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남양군도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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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군도’를 읽고
이 책은 저자인 조성윤 교수님께서 직접 현지조사를 통해 알게 된 여러 가지를 저술한 책으로 남양군도가 어떤 곳이며 제국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켰을 때 남양군도가 어떤 상황에 있었으며 어떻게 전쟁을 겪었는지에 대해 알 수 있는 책이다. ‘남양군도’라는 말은 알고 있는 사람이 몇 없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나 또한 남양군도라는 말을 사회사 첫 오리엔테이션시간에 교수님을 통해 처음 듣게 되었는데 그 내용이 흥미롭게 느껴졌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남양군도가 어떤 곳인지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된 계기가 되었다.
우선 ‘남양군도’가 어떤 곳인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태평양 지역은 크게 미크로네시아, 멜라네시아, 폴리네시아의 3권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디 3권역 중 미크로네시아가 남양군도로 남쪽 바다의 섬들이라는 뜻이다. 남양군도라는 이름은 지금은 사라진 이름으로 1914년부터 1945년 까지 일본제국이 식민지로 지배할 때에 붙인 이름이다. 지금은 사라진 이름이다. 태평양전쟁이 있기 전 일본은 태평양으로 제국의 꿈을 뻗어 나갔는데 그게 바로 남양군도였으며 일본제국이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면서 미크로네시아는 당시 조선인에게 기회의 땅이기도 했고 강제동원의 괴롭고 힘들었던 역사가 남아 있는 고통의 땅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또한 노동자로 갔다가 전쟁 후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은 현지 주민과 결혼을 하기도 해서 미크로네시아에는 현재 우리 조상의 후손이 살고 있다고 한다. 즉, 미크로네시아 역시 한국의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지역으로 한국의 역사를 알고자 한다면 알아보아야 할 곳이 미크로네시아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한국과 비슷한 시기의 일본제국의 식민지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볼 수 있을 것이다.
계속해서 미크로네시아가 일본제국의 식민지가 되게 된 과정에 대해 알아 볼 수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영국이 영일동맹을 근거로 일본에게 참전을 요청하였고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이익을 추구하던 일본은 영국의 요청을 영향력 확대의 기회라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일본은 독일령 미크로네시아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제1남견지대를 편성하여 마셜제도와 카롤린 제도를 점령하였고 제2남견지대를 편성하여 사세보를 출발해서 마리아나 제도와 얍 섬을 시작으로 파라오코롤 섬, 앙가울 섬을 점령하였다. 당시 일본 의무성은 괌 섬이 미국령이기 때문에 괌 섬에 인접한 마리아나 제도를 군사적으로 점령하는 것은 미국에게 큰 위협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웠으나 해군은 섬들을 점령하였고 군항 깃발을 내걸었다. 이렇게 현지 부대가 강경하게 점령하는 방향으로 행동을 하자 해군의 입장을 정부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독일령 미크로네시아 지역을 점령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본 해군의 남양군도 점령은 일본 사회에서 수십년간 동안 논의되어 온 남진론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것을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한다. 일본은 왜 이리 남양군도를 탐내고 적극적으로 행동하였는지는 당시 일본인들이 갖고 있던 남쪽으로 뻗어나가고 싶은 욕망을 실현 시킬 수 있는 꿈에 그리던 지역이기 때문이라 한다. 일본 해군에게 해외 식민지 구정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민간인의 생활을 크게 제한하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행정 기술이 필요하였기에 방비대 사령관에게 전권을 맡겨 시행착오를 거듭해가면서 군정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1921년에는 남양군도에서 방비대를 철수하고 남양청을 신설하여 행정, 입법, 사법의 3권을 장악하였다고 한다. 이때 신설된 남양청은 조선에 설치된 총독부와 비교했을 때 위임통치라는 성격이 완전 식민지와 달랐기 때문에 규모도 아주작고 장관의 권한도 실질적으로 작았다고 한다. 그러나 척무대신의 거부권을 제외하면 완전한 집행권한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점은 조선의 총독부와 비슷하다 볼 수 있다. 일본제국이 남양청을 설치하고 남양군도에서 실행하였던 제도들을 살펴보면 조선 총독부에서 하였던 제도들과 매우 유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일본제국은 토지조사사업을 남양군도에서 실시하였는데 현지주민들은 일본어로 청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크게 부담을 느끼고 이러한 일본인 이민 사업을 위한 토지조사는 9년이 걸렸는데 그동안 원주민들은 토지에서 손을 놓아버리게 되고 남양청이 손에 쥘 수 있었던 토지는 현지주민이 소유한 토지의 3배 이상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렇게 근대법으로 포장한 토지 약탈은 조선에서도 나타났는데 토지조사사업의 기간을 매우 짧게 공표하였고 일부 농민들은 신고를 해야 한다는 사실 조차 모르고 있었을 뿐 아니라 당시 문맹률도 높은 편이어서 신고 하려해도 서류가 복잡하고 글을 읽을 수가 없어서 당시 조선에 거주하던 대부분의 농민들은 토지를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토지제도 뿐 아니라 남양군도를 점령한 직후부터 학교를 설치하였고 공학교 교육은 일본어 교육을 기본으로 하여 일본의 통치가 쉬워지도록 하였다는 점 또한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현지 주민교육의 특징이라 강조하면서 공학교에서는 국민교육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언어 습관이 다른 주민에게 일본의 풍속, 습관을 이해시켜서 일본인과의 실제 생활에 적응시키기 위해서는 일본인과는 다른 교육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면에서는 ‘국민’이 되라고 교육하던 조선과 다르다고 한다.
다음으로 태평양전쟁에 남양군도 지역이 어떤 방식으로 말려들었고 거주하고 있던 현지주민들이 전쟁 속에서 어떤 참화를 겪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충격적이었던 내용은 시모지마 전쟁 당시 집단자결 현장에 대해 인터뷰한 부분이었는데 피난민들이 전투가 시작되기 전부터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 헤매고 있었으며 일본군이 퇴각하는 방향으로 다같이 몰려가면서 숨었다가 퇴각하는 이를 반복하다가 모두 북쪽으로 몰려갔는데 일본 병사들이 반자이 돌격을 하고 죽고 난 다음에 어찌할 바를 몰라 피난민들끼리 움직이다가 절벽에서 집단자결을 선택하였다고 한다. 자결에 실패한 어떤 사람이 “집단자결이 아닙니다. 미군 병사에게 쫒겨서 북쪽으로 쫒기다 보니 살아있는 것이 무서웠기 때문에 절벽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죽는 편이 더 좋겠다고 생각해서 죽은 것이랍니다.”라고 말한 부분을 보고 일본의 교육인 황민화 교육이 얼마나 영향력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밖에도 태평양전쟁은 현지주민의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다고 한다. 이러한 참혹했던 태평양 전쟁은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이 항복하고 끝이 났고 남양군도는 모두 미군 통치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 후 미크로네시아연방과 마셜제도는 각각 1986년에 미국과 자유연합협정을 맺고 독립하였다고 한다.
지금까지 남양군도가 어떤 곳인지, 일본제국에 어떻게 하다가 지배를 받게 되었는지, 그리고 태평양전쟁이 남양군도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알아 볼 수 있었다. 일본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조선과도 비교해보았는데 조선에서는 끊임없이 독립하기위한 운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왜 남양군도 현지주민들은 강력한 저항을 하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도 들었다. 책에서는 일본이 남양군도 섬 주민들을 통제하긴 했지만 그들을 가혹하게 다루지는 않았다고 저술 되어있었는데 그러면 일본은 조선에서는 왜 조선인들을 가혹하게 다루었을까가 의문으로 돌아왔다. 또한 섬 주민들을 가혹하게 다루지 않아서 강력한 저항을 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일본 뿐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가 계속에서 통치하여왔기 때문에 지쳐버린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남양군도를 읽으면서 남양군도에 대해 알게 되고 일제강점기를 다시 생각하면서 비교해볼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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