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으로 알아보는 70년대 여성노동 운동 그녀들의 자화상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5.03.29 / 2015.03.29
  • 9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1,2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본문내용
그녀들의 자화상
- 70년대 여성 노동운동
Ⅰ. 서론
국민 소득 2천 달러 시대, 이제 대한민국은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나 선진국의 길을 걷고 있는 나라중의 한 국가가 되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까지 시행된 대한민국 제1의 통치권자의 분명한 목표 하에 시행된 경제개발정책으로 인한 결과인 이러한 눈부신 성장의 이면에는 암울하고 비참하기까지 한 그 당시 노동자들의 울분이 존재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설정한 경제성장 국가 목표 그 자체는 타당했다. 또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그 자신의 집념도 평가될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목표로 향하는 과정에는 너무나 많은 문제들이 함께 했다. 특히 70년대 유신체제라는 1인정치제도로 말미암아 국민은 알권리를 포기한 채 한 사람이 치닫는 길을 무조건 걸어야 했다. 이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숱한 모순과 갈등을 빚었다. 특히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더욱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였다.
경제적인 면에서의 갈등은 1970년대 극에 달하게 된다. 70년대 노동운동의 시작은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부근의 어느 피복 공장에서부터였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거의 모두가 알고 있을 법한 “전태일 분신자살 사건”이다. 70년대 한국노동운동의 시발점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사건 이후 70년대는 박수 받을 만한 경제성장의 뒤에 가려진 노동자들의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목청이 높아지며 많은 노동 쟁의가 일어난 격랑의 시대였다. 헌데 여기서 주목해봐야 할 것은 70년대 노동운동의 대부분이 나이 어린 여성노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노동쟁의에 있어 남성노동자보다 여성노동자가 압도한 사실은 다른 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한국 노동운동의 특징 중의 하나였다. 그 이유는 한국의 나이어린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 여성 근로자의 임금이 남성 근로자의 임금의 절반정도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 가계의 책임을 지고 있는 남성 노동자들에 비해 여성은 이러한 책임에서 면제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그들이 결성하는 노조는 인정받기 어려웠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지금부터 우리는 1970년대 일어났던 여성 노동운동 - 청계천변 피복 공장 근로자들의 노동투쟁(1971~79), 태광 산업 노동자들의 농성투쟁(1972~74), 반도상사 근로자들의 노조운동(1974), 제일제당 종업원들의 노조결성투쟁(1977), 동일방직 노동자들의 노조투쟁(1976~79), 방림방적 근로자들의 권익투쟁(1977), 남영나일론 근로자들의 임금투쟁(1977), 인선사노동자들의 노조쟁의(1977~78), 해태제과 종업원들의 혹사반대투쟁(1979), YH무역 근로자들의 폐업반대투쟁(1979) - 중 대표적인 몇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그 사건들의 내용을 알아보고 이를 토대로 당시 노동운동의 특징을 집어보고자 한다.
Ⅱ. 본론
1. 사건으로 알아보는 70년대 여성노동 운동
① 전태일 분신자살 사건
- 불타버린 젊은 영혼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부근, 22살의 평화시장 내 한 피복업체의 재단사가 온몸에 불이 붙은 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노동자들을 혹사시키지 말라!” 고 외치며 길거리로 뛰쳐나왔다. 전태일은 10살을 갓 넘어서부터 동대문시장과 서울역등에서 온갖 힘든 일을 해준 대가로 얼마 안 되는 푼돈을 벌어 오던 전군은 재단기술을 배워 청계천 평화시장의 재단사로 들어갔다. 여기서 나이 어린 여공들이 숨 막히는 작업환경 속에서 참으로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장을 목격했다. 그는 근로기준법을 공부했고, 동료직공들의 어려운 생활실태를 조사하여 기업주와 정부 노동당국 측에 개선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호소는 아무도 알아주기 않는 하찮은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전태일은 결국 자신을 희생함으로서 많은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분신자살을 결심한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다. -전태일의 일기 中
전태일의 죽음은 이 나라의 노동운동사에 하나의 분기점을 이루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그의 죽음은 그때까지 온갖 열악한 조건에서 살아오던 수많은 근로자들을 자극하여, 노동자도 인간이다라는 의식을 일깨웠으며, 삶의 향상을 위해 투쟁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여성사]미술의 역사 속 여성미술가들을 통한 사회적 이해
  • - 미술의 역사 속 ‘여 성’ 미술가들- 그녀들의 작업을 중심으로- ⊙ 들어가며‘여성’미술가가 늘 존재해왔다는 사실은 더 이상 주장할 것도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그 증거는 이미 충분하다. 현대의 여성운동이 활발해지면서 그간의 ‘여성’미술가에 대한 무시와 ‘여성’미술에 대한 ‘상투화된 범주화’에 문제가 제기되었고, 이에 따라 수백 명의 여성 미술가들이 등록되고 미술사연구의 협소했던 시각을 드러내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19세기

  • [젠더사회학] 남성다움에 관한 고찰
  • 여성학이라는 학문을 적용시켜 보았다. 남성은 강하고 세다라는 의식이 팽배한 사회를 한국의 섹슈얼리티가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가에 대해 알아보는 우리 연구에 여성학은 이론적 토대의 핵이 되어 주었다.③ 그리고, 여성학과 남성학에 대한 논의 - 페미니즘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면서, 우리는 여성으로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가지게 되는 많은 편견과 차별이 강행되어져 왔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 왜 페미니즘이라는 운동이 왜 일어

  • 독후감 모음집[A+, 98권] -] 작가의 의도 분석, Summary, 느낀점, 자아성찰(교훈) 및 시사점, 적용 계획, 인상깊었던 문장 등
  • 여성의 직장환경과, 조건에 맞춘 결혼풍습들, 그렇게 짜맞춰지는 도시 가족들의 일상들은 우리나라의 70년대의 삶이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그 시대에 살았던 어머니들의 삶은 넉넉함과 여유로움이 가득함을 알수 있었다. 짧은 이야기속에서 긴 여운이 남는 것은 솔직 담백한 작가의 순수함이 글 속에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박완서 작가 같은 여성 작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뿌듯한지 작가의 책을 읽을때마다 느끼게 된다. 한

  • 1910~70 시인별 주요작품정리
  • 운동을 강화하고 이해 월간지 《불교(佛敎)》를 인수, 이후 많은 논문을 발표하여 불교의 대중화와 독립사상 고취에 힘썼다. 1935년 첫 장편소설 《흑풍(黑風)》을 《조선일보》에 연재하였고, 1937년 불교관계 항일단체인 만당사건(卍黨事件)의 배후자로 검거되었다. 그 후에도 불교의 혁신과 작품활동을 계속하다가 서울 성북동(城北洞)에서 중풍으로 죽었다. 시에 있어 퇴폐적인 서정성을 배격하고 불교적인 ‘님’을 자연(自然)으로 형상화했으며, 고

  • [제주대학교]제주해녀와 에코페미니즘
  • 여성>의 이미지라 하겠다.제주해녀에 대한1960-1970년대의 글제주해녀가 물질과 밭일을 열심히 하면서 부지런히 살고 있음.→제주해녀를 , , 으로 그리고 있음제주 해녀가 근로의 여신이나 자립정신의 표상으로까지 될 수 있었던 것은 1960년대 이후의 사회적 상황 때문이다.우리나라의 1960, 1970년대는 경제개발5개년 계획과 새마을운동이 전개되었던 시기로, 전 국민이 경제발전을 위해 허리띠를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 저작권 관련 사항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레포트샵은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됩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