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글래디에이터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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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리 스코트 감독의 영화. 글래디에이터는 고대의 로마 시대극에 도전하는 장르입니다. 실로 스토리를 단순화 시킨다면 검투사가 되어 돌아온 영웅의 드라마틱한 복수담에 실리는 고전주의와 SFX의 새로운 화학작용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상영되기 전부터 촬영장면이나 스케일에 대해서 여러 영상매체와 언론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졌는데 저 역시 그런 것들을 통해 영화를 보고싶다는 욕구가 무럭무럭 생겨나 버렸습니다.
스토리의 큰 줄기를 말하자면 갑작스런 로마 황제 아우렐리우스의 죽음으로, 생전의 황제가 가장 신뢰하던 장군인 막시무스는 갑작스럽게 감옥에 투옥되어 검투사의 처지로 내몰리게 됩니다. 이는 그를 두려워한 아우렐리우스의 아들이자, 새로운 황제인 코모두스의 계략에 휘말린 것이었죠. 하지만, 검투사로서 막시무스는 로마 백성들 사이에서 명성을 얻기 시작하고, 오히려 그의 인기는 타락한 황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양상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를 참을 수 없게 된 황제는 그를 콜로세움에서의 최후의 싸움에 불러내게 되고, 그를 처단하려고 하지요. 너무나도 익숙한 장면인 엄지 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는 제스쳐와 함께!
자! 정말 오랜만에 보는 고대 활극입니다. 장군에서 검투사까지 무척이나 터프한 모습을 보여주는 막시무스 역할은 러셀 크로우가 맡았습니다. <LA 컨피덴셜>에서는 약간은 무식해 보이는 형사를, <인사이더>에선 진실을 폭로하는 지식인 역할을 잘 소화해 낸 러셀 크로우는 이번 영화에선 심신으로 강인해 보이는 막시무스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특별히 몸 만들기를 했다고 하네요. 그의 상대역인 코모두스 황제는 리버 피닉스의 동생이라는 꼬리표를 이제 완전히 벗어버린 조와킨 피닉스입니다. 나약해 보이면서도 비열해 보이는 눈매를 가진 그에게 정말 딱 들어 맞는 캐스팅인 것처럼 보입니다.
이들 두 남자 사이에 끼여든 루실라 역은 코니 닐슨이라는 덴마크 여배우가 분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한국에서도 개봉한 <미션 투 마스>와 커트 러셀의 <솔져>등에 출연했습니다. 유럽 북구의 여자답게 무척 하얀 얼굴과 파란 눈동자가 인상적이더군요. 그 밖에는 <삼총사>의 아토스로 영원히 기억될 올리버 리드가 프록시모 역으로, <아미스타드>의 자이몬 혼수가 막시무스의 동료 검투사로 출연합니다.
영화의 첫 장면은 어두운 삼림에 수백명의 부대가 숨을 죽이고 서 있는 모습에서 시작합니다. 마치 폭풍전야와 같이 전투를 기다리고 있는 장면인데 로마의 위대한 장군 막시무스는 이 전투에서 뛰어난 용병술과 기동술로써 그의 군대를 다시 한번 승리로 이끌어냅니다. 죽을 날이 머지않은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막시무스를 총애하여 아들이 아닌 그에게 권력을 넘겨주기로 하는데 황제의 아들 코모두스는 이에 질투와 분노를 느껴 급기야 황제를 살해하고 마는 것이지요. 왕좌를 이어받은 코모두스는 막시무스와 그의 가족을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당연히 주인공인 막시무스는 가족을 모두 잃고 겨우 살아남게 되지만 노예로 전락하고, 투기장의 검투사로 매일 훈련을 받습니다. 그에게 남은 건 오로지, 새로 즉위한 황제 코모두스에 대한 복수 뿐. 막시무스가 가끔씩 떠올리는 가족들과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운 장면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행복을 앗아간 코모두스에 대한 복수심을 더 강열하게 만드는 작용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장면은 영화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도 나오는데 잃어버린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으로 죽음을 묘사합니다. 막시무스는 원래의 기량을 십분 발휘하여 검투사로서 매 경기마다 승리로 이끌면서 살아남게 되고 그의 명성과 인기는 날로 높아져 갑니다. 이에 로마의 콜로세움 경기장으로 옮겨지게 되고 로마로 돌아온 그는 아내와 아들을 죽인 코모두스에 대한 복수를 조심스럽게 구상해나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래 전 사랑했던 황제의 누이 루실라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어느새 민중의 영웅이 된 막시무스. 코모두스는 그가 아직 살아있음을 알고 분노하지만 민중이 두려워 그를 죽이지 못합니다. 드디어 막시무스는 예전의 부하들과 은밀히 만나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존경하던 황제를 살해한 난폭한 황제 코모두스에 대한 복수를 결의하게 되고 아직도 막시무스를 사랑하고 있는 루실라는 동생 코모두스를 배신하고 막시무스의 반란을 도우려합니다. 막시무스와 코모두스의 대결은 민중과 권력의 대립으로 표현하여 콜로세움에 세우게 되는데 로마시대는 시민들의 영향력이 상당히 강한 시대였기에 황제는 단순히 자신의 권력만으로 민중들의 바램을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황제를 대표하는 로마군과 민중을 대변하는 막시무스와 그의 부하들은 콜로세움에서 전투를 치르게 되고 여기서 장군으로서의 막시무스는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로마군을 물리치고 코모두스를 죽이는데 성공하지만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리들리 스코트의 새 영화 [글레디에이터]에 대해 읽다 보면 머리 속에서 데자뷰 현상이 빙빙 도는 걸 막을 수 없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안소니 만의 [로마 제국의 멸망]이라는 영화가 떠오를 것이다. [로마 제국의 멸망]과 [글레디에이터]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이야기다. 현제의 죽음 이후 몰락해가는 주인공, 사악한 새 황제, 심지어 주인공이 황제의 누이와 사랑에 빠지는 것도 같다. 어떻게 보면 [글레디에이터]는 [로마 제국의 멸망]의 리메이크처럼 보인다.
이런 유사성은 사실 그렇게 놀랍지 않다. 수많은 장희빈 텔레비전 시리즈가 다 비슷비슷한 내용을 다루는 것과 다를 게 없으니까. 두 영화의 시대 배경은 같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집권 말기와 코모두스 황제의 짧은 집권시기 말이다.
[로마 제국의 멸망]은 새무얼 브론스톤이 제작한 일련의 스펙타클 사극 영화들의 종지부를 찍는 작품이다. 브론스톤은 이전에 [엘 시드], [왕중왕]과 같은 호사스럽고 거창한 사극 영화들을 만들어 히트시킨 적 있다. 아마 그는 이번에도 비슷한 성공을 노렸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번에는 운이 따라주지는 않았다. [로마 제국의 멸망]은 상업적 재앙이었다. 한마디로 아무도 영화를 보러 와주지 않았던 것이다! 영화에 2천만 달러나 퍼부었던 브론스톤은 완전히 망해버렸다. 20세기 폭스가 [클레오파트라]로 끔찍한 재정적 지옥에 빠진지 꼭 1년 뒤의 일이었다. 로마 사극영화라는 장르가 죽어가는 순간이었다.
그럼 영화 자체는 어떨까? 이 영화는 재평가될 구석이 있는 작품일까?
거의 4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평은 그렇게 일치하지 않는 모양이다. 많은 평론가들은 이 영화의 쓸데 없는 장황함, 배우들의 낭비, 맥빠진 스토리, 역사적인 부정확성, 스노비즘을 비판한다. 그러나 또 꽤 많은 사람들이 영화의 스펙타클, 종종 지적인 대사들, 할리우드에서도 오래 전에 사라진 수공업적인 장인 전통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뭐, 두 입장이 그렇게까지 모순되지는 않는다. 각자 좋아하는 것들을 택해 비판한 것에 불과하니까.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라면, 나는 이 구닥다리 사극에 어떤 애착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다. 건방지고 스노비시한 작품이기는 해도 남는 것은 많고 인상적인 장면들 역시 많다. 특히 갑옷 입은 로마 병사들이 북유럽의 눈덮인 숲 속을 질주하는 장면들의 인상은 아주 강하다. 몰락이라는 분위기에 들어맞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일단 보기 힘든 장면이니까. 영화 중간 중간에 살짝 살짝 끼어드는 [철학 이야기]의 저자 윌 듀런트의 역사관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으며 코모두스 역의 크리스토퍼 플러머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역의 알렉 기네스는 인상적인 연기를 볼 수도 있다. 심지어 이 영화의 망가진 모습도 붕괴된 로마 시대의 건축물과 같은 매력을 풍긴다. 이 영화는 작품 자체로보다는 아름답지만 반쯤 망가진 시대의 유물로서 기억될 가능이 높다.
사실 드림웍스는 이 대규모 프로젝트에 대해 그다지 확신감이 있었던 것처럼은 보이지 않습니다. 딱히 전면에 내세울 스타 급의 배우도 없는데다가, 감독인 리들리 스코트의 최근 행보가 별로 변변치 못했거든요. 게다가 새로운 세기가 시작하는 때에, 과거 로마를 배경으로 하는 검투사 이야기가 먹힐지도 미지수였습니다. 과연 그 결과는? <글래디에이터>는 2주 연속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하면서, 주연을 맡은 러셀 크로우의 할리우드에서의 몸값을 마구 올려놓았고, 리들리 스코트 감독은 다시금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관심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말이 좀 길어지고 있지만, 이 영화의 감독을 빼먹고 넘어갈 수는 없겠지요. 리들리 스코트 감독은 1997년 <G.I 제인>이후 4년만에 작품을 발표한 셈인데요. 사실 리들리 스코트 감독은 1991년의 <델마와 루이즈> 이후 계속 하향세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92년작인 <콜롬버스>와 96년의 <화이트 스콜>은 흥행. 비평 양쪽에서 공히 부진을 면치 못했었죠. 그나마 <G.I 제인>은 흥행에선 리들리 스코트 감독을 구해주긴 했지만, 평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20년전 <블레이드 러너>에서 2019년의 로스엔젤레스를 환상적으로 그려낸 그가, 새로운 천년의 시작에 고대의 로마로 돌아갔다는 것도 참 인상적이죠? 영화 글래디 에이터의 배경과 이야기에 대한 설명은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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