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리 가족시네마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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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리,『가족시네마』를 읽고
Ⅰ.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정체성이란 다른 말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이다. 그렇다면 그 답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우선 ‘나’는 과연 그 자체로 ‘나’인가에 대해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은 모두 하나의 독립된 인격적 주체이다. 하지만 사실상 ‘완전히’ 독립적으로 살아가기란 불가능하다. 우리는 크고 작은 ‘사회(집단)’의 구성원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오롯이 자기 자신의 실체와 존재의 이유를 밝히고 싶은 욕망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정체성이란 결국 많은 부분, 자신을 둘러싼 ‘사회’로부터의 영향을 반영할 수밖에 없으며 그 ‘사회’안에서의 나의 위치를 규명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정체성이란 분명하고 뚜렷한 ‘자기규정’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예컨데, 성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들은 생물학적인 성(Sex)과 사회적인 성(Gender)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즉, 자기내부의 세계와 외부의 세계가 어긋나면서 어느 한 편으로 자아의 성을 규정하지 못함으로써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재일한국인 문학에서의 ‘정체성’이란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일본에서 생활하고는 있지만 진정 그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부유할 수밖에 모습은 자신은 물론이요, 가족과 민족의 정체성까지 흔들리게 만든다. 바로 이점이 재일한국인 문학이 고민하고 있는 핵심적 주제일 것이다.
Ⅱ. 재일한국인의 정체성과 가족의 의미
어느 민족이든 타국에서 생활하다보면 그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하기 마련이다. 그러한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가족 단위를 근간으로 하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가족 내에서의 유대감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가족이란 ‘피붙이’라는 개념이 내제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와 같은 혈연중심의 사회에서는 그것이 더욱 강하게 작용하였고,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던 재일 한국인 1세대들만 하더라도 일본 내에서 조총련 등과 같은 거대한 민족적 세력을 형성하면서 정체성을 유지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재일 한국인들에게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무너지고 붕괴되기 시작했다. 즉, 재일 한국인들이 받았던 일본 사회로부터의 끊임없는 차별과 배제는 2세대, 3세대를 거치면서 엄청난 양의 침묵과 인내의 강요로 축적되었으며, 결국 이것이 서구의 개인주의적인 성향과 맞물려 가정 내의 불화와 파탄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Ⅲ. 재일 한국인, 유미리의 정체성
유미리의 부모는 “자기 나라를 단념하고 밀항선으로 바다를 건너온” 재일한국인이다. 이주한 한국인은 일본사회의 호적에 기재될 수 없다. 외국인 등록증 소지는 재일한국인 1세뿐 아니라 그 후손인 2,3세대에게도 필수적이다 재일 한국인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 번째 유형은 부모의 교육 방침에 따라 엄격하게 한국인으로 성장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민족학교에 다니면서 한국어를 구사할 줄 알고 이름도 물론 한국 이름을 사용한다. 두 번째 유형은 국적이 일본이든 한국이든 관계없이 일본 이름을 사용하면서, 자기가 재일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열심히 감추려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세 번째 유형이 일본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외국인 등록증을 소지하고 있으며, 한국 이름으로 생활하고는 있으나 한국말은 한 마디도 못하는 사람들이다. 유미리는 세 번째 유형에 속한다.
. 일본의 국적을 취득하여 그 나라의 국민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는 한, 재일 ‘한국인’은 일본사회의 이방인일 뿐이고, 일본사회의 중심에서 밀려난 주변인으로 남게 할 뿐이다.
유미리는 재일 한국인 2세로서 학교에 다닐 때는 자신이 한국 사람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철저히 숨기면서 살았다고 한다. 그는 거의 친구가 없었는데, 불우한 가정형편과 더불어 그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또래친구들에게 알려졌을 때 더욱 더 심한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했다고 했다. 그의 별명은 ‘세균’이었다고 하는데, 이는 그가 받았을 상처를 짐작하고 남는다. 이처럼 일본 내에서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은 줄곧 차별과 멸시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은 절대 한국말을 구사하지 않았으며,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들킬까봐 늘 불안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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