. 깔끔하게 정돈된 잔디를 바라보며, 잘 다듬은 아스팔트 위를 걸어 들어갔다. 첫 답사지라 서툴렀었던 것은 금방 눈에 띄는 무언가가 없다고 실망했던 내 조급함이다. 눈 앞에서 춘향이와 몽룡이가 포옹하는 것이라도 볼 줄 알았다. 후에는 이런 조급함 후에 차츰 치료될 수 있었지만. 아울러, 답사지에서의 감동은 알고있는 것 만큼, 그것도 놀라움이나 감탄 보다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잔잔히 감동하는 것임을 나름대로 느껴보기도 했다.
그런 내게 처음으로 눈에 띈 것은 은하수에 앞발을 담그고 있는 완월정이었다. 지상인이 달나라를 즐기기 위해서 지은 것이라 하니, 과연 보름달이라도 뜬 밤에는 정자 아래 강물에 부서지는 달빛까지 힘을 합쳐 달나라를 만들 것도 같았다. 정자 위에 올라갈 수도 있다고 하니 나는 정말이지 기뻤다. 사진을 찍고, 정자 아래로 행운의 동전도 던지자니 그 옛날 완월정에서의 풍류가 이 이상이었을까 싶었다. 그만큼 처음부터 나는 흥분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달이 없는 완월정에서의 풍류는 가짜라는 생각에, 추석 밤에 올라가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하다.
다음으로 걸음을 옮긴 곳이 광한루였다. 완월정과 마찬가지로 흐르는 물 앞에 잘 자리하였지만, 이 놈은 발을 담그고 있지는 않았다. 신발을 벗어 던지고 발을 담근 완월정보다 더 양반인 것인지, 모양새도 더 단아하고, 귀품 있어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도룡이 저 넘어 그네를 뛰는 춘향이를 본 곳이라 하니 더 눈에 담아둘 수밖에 없었다. 잠시 광한루의 웅장하면서도 단정한 모습과 이도룡의 그 뜨겁게 두근거렸을 젊은 심장을 대조하며, 광한루에 젖어들고 있었다. 그런데, 두 가지 사실이 나를 감상에서 깨웠는데, 하나는 광한루에는 오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올라 오작교 너머로 이몽룡이 그랬듯 나도 춘향이를 찾아볼려고 마음먹었었는데 아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거기에, 이 광한루는 소설 춘향전 이 후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교수님의 설명이 또 한번 나를 깨웠던 것이다. 있을법한 일이었음에도 내 감상은 그런 짐작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춘향전’이란 소설이 어떻게 구전되었을지, 그리고 이런 장소들은 소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설명들을 들어갔다. 실제로 춘향이가 이 길을, 이 정자를 밟지 않았을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에 나는 잠깐이나마 적잖이 실망했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듣고도 춘향이와 몽룡이의 사랑이 군데군데 얽혀 있는 것만 같아 광한루원 전체가 예뻐보인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작교를 걸으며, 다리 아래로 가득 달려드는 내 허벅지만한 잉어들을 보면서, 춘향이가 있는 곳으로 건너간다고 농담을 늘어놓을 수 있었다.
월매집은 재미있는 곳이었다. 짚으로 지붕을 엮은 초가집 몇 채가 있었는데, 밥을 먹는 방자며, 이웃집 여자와 수다를 주고 받는 월매며를 볼 때에는 만든이의 상상력에 감탄하며 웃을 수 있었다. 압권은 둘이 백년가약을 맺었다는 월매네 부용당에서 춘향의 옷고름을 푸는 몽룡의 모습이었다. 괜히 가슴이 설레었다. 생각 못 했던 설레임에 조금 당황한 나는 재빨리 월매집을 나섰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춘향관이었다. 춘향의 일대기를 대형화폭 아홉 폭에 담아 전시하는 곳이었다. 춘향의 얼과 수절정신, 그것을 엿볼 수 있었다. 이것을 민족혼으로 기르고자 개관하였다는 설명 앞에서는, ‘수절정신이 민족혼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요즘일까’하는 생각을 한 것은 나뿐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춘향사당에서 본 앵두같이 고운 입술을 가진 춘향의 얼굴이 떠올라, 그 정신만은 높이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방자가 한 입 떠먹던 밥을 보고, 우리는 배고파했었다. 시간은 벌써 점심 시간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완월정, 오작교, 광한루를 배경으로 점심을 먹었다. 하얀 플라스틱 도시락 안에 든 하얀 쌀밥, 김치, 돈까스... 춘향이가 한 입 달래도 안 줄 만큼 맛있었다. 오작교의 덕이고, 완월정의 덕이고, 첫날의 그 깨끗한 하늘 덕이었다. 점심을 먹고, 늦지 않게 출발하여 오후 두시에 도착한 곳이 담양이었다.
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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