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감상 - 북청사자야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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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청사자야 놀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이 있다. 맞다. 인간은 동물이다. 매우 사회적인 동물. 그래서 인간은 발전해왔다. 다른 동물들처럼 자연 속에서 사회를 만들었고 더 나아가 그 사회 안에서 창작욕 가득한 호기심과 욕심을 발휘했다. 그를 통해 수많은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며 자연 속에서의 사회뿐만 아니라 자연을 자신이 필요할 때마다 이용했다. 과학적 사유, 기계, 문명, 체계적인 언어, 예술,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등 다양한 것들을 만들어냈고 점점 더 이를 체계화 했다. 그럼 이제는 나 스스로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한 번 물어보자. 그래서 지금 인간은 어떻게 변했는가. 과연 행복한가.
인간은 오만해졌다.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발전시켜왔던 그 자부심을 가지고 우리의 모태인 자연을 파괴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발생했던 구제역 소동을 봐도 이런 오만함을 엿볼 수 있다. 구제역이 발생했다는 그 자체보다 우리는 인간이 동물들을 어떻게 대했는지에 대해야할 것이다. 말 그대로 마구 파묻었다. 왜 굳이 그 많은 동물들을 생매장한 걸까. 정말 동물을 위해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동물로 인해 피해 받을 인간을 우려해 ‘혹시 우리에게도 큰일 날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인간이 무슨 권리로 소, 돼지 등의 동물들을 생매장시킬 권리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의문이 든다.
<북청사자야 놀자>라는 공연을 보고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꽃신을 가지려고 여인으로 변신한 호랑이 처녀인 사당은 우연한 계기로 사자탈을 쓰고 춤을 추는 청년 완보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사당의 오빠 호랑이가 사람을 헤쳐 이를 용서 받으려 자신의 호피를 벗어 아들을 살려달라고 엄마 호랑이는 스님에게 빈다. 옥황상제는 역병(구제역, 호환마마)이 돌아 온갖 가축들은 살아 있더라도 땅 속으로 묻히고 있는 세상을 사당에게 구하라 한다. 왕은 방방곳곳에 호랑이를 죽이면 벼슬을 준다고 하고 사당은 완보에게 자신은 사랑하는 사람 손에 죽고 싶다고 말하며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한다. 사당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처용가>의 한 장면처럼 역병과 사랑을 나누어 결국 세상을 구하게 된다. 이 짧은 줄거리 안에 중간 중간 동물들이 땅 속으로 파묻히는 장면들이 나온다. 호랑이는 역병으로부터 인간 세상을 구원하려하는데 정작 인간은 동물을 파묻어버리고 있는 현실이 모순적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한편으로 동물들과 자연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이 들어 가슴 한켠이 숙연해졌다.
이렇게 무거운 내용을 오히려 극에서는 아주 유쾌하게 다뤄서 그 점이 더 재밌고 매력적이었다. 전통적인 춤사위와 귀엽고 아기자기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노래와 음악 연주, 그리고 <처용가>나 호원설화 등이 춤과 노래와 어우러져 극을 보는 내내 어깨가 들썩들썩 거리도록 신명이 났다. 특히 역병과 사당의 러브신을 발견한 완보가 ‘서울 밝은 달밤에/ 밤늦도록 놀고 지내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 둘은 내 것이지만/ 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디 내 것(아내)이다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라는 <처용가>를 노래로 불렀을 때 상황이 너무 잘 맞아 이 내용을 극 속으로 자연스레 흡수 시킨 것이 굉장히 섬세하다고 생각됐다.
이 극에서는 등장인물들이 모두 가면을 쓰고 나온다. 가면을 써서 배우의 표정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신체적 움직임에 집중해서 보게 되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거나 움직일 때 표정이라는 표현수단이 제약되어 표정이 아닌 팔, 다리 등의 신체적 움직임으로 하니 동작이 더 크고 명확하게 보였다. 보통 서양에서의 가면은 희랍비극에서처럼 인물행동의 결과를 또는 코미디아 델 아르떼처럼 인물 행동의 원인을 나타낸다고 하는데 이 극의 가면은 어떤 종류일지 그리고 우리나라 가면은 어떤 종류일지 굉장히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동양연극의 특성을 느낄 수 있었다. 서양연극은 ‘제 4의 벽’이 있고 배우들이 그 상황에 몰입하고 그 인물이 되어 관객이 보고 있다는 것을 염두는 하지만 그들을 끌어안고 극 속으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반면 동양연극은 관객을 보고 말을 하며 관객에게 끊임없이 묻고 답하게 한다. 공연장에는 어린이극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어린아이들과 엄마들이 많아서 주위가 어수선하고 시끌시끌 거렸다. 하지만 재밌게도 극에 몰입하는데 크게 방해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이 떠드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이유는 동양연극의 특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배우들이 연기하는 자체에서도 관객을 잊고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을 극 속으로 안고 들어가 같이 호흡했고 무대도 음악도 모든 것이 관객을 향해 있었다. 사실 어린이들은 극을 볼 때 재밌으면 재밌는 것이고 재미없으면 자거나 급격하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극을 보는 어린이들이 까르르르 웃고 떠들고 극 속으로 끊임없이 끼어들어 참견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동양 연극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아이들이 끊임없이 극에 참여하는 그 모습이 아닐지 생각해봤다.
이런 생각을 더 확고하게 된 것은 공연이 끝난 후 막걸리를 나누어주며 뒷풀이를 하는 곳에 참여하면서였다. 보통 극이 끝나면 관객들은 극을 만든 사람들에게 열렬한 박수를 친 후 서둘러 극장을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 공연은 배우들이 공연이 끝난 후에 삼삼오오 모여서 장구, 꽹과리 등의 악기 연주에 맞춰 신나게 탈춤을 추며 관객들과 대동놀이를 하듯 논다. 사람들은 재미있는 뒷풀이도 보고 나눠주는 막걸리를 마시며 완벽하게 공연을 즐기고 간다. 이런 점들이 ‘함께하는 극’, ‘관객이 끊임없이 생각하고 느끼게 만드는 신나는 극’을 추구하는 동양연극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했다.
이제까지 오만함으로 똘똘 뭉친 인간은 자연을 이용하고 파괴하는 스스로를 망치는 길을 택했었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았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인간은 자연과의 화해를 서둘러야 한다.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던 그 옛날이야기를 진심으로 그리워하며 말이다.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 오만함과 쓸데없는 욕심을 버리고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의 길을 걷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북청사자야 놀자>에서 사당이 역병과의 사랑을 나누어 역병을 쫓아내는 모습을 보며 어쩌면 인간과 자연과의 화해를 간절히 염원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우리도 이제 간절히 빌어보고 생각하고 행동해보자. 사당이 묻혀가던 동물들을 위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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