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이밀의 진정표 와 주자청의 배영 이 주는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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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때 잘해
이밀의 ‘진정표’와 주자청의 ‘배영’이 주는 깨달음
중국어는 물론이거니와 중국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아직도 너무나 부족한 나이지만 타인에게 나를 소개할 때 내 이름 석자 이외에 중어중문학 전공이라는 이름표를 내세운 지도 어느새 3여년의 시간이 다 되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전공수업에서 나는 주로 중국 고문 수업을 들어왔다. 이번학기 역시 고문수업의 하나인 중국산문의이해를 통해 고문의 깊이를 십분 느낄 수 있기를 희망하며 수업을 들어오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중문과 수업 중에서도 내가 고문수업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실 언어수업에 대한 두려움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상대적으로 중국어 실력이 부족해도 수업이 가능할거라는 생각에서 시작되었지만 시간 시간 수업을 들어오며 이제는 고문의 매력을 조금씩 느끼고 있다. 함축된 문장을 내 힘으로 해석하여 옳고 그름을 비교 해볼 때면 어린시절 과자 상자에 그려진 숨은그림찾기의 정답을 하나씩 맞춰볼 때만큼이나 재미있고 나름의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 다음의 가장 큰 문장의 매력은 문장 속에 중국인의 역사, 중국인의 사상, 중국인의 가치관이 고스란히 베어있다는 점이다. 문장을 하나씩 배워가며 저자와 나와 그리고 함께 수업을 듣는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교류하는 과정은 진정으로 중문학과 소통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얼마 전 배운 이밀의 ‘진정표’ 역시 중국의 한 시대를 살다간 저자 이밀을 통해 중국인의 효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똑같은 문장을 통해 효에 대한 개개인의 같으면서도 다른, 다르면서도 같은 느낌을 교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수업 시간이었다. 그 여운이 아직까지 남아 수업시간에 미처 말 못한 생각들을 진솔하게 말해보려 한다.
10월초. 친한 친구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들과 장례식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슬퍼할 친구를 위로하고픈 마음은 당연히 있었지만 친구의 조부모 장례식까지 가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문상을 마치고 그 친구의 슬픔을 지켜보며 친구가 가지고 있었던 할아버지에 대한 정 그리고 사랑이 어떠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때 친구가 눈물을 흘리며 이런 말을 했었다.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온 친구는 할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크면서도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그것이 무감각했을 때가 있었다고.. 특히나 여러 가지 바쁜 생활을 하면서 마음은 있어도 자기의 일이 우선일 때가 있었다고... 돌아가시기 하루 전, 할아버지께서 위독하셔서 일가친척이 병상을 지켰는데 시간이 늦어 어린 사촌들과 연로하신 할머니를 모시고 친구는 집으로 돌아갔다. 한밤 중 돌아가실 것 같다는 동생의 전화를 받고 할머니께서는 홀로 병원에 가시고 친구는 늦은 밤 어린 사촌들을 두고 집을 비우기도 걱정되고 해서 어서 날이 밝기만 기다리며 집에 남게 되었다고 했다. 기적을 믿었건만 결국 그녀는 할아버지의 부고를 전해 듣고 영안실로 향하는 차 안에서 자신의 어리석은 판단과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한 자책감으로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고... 이 말을 하면서도 친구는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 ‘신이 폐하께 충성을 다할 날은 길고, 조모를 봉양할 날은 짧으니... 원컨대 돌아가시는 날까지 모시게 해 주십시오’ 이밀의 간곡한 청을 읽으면서 순간의 판단으로 할아버지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지켜드리지 못해 너무나 후회하던 친구를 떠올렸다. 하물며 혈혈단신 피붙이라곤 연로하고 병든 조모가 전부인 이밀은 오죽할까.
사실 나의 경우 일년에 두 번 있는 명절을 제외하고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뵐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함께한 추억과 정이 많지는 않다. 그래서 부모님과 나의 관계를 떠올려보았다. 이밀과 다르게 나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부모님 곁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세살 때 인가 어머니께서 동생을 출산하고 병실에 계신동안 하룻밤 부모님과 떨어져 친척집에서 잠을 자기로 한 날이 있었다고 한다. 그날 밤 어린 나는 아버지와 처음 떨어져 전화통화를 하는데 두 부녀가 서로 보고 싶어 닭똥 같은 눈물만 뚝뚝 흘리다가 결국 아버지가 그날 밤 나를 데리러 오셨고 이렇게 해서 두 부녀는 하루도 안 되서 상봉하게 되었다고. 지금도 우리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담소를 나눌 때면 어머니는 종종 이 사건을 말씀하신다. 이 밖에도 사이좋은 우리 부녀의 에피소드는 많았다고. 한번은 친구들과 놀던 나는 길 건너편에 퇴근하고 돌아오시는 아버지가 서 계신 것을 보고는 반가움에 달려가다 차에 치어 하마터면 큰 사고를 당할 뻔한 아찔한 경험도 있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엔 없지만 사실 초등학교 때 까지도 나는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더욱이 지금과 다르게 어릴 때는 아버지를 잘 따랐다고 한다.
그렇게나 부모님 품을 떠나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나도 청소년이 되고 친구를 만나고, 성인이 되고 사회를 알게 되면서 지금은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보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 아침에 학교에 가서 긴 하루를 보내고 밤이 되서야 집에 돌아오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집에 있을 때조차 내 할일에 몰두하는 시간이 더 많다. 엄마만 알고 아빠밖에 모르던 내가 이렇게 자라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겪게 되면서 가슴속에 많은 것을 품다보니 나도 모르게 부모님보다 다른 것을 먼저 마음에 두고 있을 때가 있었음을 고백해본다. 어느 유행 가사처럼 ‘늘 곁에 있어 소중함을 몰랐던 너’는 모든 자식의 부모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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