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김해경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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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상(李霜) 김해경론
생애 및 작품 경향
이상(李箱)의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으로 1910년 8월 20일 아버지 김연창과 어머니 박세창 사이에 장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해경은 3살 때 백부 김연필의 집에 양자로 가서 백부가 사망할 때까지 살게 된다. 이는 해경 부모의 경제적 궁핍과 백부의 해경에 대한 편애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경은 백부의 큰아들 겸 김씨 가문의 종손이라는 막중한 기대와 억압 속에서 유년을 보내게 된다. 문벌과 가계의 중요성을 내세우는 조부와 백부의 유교 윤리에 해경은 갇혀지고 만 것이다. 그리고 권위적인 큰아버지와 무능력한 친부모 사이에서 심리적 갈등이 심했으며 이런 체험이 그의 문학에 나타나 불안의식의 뿌리를 이루게 된다. 즉, 백부가 해경을 사랑했지만 해경에게는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의 집에서 살고 있다는 본능적인 두려움과 경계심이 그로 하여금 소심하고 조용한 성품을 갖게 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었다.
이렇듯 해경의 성장 환경이 그에게 긍정적으로만 작용하지는 않는데, 이는 어린 시절 실부와의 생이별이 분리경험의 정신외상으로 남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환경적 요소로 인해 그는 한 평생 부모에 대해서, 그리고 실부와 양부의 관계에 대해 극단적인 이중적 감정을 가지게 된다. 또한 백부가 그에 대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에 반해 백모는 해경에게 냉담하였다는 점 김윤식, 오빠 이상,『이상문학전집-연구논문모음』(서울 : 문학사상사, 1995) 416쪽 참조.
을 미루어 보아, 자신에게 우호적인 환경과 적대적인 환경을 동시에 겪음으로 이중적 성향이 심화되었다고도 추측 가능하다.
해경은 1917년 신명학교(新明學校) 입학하였고, 1921년 3월에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보성고보(普成高普) 동광학교(東光學校)가 1924년 보성고보(普成高普)로 통합되었다.
에 입학하였다. 학창시절 해경은 미술에 소질이 있었는데 교내 미술 전람회에서 유화 ‘풍경’이 당선되기도 하였다. 이때 교내 여러 그림 활동을 하다가 서서히 그가 언어에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그가 시를 쓰게 됨은 보성 시절에 만난 이헌구, 임화, 김기림의 영향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931년부터 「이상한 가역반응」을 시작으로 「파편의 경치」, 「오감도」 등의 시를 발표하였으며, 이 무렵 곱추 화가 구본웅과 친분을 쌓는다. 1932년 「지도의 암실」을 발표하고, 「건축무한육면각체」를 처음 이상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이상이라는 이름은 그가 일하던 건축 공사장에서 인부들이 ‘긴상’을 ‘이상’으로 잘못 부른데서 이상이라 자칭했다고 한다.
발표하였으며 이 해에 백부가 사망하였다. 또한 이 시기쯤 제1차 각혈을 한 듯 보인다.
이상은 1933년 각혈로 인한 건강의 악화로 건축기사 일을 그만두게 된다. 백부의 유산을 정리하여 가족과 함께 살게 되었으며 구본웅과 함께 요양 차 백천 온천에 갔다가 기생 금홍과 사랑에 빠져 함께 서울로 올라와 다방 ‘제비’를 운영한다. 이 무렵 구보(박태원)와 알게 되고 문단의 이태준이나 김기림, 정지용 같은 중견들과 교우가 시작되고 시작(詩作)도 본격적으로 접어들었다. 1934년에는 ‘구인회’에 입회하고 조선 중앙일보에 <오감도>란 난해시를 발표하여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데, 이는 ‘무슨 미친놈의 잠꼬대냐’, ‘무슨 개수작이냐’ 등 독자들의 맹렬한 비난 때문에 본래 30회인데, 10회 연재로 중단하였다. 이어 하융이라는 화명으로 박태원의 연자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의 삽화를 그리기도 하였다. 1935년 한편 다방 영업에 실패한 이상은 인사동에 있는 카페 「쓰루」를 인수해서 경영해 봤으나 이것 역시 여의치 못하고 곧 실패, 뒤이어 다방 「씩스 나인」과 「무기」를 경영해 봤으나 한결같이 실패만 했다고 한다.
1936년 문인 변동림과 신흥사에서 간단한 결혼식을 올렸다. 이 해에 가장 많은 작품을 창작하였는데 「지비 123」, 「역단」, 「조춘점묘」, 「매상」, 「지주회시」, 「날개」 등의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이 해 겨울 동경으로 떠나 「공포의 기록」, 「종생기」, 「권태」, 「슬픈 이야기」, 「환시기」, 「봉별기」, 「동해」, 「황소와 도깨비」 등의 작품을 썼다. 그의 나이 27세에 건강이 극도로 안 좋아졌다. 일본에서 문학에 적극적으로 임하려했으나, 폐병과 정신쇠약으로 시달려 헛되이 날을 보냈다. 그러던 중 사상불온자로 오인되어 경찰에 구속되었다. 신병 악화로 한 달여 만에 석방되어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부인 변동림과 마지막 해후를 하고, 1937년 4월 17일 “메론 향기가 맡고 싶소.”라는 유언을 남기고 28세로 사망하였다. 그 후 그의 유골은 같은 해 5월 4일 고국에 돌아와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2. 문학적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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