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번의 중국역사소설 오대사통속연의 49회 50회 한문 및 한글번역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7.07.09 / 2017.07.09
  • 44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8,0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하고 싶은 말
채동번의 중국역사소설 오대사통속연의 49회 50회 한문 및 한글번역 蔡東藩(1877年-1945年),名?,字椿壽,號東藩,中國?朝至民國年間浙江省山陰縣臨浦(今屬蕭山)人,著名演義小說作家、曆史學家。
채동번의 이름은 성이며 자는 춘수 호는 동번이며 중국 청나라에서 민국연간에 절강성 산음현 임포[지금의 소산에 속함]사람이며 연의 소설작가 역사학자로 유명하다.
20歲前中秀才,?末以優貢生朝考入選,調遣爲福建省以只縣候補,不久?因厭惡官場稱病回家,以?書和行醫爲生,編有《中等新論說文選》、《內科臨症歌訣》以及《留?別集》、《留?新集》《風月吟稿》、《寫憂集》等文學作品,從1916年開始,到1926年爲止,蔡東藩用10年的心血,以?富的學識和驚人的毅力完成了前漢、後漢、兩晉、南北朝、唐史、五代史、宋史、元史、明史、?史、民國共11部曆史通俗演義,合稱《曆朝通俗演義》(又稱《中國曆代通俗演義》),時間跨越兩千餘年,又著有《西太后演義》(又稱《慈禧太后演義》),增訂?初呂安世所著《二十四史演義》,其一生共著書13部,撰寫700餘萬字,篇幅之巨堪稱曆史演義的奇跡,被譽爲“一代史家,千秋神筆”。
20세 전에 과거 수재로 청나라 말기에 우공생조고로 들어가서 복건선 지현후보로 파견되어 오래지 않아 나쁜 관리가 활개침을 싫어하여 병을 핑계로 집에 돌아가 글을 가르치고 의학을 함으로 생업을 하여 중등신론설문선 내과임증가결과 유청별집, 유청신집, 풍월급고, 사우집등의 문학작품을 시작하여 1916년에 시작하여 1926년에 마치고 채동번은 10년동안 심혈을 기울여 풍부한 학식과 사람을 놀라게 하는 힘으로 전한, 후한, 양진, 남북조, 당사, 오대사, 송사, 원사, 명사, 청사, 민국 모두 11부의 역사통속연의를 지어 역조통속연의라고 칭하며[또 죽국 역대 통속연의라고 한다], 2천여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또 서태후연의[자희태후연의라고도 한다] 청나라 초기에 여안세가 지은 24사통속연의를 증보하니 일생에 모두 13부를 짓고 700여만자를 편찬해 써서 거질의 역사 연의를 짓는 기적을 만들어 일대의 역사가이며 천년의 신필이라고 명예를 받았다.
번역자 튼살 흉터를
목차
第四十九回 降南唐馬氏亡國 征東魯周主督師
제사십구회 항남당마씨망국 정동노주주독사
第五十回 逐邊鎬攻入潭州府 拘劉言計奪武平軍
제오십회 축변호공입담주부 구유언계탈무평군
본문내용
却說王峻留駐陝州, ?非故意逗撓, 他却?有秘謀, 不便先行奏聞。
각설왕준류주섬주 병비고의두요 타각령유비모 불편선행주문
逗撓:적을 보고 두려워하며 피하고 나가지 아니함
각설하고 왕준은 섬주에 머물러 주둔해 고의로 두려워 나가지 않음이 아니니 그는 따로 비밀 모의가 있어서 곧 먼저 상주를 아뢰었다.
周主郭威, 聞報驚疑, 擬自統禁軍出征, 取道澤州, 與王峻會救晉州。
주주곽위 문보경의 의자통금군출정 취도택주 여왕준회구진주
주나라 군주인 곽위는 보고를 듣고 놀라 의심하고 스스로 금군을 통솔하고 출정해 택주 길을 취하여 왕준과 같이 진주를 구하려고 했다.
一面遣使臣翟守素, 往諭王峻.
일면견사신적수태 왕유왕준
한편으로 사신 적수태를 보내 왕준을 회유하러 보냈다.
峻與守素相見, ?去左右, 附耳密語道:“晉州城堅, 可以久守。劉崇會合遼兵, 氣勢方銳, 不可力爭, 峻在此駐兵, ?非畏怯, 實欲待他氣?, 然後進擊, 我盛彼衰, 容易取勝。今上卽位方新, 藩鎭未必心服, 切不可輕出京師!近聞慕容?超據住?州, 陰生異志, 若車駕朝出?水, ?超必暮襲京城, 一或被陷, 大事去了!幸轉達陛下, 勿生他疑!”
준여수소상견 병거좌우 부이밀어도 진주성견 가이구수 유숭회합요병 기세방예 불가력쟁 준재차주병 병비외겁 실욕대타기뇌 연후진격 아성피쇠 용이취승 금상즉위방신 번진미필심복 절불가경출경사 근문모용초거주연주 음생이지 약거가조출사수 언초필모습경성 일혹피함 대사거료 행전달폐하 물생타의
왕준과 적수태가 보고 좌우를 물리치고 귀에 대고 비밀 말을 했다. “진주성이 단단해 오래 수비할 수 있습니다. 유숭은 요나라 병사와 회합해 기세가 예리하여 힘써 다툴수 없고 왕준은 이에 병사를 주둔하게 하며 두려워서 겁냄이 아니라 실제 그 사기를 굶주리길 기다리게 한 연후에 진격하면 내가 성대하고 그는 쇠약하고 쉽게 승리를 취합니다. 금상은 즉위함이 막 새롭고 번진은 아직 반드시 마음이 복종하지 않으니 절대 가볍게 수도를 나갈수 없습니다! 근래에 모용초가 연주를 거주하여 몰래 다른 뜻을 내어 만약 어가가 아침에는 사수를 나오고 모용언초는 반드시 저녁에 경성을 습격하니 한번 함락되면 대사가 가게 됩니다! 다행히 폐하께 다시 전달해 다른 의심을 하지 마십시오!”
守素唯唯遵?, 卽日馳還京城, 報知周主郭威, 威聞言大悟, 手自提耳道:“幾敗我事!”
수소유유준교 즉일치환경성 보지주주곽위 위문언대오 수수제이도 기패아사
적수태는 예예하며 가르침을 따라 그 날로 말달려 경성에 돌아가 주나라 군주 곽위에게 보고하여 알리니 곽위는 말을 듣고 크게 깨달아 손으로 귀를 들어 말했다. “거의 내 말이 패배할뻔 했다!”
遂將親征計議, 下?取消。
수장친정계의 하칙취소
곧장 친히정벌할 계책 논의를 칙령을 내려 취소했다.
참고문헌
중국역조통속연의 오대사통속연의, 채동번 저, 중국 삼진출판사, 페이지 284-295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채동번의 중국역사소설 오대사통속연의 39회 40회 한문 및 한글번역
  • 핍박하여 간사한 악인에게 경계를 하려고 했다.漢主親征, 猶然招降, 雖得苟延殘喘, 而終不免於誅夷。한주친정 유연초항 수득구연잔천 이종불면어주이苟延残喘 gǒu yán cán chuǎn 남은 목숨을 겨우 부지해 나가다한나라 군주가 친히 정벌해 여전히 항복을 유인하니 비록 남은 목숨을 부지해 나가도 종내 주벌을 면치 못한다.李太后有知, 庶或可少泄餘恨也夫!이태후유지 서혹가소설여한야부이태후가 알았다면 거의 혹 조금 남은 한을 풀것이다!

  • 채동번의 중국역사소설 오대사통속연의 43회 44회 한문 및 한글번역
  • 중국(中國) 남송(南宋) 때에 한세충(韓世忠)이라는 장군의 아내였던 양홍옥(梁紅玉)의 얘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금나라와 전쟁이 벌어졌는데, 장군의 아내가 손수 만두를 빚어 군사들에게 나눠주었다. 염씨는 양홍옥같지만 애석하게 사홍조는 한기왕만 못했다.弘肇投入戎伍, 得爲小校, 遂感閻氏恩, 娶爲妻室。홍조투입계오 득위소교 수감염씨은 취위처실戎伍 róngwǔ 隊伍사홍조는 대오에 들어가 하급장교가 되어 곧 염씨 은혜에 감격해 처로

  • 채동번의 중국역사소설 오대사통속연의 51회 52회 한문 및 한글번역
  • 오대사통속연의 52회 맹장을 잃은 현명한 군주는 군사를 돌리고 단단한 성을 쌓은 좋은 신하는 오랑캐를 격퇴하다.却說周主榮夜宿行宮, 暗思樊愛能、何徽, 是先帝舊臣, 徽嘗守禦晉州, 積有功勞, 不如貸他一死;각설주주영야숙행궁 암사번애능 하휘 시선제구신 휘상수어진주 적유공로 불여대타일사dài sǐ ㄉㄞˋ ㄙㄧˇ 贷死 :免于死罪각설하고 주나라 군주인 시영은 행궁에서 야숙하며 몰래 번애능과 하휘를 생각하길 선제의 구신으로 하휘는 일찍이

  • 채동번의 중국 오대사역사소설 오대사통속연의 17회 18회 한문 및 한글번역
  • 오대사통속연의 18회 황후의 교령을 얻고 몽둥이로 곽숭도 초토사를 공격하고 병란을 일으켜 이령공을 핍박하다.却說王宗弼納款唐軍, 並斬內樞密使宋光嗣、景潤澄, 及宣徽使李周輅、歐陽晃, 說他熒惑唐主, 函首送唐帥繼岌; 각설왕종필납관당군 병참내추밀사송광사 경윤징 급선휘사이주락 구양황 설타형혹당주 함수송당수계급纳款 nàkuǎn ① 납관하다 ② 정의(情誼)를 통하다 ③ 귀순하다 ④ 내통하다 각설하고 왕종필은 당나라 군사와 내통해

  • 채동번의 중국 역사소설 오대사통속연의 35회 36회 한문 및 한글번역
  • 중국인들이 나를 인도해 이에 이르게 했다!”百姓聞諭, 稍稍安靜。백성문유 초초안정백성은 회유를 듣고 조금씩 안정했다.遼主再下樓入明德門, 門內就是宮禁, 他却下馬拜揖, 然後入宮。요주재하루입명덕문 문내취시궁금 타각하마배읍 연후입궁요나라 군주는 다시 누각을 내려와 명덕문에 들어와 문앞이 곧 궁궐로 그는 말에서 내려 절하고 읍한 연후에 궁궐에 들어갔다.令樞密副使劉敏權知開封尹事。령추밀부사유민권지개봉윤사추밀부사였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 최근 판매 자료
    저작권 관련 사항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레포트샵은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됩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