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체육사 레포트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5.06.27 / 2015.06.27
  • 7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8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본문내용
체육은 인류가 이 지구상에 나타나면서부터 시작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생존의 본질에 의하여 몸을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현대인이 생각하고 있는 체육에 대한 개념과는 다를 뿐이다. 태고시대에는 교육적인 의미에서 인격향상을 위한 체육이 아니라 순전히 생활을 위한, 생존을 위한, 역량의 배양을 위한 체육이었을 것이었을 것이다. 또한 부모나 연장자가 겪은 경험에 의하여 가르치는 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이후 부족의 집단이 각처에 생기게 됨에 따라 영토의 개척과 확장을 꾀하게 되었고 따라서 이해 관계의 상반으로 각 부족 사이에 생존상의 전투가 벌어지게 되었다. 따라서 당연히 생존상지위상 의식적인 훈련이 필요하게 되었다. 여기에 있어서 작전과 그에 대한 연구가 수반됨에 따라 인지는 더욱 더 발달하게 되어 인류의 문명의 개화가 시작되었다. 계속되는 문명의 발전을 더욱 교통은 물론 산업, 경제, 교육, 정치 그리고 종교에 이르기까지 일대 혁명을 가져다 주었다.
Ⅱ. 고대의 체육
(1) 그리스의 체육
현대 체육 문화발전의 기본적인 영향을 준 것은 고대 그리스의 체육이다. 그리스의 체육이 발달한 원인은 그리스의 도시국가 발달로 말미암아 서로 대립이 되었으므로 주권옹호를 위하여 군사력 강화와 심신의 단련에 힘을 경주하게 된 결과 종교와 정치적 배경에서 탄생한 고대 올림피아 제전이 정치적 제전과 스포츠 제전으로 발달한데 그 원인이 있다. 당시 철학자의 주장이 학자들의 주장이 신체와 정신의 조화를 이상으로 하면서 정신을 신체를 지배해야 하며, 신체는 가장 충실한 것이며 육체미를 신화하는 것이라고 공통된 주장을 하므로 그 후 기독교 사상과도 상통하는 곳이지만 근대의 철학자, 교육학자, 종교가의 사상까지 지배하였다. 인간은 천부성을 조화적으로 발달시켜서 아름답고 진실한 진선미의 삼성미(三聖美)를 육성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2) 아테네의 체육
B. C 594년에 솔론(solon)이 제정한 헌법에 의하여 교육을 실시하였다. 교육의 목적은 스파르타의 무단적이며 전체주의적인 교육 및 체육에 문학, 미술, 문화 등과 가정교육을 대단히 중요시하였으며 개성을 존중하였다. 교육의 제도는 스파르타의 교육과는 달리 약한 아이를 되도록 강건하게 하기 위하여 특별한 보육소를 설치하고 일년 동안은 유모가 기르고 그 후 7세까지는 가정에서 교육을 실시하였다. 남자는 16세부터 국립 짐네지언(gymnasion)에서 신체적 훈련과 동시에 사회, 도덕적 교육을 받게 하였다. 18세가 되면 신과 국가에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고 청년반에 입소되어 20세까지 2년 간 군사훈련을 받고 나서 비로소 시민권을 얻어 어른으로서 각자 전문직에 종사 할 수 있게 된다. 여자는 선량한 가정주부를 양성함을 목적으로 가사, 방직, 재봉, 육아법 등의 교육을 실시한다. 아테네의 체육을 요약한다면, 심신의 조화적 발전 향상은 신에 대한 의무라고 생각할 만큼 정신과 신체적인 발달에 힘을 경주하였다.
(3) 스파르타의 체육
B. C 820년경 Lycurgus가 제정한 헌법에 의거하면 교육을 실시하였는데 체육 그 자체가 교육이었다. 스파르타는 국법에 의거하여 국민을 강건하고 용감하며 준법정신의 철저한 애국자로 만들었다. 남자는 7세까지만 가정교육과 양육이 허락되고 이후에는 국가 소관의 훈련소에 입교시켜 엄격한 교육 시켰다. 18세가 되면 소년반을 나와서 병사와 무기의 용법과 기타 군사적 훈련을 받고 20세가 되면 복무의 의무가 부과되었다. 30세가 되면 남자는 공민권을 얻으며 비로소 결혼을 허락하였다. 여자도 특별한 교육소에서 훈련을 받았다. 그 목표는 현모양처로서의 임무를 완수하는 동시에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여 국가에 이바지하는 데에 있었다. 한편, 여자에게는 국가방침에 의한 영웅숭배라 할까, 우생학적 입장에서 결혼생활의 목적은 오로지 유능한 전투원을 낳는 것이었고, 또한 인간면으로 보아 자기가 출산한 아이가 강한 자이면 별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만약 약한 아이일 경우 애정을 무시하고 내다 버리지 않을 수 없는 국법인 관계로 여자에게는 엄격한 정조와 절개가 강요되었다. 이 문제는 우생학적 견지에서 우수한 민족을 생산하려는 국가적 요청에서 인권을 무시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4) 로마의 체육
B. C 250년경까지 국민은 농업을 주로 하고 교육의 내용은 애국심과 정의에 불타게 하고, 준법정신과 명예를 존중하여 소박한 근면한 공민을 육성하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B. C 146년에 그리스 문화의 유입과 함께 사치한 악풍을 받게 되어 로마 고유의 미풍이 상실되었고 실행주의는 허식과 안일에 흐르고 구설을 농하는 자가 많아서 도덕이 부패되고 5세기말경에 이르러서는 망국의 증세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체육의 초기는 그리스를 모방하였다. 그리고 체육은 건강을 보유하기 위한 것과 군사상 강한 병력을 양성하는 것이 행하여졌다. 로마의 체육은 취미적인 것을 행하여 일반국민을 열중시키었다. 특히 구기에 있어서는 강자만이 항상 이기지 않고, 약자도 이길 수 있는 스포츠를 창안하였다. 로마의 체육은 일반국민을 강건하게 한다는 국가적 목표도 있었으나 정치, 법률, 수사 등 학문을 수학함으로써 두뇌 발달되는 경향도 있었다. 당시의 교육자 유베나리스(Ubenalis)는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로마의 체육은 국가적 의의를 가진 개인적 체육이 성행하였고 흥미위주의 체육이 성행되어 후기에 이르러서는 각자가 점차 자진하여 실행하지 않고 국민의 야비한 쾌락만족에 흐르게 되었다. 대중적인 체육에서 직업적인 경기자, 곡마자, 검객 등이 연이어 나타나 자기 자신이 행하여야 될 체육이 관람중심, 즉 흥행물화가 되어 일반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로마인은 호화로운 목욕탕 옆에 구기장을 설치하여 안일한 시간 소비를 하였다. 그리하여 로마는 그릇된 체육을 장려하였으므로 쇠퇴의 길을 밟았고 드디어 나라까지 망하게 되었다.
(5) 독일의 체육
참고문헌
참고문헌
곽형기, “체육학개론”, 서울: 동화문화사, 1985.
강병길, “현대 체육의 이해”, 서울: 건국대학교 출판부, 1999.
나순성, “체육사”, 서울: 형설출판사, 1994.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