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최부의 표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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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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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표해록 요약
2. 표해록과 송환절차
1) 표류민 송환의 의미
2) 동아시아의 송환절차의 특징
3. 표해록에 나타난 대운하
1) 대운하의 역사적 배경
2) 최 부와 미산만익비(眉山萬翼碑)
4. 홍치중흥(弘治中興)을 통해본 조선인의 중국인식
1) 공직사회의 기강해이
2) 사상의 차이
5. 중국인의 조선인식
6. 孝와 忠 사이에서의 갈등
7. 사림(士林)으로서의 최 부의 모습
8. 중국의 지리․문화 소개
9. 표해록의 유통
10. 여타 표류기록과 최 부의 표해록
1) 시대적 비교
2)표류지역별 비교
3) 표류민의 계층적 차이
11. 표해록의 의의
12. 맺음말
13. 질의 및 답변
-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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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표해록 요약
제주삼읍추쇄경차관(濟州三邑推刷敬差官)으로 제주에 파견된 최 부는 서기 1488년 (성종19년, 明 弘治元年, 1488년) 윤 정월에 부친상을 당해 서둘러 본토로 돌아오던 중 풍랑을 만나 추자도 앞바다 부근에서 표류하기 시작하여 13일간 폭풍우와 기아와 기갈로 죽을 고비를 몇 차례나 넘기면서도 간신히 명(明의) 절강성 임해현에 도착하게 된다. 황해의 넓은 바다에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고 영파부에 도착한 뒤에도 해적에게 모든 물품을 강탈당하고 바다에 버려져 다시 표류하다가 명의 요새를 지키던 병사들에게 구조된 후에도 병사들의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껴 배를 버리고 육지로 도망친 최 부 일행은 절강지방 주민들에게 왜구로 오인을 받아 주민에 의해 관아로 호송하던 중 물품을 뺏기고 구타당하는 등 갖은 고생을 겪다가 명나라 관리에게 인계된다. 절강성의 도저소, 소흥, 항주에서의 세 차례에 걸친 심문을 받고나서야 왜구의 누명을 벗은 후 조선으로 송환되는 절차를 밟기 위해 항주에서 북경으로 떠나게 된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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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호,『표해록역주』,「고려대학교 출판부」, 2006
최 부(옮긴이 서인범),『표해록』,「한길사」, 2004
박원호,『최부 표해록 연구』,「고려대학교 출판부」, 2006
李秉烋,『朝鮮前期 士林派의 現實認識과 對應』,「一潮閣」, 1999
김영원외,『항해와 표류의 역사』,「솔」, 2003
두 외국인의 눈에 비친 15․, 16세기의 중국 -洪性鳩
大運河發展史 : 長江から黃河へ / 星斌夫 譯注 平凡社,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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