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사] 독일의 금융시스템의 특징과 공업화에 미친 영향 -영국, 프랑스, 미국의 시스템과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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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 차

제 1장 서론
제 2장 본론
제 1절 영국의 금융시스템
제 2절 프랑스의 금융시스템
제 3절 미국의 금융시스템
제 4절 독일의 화폐제도와 금융제도
제 5절 독일의 공업화
제 1편 하우스 방크
제 2편 종합병원과 같은 통합적인 은행
제 3편 정부가 주도하는 금융시스템
제 4편 저축은행의 발전
제 6절 우리나라의 금융시스템
제 1편 중앙은행
제 2편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제 3편 독일과의 은행시스템 비교를 통하여
제 3장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1866년의 단기간의 전쟁에서 오스트리아 및 이와 동맹한 독일제국이 드디어 패퇴하고 북독제국이 프로이센에 의하여 북독일연방에 통합되어진 이상 프로이센의 지도아래 소독일제국이 건설되어 자리잡는 것은 이미 수년 내의 시간문제라고 말할 수가 있었다. 구스탑슈톨퍼, 독일경제의 기적, 본국문화사, 1978, p.19
제국창건 당시 독일은 아직 일곱 개의 독립한 통화지역으로 분할되어 있었다. 그 위에 33개의 발권은행이 있었고 이것들은 상호 무관계로 각장 법규하에서 각자 은행권을 발행하고 있었다. 통화제도가 이와 같이 혼돈해 있어서는 공업국으로서의 합리적인 통화정책 등은 도저히 행할 수가 없었다. 상이한 통화에는 다만 하나의 공통의 특징이 있었다. 법정통화가 은이었다. 제국은 그 통화의 상대가치에 관해여서 어떤 협정을 체결하고 있었다. 금화도 전국에서 유통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각국 통화와의 교환은 프로이센이외에서는 안정되어 있지 못했다. 프로이센에서는 금화와 은화와의 관계가 볍률에 의하여 정해져 있었다.
신제국의 통일통화는 금본위제에 기하고 있었다. 영국을 제외하고는 타열강이 아직 그것을 도입하고 있지 아니했던 당시에 있어서 금본위제로의 이행은 극히 중대한 의의를 가지고 있었다. 독일이 이 결정을 내렸을 때에는 이미 은공황이 가까이 와 있었고 프랑스나 미국도 머지 아니해서 금본위제를 채용할 것이다라는 것이 예상되어졌던 것이다. 젊은 독일제국은 여기에서 선진의 금본위에 기하는 국제통화 통일에의 길을 여는 것이었고, 제 1차 세계대전까지의 전 기간을 통하여 세계무역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강력히 촉진하는 자극제로 되었던 것이다.
새로운 통화제도는 3단계를 밟아서 구축되었다. 첫째 1871년 금화주조에 관한 법률이 반포되었다. 마르크가 통화 단위로 정하여졌고 그것과 현행은행과의 관계가 확정되고 이어 은화가 유동과정으로부터 회수되었다. 둘째 1873년 금본위제가 법률에 의하여 정하여졌으며 은화는 소액화폐에 한하여 허용되었다. 셋째, 1875년 33개의 발권은행의 하나였던 프로이센은행이 라이히스방크로 개조되었다. 이것에 의하여 다른 발권은행은 라이히스방크에 대하여서도 또 민간은행에 대하여서도 그의 입장이 위협당하는 상황으로 떨어졌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이러한 발권은행에 대하여 법률상 인정되어 왔던 은행권발행할당을 라이히스방크를 위하여 자발적으로 포기하도록 압력을 가했던 것이다. 1910년까지 27개의 발권은행이 이 압력에 굴복했다. 다른 5개의 은행의 발권이 정지되어진 것은 겨우 1935년의 일이다. 그러나 라이히스방크의 설립 후 민간발권은행이라고 불려졌던 은행들의 발권고는 소액이었고 더욱이 규제를 받고 있어 그것이 신통화정책을 교란하는 것은 없었다. 앞의 책, p. 21-22



제 5절 독일의 공업화와 금융제도의 발달

제국창건 후 독일의 경제는 아직 농업국으로서의 성격을 각조 있었지만 공업화의 과정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제국창건에 의하여 독일 공업의 발전은 강렬한 자극을 받았으며 독일은 수년 내 세계일류의 공업국가에 들어섰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 영국의 선례와는 대조적이었다. 공업의 확대를 위하여 농업이 희생되어 진다는 것은 전혀 없었지만 다른 공업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농촌의 생활은 매력을 잃고 있었다. 이촌이 시작되었고 그 결과 인구의 자연증가는 도시에 흡수되고 있었다. 앞의 책, p. 24



제 1편 하우스 방크
참고문헌
참고문헌

- 김종현, 영국 산업혁명의 재조명,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7.
- 김종현, 경제사, 경문사, 2009.
- 정운찬, 중앙은행론, 학현사, 1997.
- 이상규․이명훈․정지만 역, 미쉬킨의 화폐와 금융, 한티미디어, 2004.
- 주명건, 미국경제사, 전영사, 1987.
- 정해본, 독인근대사회경제사, 지식산업사, 1990
- 구스탑슈톨퍼, 독일경제의 기적, 본국문화사, 1978
- 김선빈, 상생의경제학, 삼성경제연구소, 2009
- 정해본, “19세기 독일의 금융기관”, 1985
- 한국은행, 우리나라의 금융제도, 2005
- 박경서, 외환위기 10년 한국금융의 변화와 전망,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8
- 네이버 디지털 뉴스 아카이브, 1995년 8월 1일 매일경제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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