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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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감상문
첫 번째 수업시간 말미에 교수님께서 우리들에게 던지신 질문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교수님께서는 나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무엇,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셨다. 얼마 살진 않았지만 평생을 무언가를 원하고 또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쉼없이 노력하는 삶을 살았던 나로서, 이 문제의 답을 찾는 것은 굉장히 쉬워보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나는 선뜻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었다. 그 날 하루 온종일 생각하고 며칠을 더 고민해보았지만 그래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의 본질은 무엇인지 한마디로 딱 정의 내리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
교수님의 수업을 모두 듣고,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책을 읽고 난 지금에 와서 그때를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의 내가 교수님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과거의 나는 눈앞의 이익만을 쫓는 짐승과 다를 바 없었다.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포착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 그것이 내가 살아왔던 인생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과 같은 행동들이 좋은 행동이고, 본능에 충실한 행동이 나쁜 행동이라고 생각했고 질이 좋은 가치를 추구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 가끔씩 본능에 굴복해 버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공부를 한 날이면 뜻 깊은 날이었다고 뿌듯해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선악은 행위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그런 단순한 개념이 아니었다. 사회에서 고귀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행위든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에 따른 행동이든 모두 인간의 이기심이 낳은 결과물 일뿐, 어떤 행동을 보고 그것이 선하다거나 악하다고 평가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행위 자체에 선악은 없다. 결국 내가 추구해왔던 것은 모두 내 이기심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가치들이었던 것이다. 눈앞의 이익만을 쫓아 쳇바퀴를 돌고 있는 다람쥐.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먹이를 쫓아 무한히 쳇바퀴를 돌고 있던 나를 한걸음 떨어져서 보니 그렇게 우스꽝스러울 수가 없었다. 우리 속 다람쥐였던 내가 행복의 본질에 대해서 알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책에서는 나와 같은 현대인을 생물학적으로는 살아있지만 실제론 죽어있는 상태라고 표현했다. 나는 나이면서 내가 누군지에 대해 정확히 몰랐고, 물질적 행복감을 진정한 행복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유흥을 즐기며 사는 줄 알았지만 유흥이 날 즐기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과는 거짓된 대화를 나누며 죽어있는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사니까 으레 다들 그러하듯이 나도 그렇게 전형적인 삶의 모습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는 정도로 별 생각 없이 살아왔다. 죽어있다는 말보다 이 상태를 잘 표현해줄 수 있는 말은 없을 것이다. 나를 제외한 다른 많은 현대인들도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많은 책들을 보고 유명하다는 철학자의 강연을 쫓아다니며 살고 있지만 대부분 깊게 들어가지 못하고 죽어있는 채로 살고 있다.
죽어있다는 것을 확인만 하고 끝나면 굉장히 우울했겠지만 다행히도 이 책은 죽음에서 죽어 진정한 생의 세계로 나아가는 방법을 제시해주고 있다. 죽음에 취한 자가 죽음을 취하여 생명에 취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진정한 사랑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진정한 사랑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에로스적 사랑이 아니다. 책에서 말하는 사랑은 이 세상에 단 하나의 진리로서 존재하는 ‘그 사랑’이다. 이 사랑을 보편적인 개념으로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확실한 것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전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 말은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변화 가능성 모두를 사랑해야 한다는 뜻인데 타인의 타자성과 충돌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타인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나의 타자성이 죽어야 한다. 즉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내가 죽어야 한다. 이렇게 자아의 소멸과 함께 완성되는 사랑이야 말로 이 세상에 진리로서 존재하고 있는 단 하나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랑과 함께했을 때 우리는 몸적, 정신적 행복감에서 벗어나 진정한 영적 행복의 세계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이 이론을 어느 정도 이해하자 교수님 말씀대로 그 전과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몇몇 있었다. 우선 최근에 본 신문 기사 하나가 그랬다. 지구 멸망 시나리오를 몇 가지 적어놓은 기사였는데 앞서 적어 놓은 시나리오들은 핵전쟁, 지구 온난화 격화 등 지극히 일반적인 것들이었지만 마지막에 있는 것이 조금 독특했다. 마지막에 나온 시나리오는 ‘우주의 창조주가 더 이상 우주를 운영할 목적을 상실한다면?’이었다. 표제만 보고 굉장히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과학적인 근거가 있었다. 기사는 누군가가 우리 인간만이 살 수 있도록 우주를 만들어 놓았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다른 종에 비해 아주 특정한 환경에서만 살 수 있는 종족인데 이 우주의 자연상수들이 인간이 지구에 살 수 있도록 매우 교묘하게 조율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구의 환경이 너무 잘 맞춰져 있어서 실제 과학계에서도 인위적으로 우주를 창조한 존재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과학자들이 있다고 한다. 이 기사를 보니 교수님의 ‘그 사랑’이 떠올랐다. 진리로서 존재하는 그 사랑이 엄마가 자기 자식을 사랑하도록 프로그래밍 해놓았고 자연이 인간의 자궁이 되도록 조작되었다고 했는데 정말 그러한 유일한 진리가 어떤 엄청난 존재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가장 많이 떠오른 사람은 바로 돌아가신 외할머니였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셨던 외할머니는 언제나 ‘사랑’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사셨다. 늘 부모님을 사랑하고 동생을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하고 뭐든지 사랑하라고 말해주셨던 외할머니는 실제로도 사랑이 굉장히 많으신 분이셨다. 외할머니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고봉밥이다. 외할머니는 본인은 한 숟가락 밖에 안 드시면서 집에 있는 밥이란 밥은 다 퍼 주셨었다. 어머니가 자라왔던 이야기를 들어보면 외할머니는 정말 자신을 죽이고 타인을 사랑하신 분 같았다. 교수님이 말씀하신 사랑의 표본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는 외할머니는 평상시에 늘 끼고 다니시던 성경을 품에 안고 굉장히 행복한 표정으로 임종을 맞이하셨다. 외할머니의 자식들은 다들 공부를 잘해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삶을 살고 있고 나의 사촌들 역시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명문대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지만 어쩌면 삶의 진리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사람은 우리 외할머니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수업을 들으면서 끊임없이 들었다. 외할머니께서는 늘 하나님을 믿으라고 나를 볼 때마다 말씀하시곤 했다. 아직 한 번도 교회에 가본 적은 없지만 이번 방학에는 시간을 내어 성경을 한 번 읽어볼까 한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책 한권을 읽고 삶의 진리를 모두 파악하고 진정으로 살아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일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살아왔던 방식에 대해 고찰하고 사는 것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한 차원 높게 생각할 수는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통해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날 기회를 얻은 것이다. 세상을 다시 볼 수 있는 이러한 시각을 갖게 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앞으로 남은 삶 동안은 살아있는 상태로 살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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