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속에 나타난 생명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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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에 나타난 생명의 이미지
‘생명’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나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상은 신비로움과 경외감이었다. 인간은 접근 할 수 없어 보이는 미지의 세계, 그것이 생명이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경험들은 나의 생각을 바꾸어 놓기에 충분했다. 과거에 저지를 잘못들에 대한 죄책감, 대학교에 들어와서의 자신의 삶에 대한 회의감, 마음에 들지 않을 정도로 굳어있고 융통성 없어 보이는 대학 강의, 범죄가 끊이지 않는 세상의 악함 등은 생명에 대한 나의 느낌을 고통으로 바꾸어 놓았다. 어떤 순간에는 고통이 연민이 바뀔 때도 있다. 이제는 TV를 틀면 나오는 범죄자에 대한 뉴스를 보고도 그들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이겠지’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우리는 지금을 살아간다고 말하지만 결국 삶의 끝은 죽음이다. 따라서 살아간다는 표현보다는 죽어간다는 표현이 더 타당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삶은 고통의 연속이고 사람들은 고통 하나하나를 줄여 나가기 위해 노력한다.
삶이나 하층민의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 작가 중에 케테 콜비츠(Kathe Kollwitz)라는 작가가 있다. 이 작가를 선택한 이유는 수업시간에 살펴 본 <죽은 아이를 안은 여인>이라는 작품이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정말 호소력이 짙다는 느낌이 든다. 그녀는 제 1차 세계 대전에서 아들을 잃었고,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손자를 잃었다. 따라서 그녀의 전쟁에 대한 슬픔이 단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작품들을 만들었다. 그에 더해 억압 속에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의 일기에서 살펴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녀는 그러한 예술의 표현을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표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단지 예술가라면 자유롭게 표현 할 수 있는 한 부분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 당시 대중들이 그녀에게 기대하는 정치적인 면들을 부담스러워 하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품들의 가장 큰 특징은 강렬하게 한 번에 느껴지는 그러나 말로는 표현하기 부담스러운 무엇인가가 있다는 점이다. 다른 작가들과는 사뭇 다른 그녀만의 향기가 작품 속에서 묻어나는 느낌이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큰 스트레스와 고통을 받는 사건이 바로 자식의 사망이다. <죽은 아이를 안은 여인>에서는 제목 그대로 죽은 자식을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전부다. 작품을 보면 작품을 만들 때 작가의 심정을 저절로 상상해 보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고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과 이 작가의 고통을 비교해본다. 사실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콜비츠의 슬픔이 클 것이다. 작품 속의 여인은 죽은 아이를 안고 있지만, 마치 세상의 모든 고통을 다 안은 듯 한 느낌을 전해준다. 또한 <죽은 아이를 안은 여인>은 어머니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세상 모든 생물에게는 어머니가 존재하고 모두 어머니에게서 나왔다. 그래서 어떤 생명체에게도 어머니는 각별한 존재다. 어머니의 마음은 어머니만 알 수 있고 모성애 역시 우리가 쉽게 말 할 수 있는 느낌이 아니다. 따라서 작품의 아이를 안은 사람이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라는 점에서도 작가의 슬픔과 고통이 더 잘 전달된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서 인간이 느끼는 감정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갖는 막연한 이미지가 작품 속 슬픔을 더욱 강하게 나타내 준다. 그러나 이 작품을 보면서 나는 그녀의 고통을 도저히 읽을 수가 없다. 죽을 때까지, 아니 내가 영원히 산다고 하더라도 이 슬픔을 헤아릴 수는 없을 것만 같다. 자식과 조금만 멀어져도 슬퍼하는 어머니인데, 자식과 영원히 이별한 어머니의 슬픔을 남자인 나는 이해 할 날이 오지 않을 것만 같다. 그래서 더욱 이 작품을 보면 애틋한 감정이 피어오른다.
또 다른 작품으로는 <빈곤>이 고통을 잘 표현하고 있다. 콜비츠가 작품 활동을 하던 시대는 20세기 초에서 2차 세계 대전 중에 죽기 전까지이다. <빈곤>에서는 그 당시 착취당하던 노동자들의 고통이 단편적으로 드러나 있다. 산업 혁명 이후 자본가들은 그들이 가진 자본을 이용해서 부를 확대재생산 하고 있었고, 노동자들은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에 가진 것마저 잃어야 했다. 빈익빈 부익부가 매우 심한 시기였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기본 권리도 없었고 의식주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필요한 만큼 쓰는 것이 많이 쓰는 것이었으리라. <빈곤>에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슬픔이 모두 드러나 있다. 죽은 아이 뒤로 보이는 물레는 그들의 직업이 직조공임을 짐작케 한다. 그 당시 시대상과 작품의 제목과 연결 지어 생각해보면 아마 가난 때문에,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아이가 죽었을 것이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필요한 것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면 느끼는 고통, 그에 더해 매우 기본적인 것을 충족시켜주지 못해 아이가 죽었을 때의 죄책감과 심적 고통은 이루 말 할 수 없으리라. 절망하는 부모는 그 당시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해서도 분노가 가득했을 것이다.
무생물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당연히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생명이기에 고통을 느끼고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중에서도 인간이기에 사회를 이루고 사회의 구조로부터 오는 고통을 겪는다. 이 점을 강렬하게 하나하나의 작품으로 묘사한 작가가 콜비츠 였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작품들은 그 점에서 생명성을 가지고 있다. 작품들은 그녀의 삶의 일부분이었다는 점에서 그 당시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살아있는 것이다. 그녀는 죽었지만 작품들은 살아남아서 그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계속 해나가고 있다. 아직까지도 그녀는 그 작품을 통해서 살아있고 이 점을 통해서도 생명성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콜비츠의 생명성에 대한 표현 방식은 고통이 주를 이루었다. 자본주의와 이해관계에 따른 전쟁 때문에 나타난 고통이 드러나 있다. 이와는 달리 나는 현대 사회에서 ‘소비’라는 현상을 통해서 생명성을 표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콜비츠가 살던 시대는 자본주의가 싹트기 시작한 시기였다. 그리고 지금은 자본주의가 만개했다. 우리의 삶에서 이제 ‘소비’라는 단어를 빼놓고는 삶을 그려 나갈 수 없다. 어쩌면 ‘소비’가 삶 자체라고 해도 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소비 행태를 풍자하거나 소비와 관련된 오브제들을 통해서 삶과 생명성을 표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나이키 신발이나 옷 등의 이미지를 활용 할 수 있다. 나이키는 스포츠 광고를 통해 급부상하였고 그 위치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브랜드다. 가격도 일반 스포츠 브랜드들에 비해 비싼 편이다.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나이키를 고집한다. 소비가 하나의 유행처럼 하나의 생활양식처럼 자리 잡았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소비를 통해서 표현한다. 의식주는 물론이고 자신의 사회적 지위, 교양 등을 소비를 통해서 나타낸다.
우리는 나이키 마크가 크게 새겨진 농구공 이미지를 떠올려 볼 수 있다. 이러한 이미지는 기본적으로 농구공이 주는 활발함, 운동성을 느끼게 해 준다. 커다랗게 새겨진 나이키 마크는 단지 그 공의 브랜드를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그 공을 사용하는 사람의 취향, 품위 등을 나타내 주는 하나의 지표이다. 왜 사람들은 자판기 커피보다 몇 십 배가 비싼 커피를 마시는가? 단지 그 향과 맛이 필요해서라기보다는 그 소비물-커피-가 자신의 기호와 삶을 나타내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들이 확대되면서 모든 소비물과 소비 행태를 모아 보면 그 사람의 취향, 품위를 뛰어 넘어서 삶을 표현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예술 작품들을 보고 아우라를 느끼는 것처럼 소비 사회라는 관점을 가지고 미술관에서 이러한 오브제를 보거나 이러한 이미지로 가득한 퍼포먼스를 본다면 그것에서도 충분히 강렬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콜비츠는 20세기 초에 생명성을 잘 표현한 작가였다. 그리고 나는 지금 21세기 초를 살아가고 있다. 벌써 한 세기가 지났다. 미술작품은 기본적으로 시대를 반영한다. 콜비츠가 살았던 당시에는 지금의 나이키 브랜드가 찍힌 공도 코카콜라도 없었다. 자본주의가 장악한 세상에서 사람의 생활양식, 아니 삶을 표현해 주는 기호와 상품들이 주위에 가득 차있다. 이러한 이미지의 모음, 또는 단편적 이미지가 생명성을 표현하고 현대인의 삶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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