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 대통사를 찾아서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5.03.29 / 2015.03.29
  • 8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1,1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본문내용
[대통사를 찾아서]
-대통사는 오바마를 위한 교회인가?-
서언
공주시 반죽동에 가면 대통사(大通寺)라는 절의 터가 남아있다. 그런데 이 절터를 둘러싸고 다양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누가 세웠는냐하는 기본적인 질문으로부터 언제·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건립되었는가하는 보다 복잡한 문제에 이르는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본서에서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기존 주장들에 대한 반론을 펼침으로서 풀어가고자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서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현재의 사람들에 의해서 곡해되고 있는 대통사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통사에 대한 기본적인 소개
대통사는 삼국유사에 따르면 529년(신라 법흥왕 16년) 법흥왕이 양(梁)나라의 무제(武帝)를 위해서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유물로 보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에도 상당기간동안 존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대통사는 남아있지 않지만 그 터로 추정되는 유적이 공주시 반죽동에서 발견되었다. 공주시 반죽동의 대통사지에서는 ‘대통(大通)’명의 기와가 출토되어 대통사의 역사적 실체를 증명해주고 있으며 이 외에도 대통사지 역내에서는 통일 신라 시대의 작품으로 보이는 당간지주 1기(보물 제150호)와 국립공주박물관으로 옮겨져 보관중인 석조 2기(중동 석조는 보물 제148호, 반죽동 석조는 보물 제149호) 그리고 대통교 초석 4매가 출토되었다. 대통교의 초석은 창건 당시부터 절 안의 제민천(濟民川)에 설치되어 있던 다리인 대통교의 것으로 추정된다.
<공주반죽동당간지주 대통사의 옛터에 남아 있는 이 당간지주는 서로 마주보는 안쪽 면에는 아무런 조각이 없으나 바깥쪽 면에는 가장자리를 따라 굵은 띠 모양이 도드라지게 새겨져있다. 기둥머리 부분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모를 둥글게 깎았으며 안쪽 위·아래 모두 2곳에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해 네모난 구멍을 파 놓았다.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지주의 받침돌과 한쪽 기둥의 아래부분이 현재 많이 손상되어있다. 이 일대의 다른 유물들과 함께 백제의 유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받침돌에 새겨진 안상(眼象)을 조각한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보물 제150호)>
<공주대통사지출토석조 석조(石槽)란 돌을 파서 물을 담아 쓰도록 만든 큰 물통으로 절에서 큰 행사가 끝난 뒤 그릇을 씻을 때 혹은 물을 담아두거나 연꽃 등을 기르는데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시대의 사각형 모양의 석조와는 달리 둥그런 모양의 석조가 연꽃무늬가 조각된 받침돌 위에 올려져 있다. 그리고 가장자리에는 한가닥의 띠를 두르고 있으며 몸체 중앙에는 약간 가는 두줄의 띠가 새겨져 있다. 이 석조는 발견된 장소의 이름을 따서 각각 중동 석조(보물 148호)와 반죽동 석조(보물 149호)로 불리고 있다.
(보물 제148호, 보물 제149호)>
<대통(大通)명(銘) 평와편(平瓦片) 사원지명(寺院址銘)을 밝힌 공주 반죽동의 대통사지(大通寺址) 출토의 대통(大通)이라는 명문와(銘文瓦)이다. 대통사명(名)을 각명(刻名)한 대통(大通)이란 문자와는 와면(瓦面)을 요형(凹形)으로 1단 낮게 원형으로 형성하고 그 안에 지름 1.5cm의 크기로 우서각인(右書刻印)을 했다. 매우 세미(細美)한 태토에 견고하게 소성되었고 색조는 회흑색이다. (현재너비: 6.5Cm / 길이: 4.1Cm / 두께: 1.3Cm)
>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한국고대사]한국의 얼을 찾아서
  • , 울산대학교 출판부, 1995.최동환 著, 『삼일신고』, 하남출판사, 1998.조하선 著, 『베일벗은 천부경(天符經)』, 물병자리, 1998.구미래 著, 『한국인의 상징세계』, 교보문고, 1992.박 현 著, 『한국 고대 지성사 산책』, 백산서당, 1995.전우성 著, 『한국 고대사 다시 쓰여져야 한다』, 을지서적, 1998.이형구 著, 『단군과 단군조선』, 살림터, 1995.정병룡 著, 『檀君神話와 道敎와의 關係 考察』, 광주 조선대 교육대학원 학위석사논문, 1983.

  • 역사의현장을찾아서 기말 2023학년도 2학기) 역사의현장을찾아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체제상 특징을 서술해주세요, 일제강점기 감포 개항과 지역의 변천 과정을 설명해주세요 역사의현장을찾아서 교재를 참고하여 자신이 거주하는 주변 지역을 답사한 후 답사기를 작성해 주세요
  • 찾아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출판문화원. 393~399 ② 감포항 지역의 변천 과정감포항은 지리적 특성과 역사적 변화가 어우러진 곳으로, 한반도 동해안의 자연 경관 속에 위치한 이곳은 독특한 환경적 이점을 가지고 있다. 세 면이 구릉지와 평야에 둘러싸여 있어 자연스럽게 방어 기능을 갖추었으며, 이는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지녔다. 1920년에 개항한 이후로는 동해 남부 지역의 중심 어항으로서 그 중요성이 더욱 뚜렷해지며, 이로 인

  • 일본문화 원류로서의 백제문화
  • 한국과 일본의 고대사가 좌지우지될 정도로 중요한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도 일본에 삼국시대의 지명이.아메리카로 이주한 유럽인들이 자기 고향과 유사한 지명을 신대륙에 명명(命名)한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으로 건너간 고대 한반도인들은 자신이 개척하거나 정착한 곳에 모국어로 된 지명을 붙였다. 이러한 지명은 고등안 많이 개칭되고 변하였지만 아직도 일본 각지에는 한반도와 연관된 지명을 많이 찾을 수 있다.‘지명은 그 땅 역사

  • 동아시아신화와 문학에 대한 개념과 의의
  • 한국과 일본의 신화에 대한 비교 및 상관관계고대 각국 신화는 다음과 같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창조 홍수 사랑 도덕 죽음 종말 등의 소주제 아래 인류 공통 유산으로서 인문의 시원을 찾고 있다.구체적인 내용은 다르더라도 현세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미래를 지향하는 인간의 꿈을 대변한다는 점에서는 참으로 동일하다. 옛 기록에 의하면, 옛날 하느님의 서자 환웅이 하늘 아래로 내려가 인간 세상을 구하고자 아버지가 아들에게 천부인

  • 단군신화의 실존여부 연구
  • 한국 신화와 역사의 경계 81) 단군은 신화 속 인물인가 실존 인물인가?(1) 우리나의 역사의 특수사례, 단군(2) 단군은 가공의 인물인가?2) 역사적 사실과 신화를 사이에 둔 해석의 문제(1) 곰은 정말로 인간이 되었는가?(2) 단군왕검은 실제로 1908년을 살았는가?3) 고대사를 둘러싼 논란(1) 일본의 단군신화 조작설(2) 중국의 단군신화 조작설 Ⅲ. 결 론 14Ⅳ. 참고문헌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 저작권 관련 사항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레포트샵은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됩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