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도 패도와 군주 전제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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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 왕도, 패도와 군주전제주의>
1. 왕패론
오늘날 힘으로 질서를 장악하는 사람의 대명사로 쓰는 覇자는 초기에 정치와 관련이 없는 글자였다. 글자의 출현은 오래되었으나 정치적 의미를 지니는 覇자의 등장은 춘추시대로 추정된다. 진정한 전체의 권력자, 즉 ‘伯중의 伯’을 뜻하는 글자가 없어 覇자를 빌려 구별했을 가능성이 있다.
覇는 춘추시대 후반에 보통명사로 쓰였다.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자에게 사용되었다. 춘추전국의 제자백가들은 覇와 伯을 혼용했다. 『신자』 「위덕」 편에는 ‘三王五伯’이란 말이 등장한다. 『손자병법』에는 ‘패왕의 군대’라는 용례가 두 번 나온다. 『오자』 「도국」편에는 “나라에는 현인이 없어지지 않으니 능히 그 군사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은 王이 되고, 그 우군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覇가 된다.”고 한다. 『논어』에는 관중을 언급하면서 覇를 직접 언급한 곳이 한 곳 있다. 관중은 제 환공을 도와 패업을 완성한 사람이다. 공자는 관중의 패업을 중화문명의 수호, 즉 정치질서를 바로잡아 이민족의 침탈로부터 중국을 지켜낸 사건으로 칭송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공문의 제자들 사이에는 覇를 둘러싸고 여러 논쟁들이 있었을 것이며, 다른 제자백가들도 覇에 대해 나름대로의 정의를 갖고 있었다.
왕패론의 절정은 맹자에게서 이루어졌다. 『맹자』에는 제목을 포함하여 무려 300번 이상 王자가 등장한다. 王자는 더 이상 천자에게만 쓰는 용어가 아니었던 것이다. 맹자가 쓰는 王자는 ‘진나라 초나라의 王’처럼 주로 보통명사로 쓰지만, ‘왕도를 실천하는 진정한 王이 되다’처럼 동사적 용법으로 쓰는 특별한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맹자는 王자의 용례에 한 가지 더 새로운 개념을 덧붙였다. 그것은 ‘王’을 ‘覇’의 반대말로 규정한 것이다. ‘왕패’는 사람들의 내면에서 우러나와 자발적 질서를 잡아가는 정치의 본래 의의에 맞지 않으며, 폭력적 억압에 굴종하는 거짓 질서라는 것이다. 그래서 ‘왕도를 실천하는 진정한 왕’이 다스리는 정치세계에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한다.
상앙은 王과 覇를 같은 가치로 여긴다. 『상군서』 「경법」편에서 상앙은 유일자로서 최고 정치권력의 담당자를 王이나 覇라고 한다. 상앙이 말하는 王은 맹자처럼 높은 인격적 수양을 바탕으로 한 위대한 임금들을 표현한 것이 아니다. 그냥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법치를 잘 시행하여 제왕이 된 사람을 王으로 뿌른다. 특히 이 점에서 맹자와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상군서』는 전쟁을 잘하는 것, 강력한 법치를 시행하는 것, 부국강병을 달성하는 것이 ‘왕도’라는 독특한 아이디어를 생산해 내었으며, 王자의 용례를 풍부하게 했다고 할 수 있다.
王·覇 구분의 치밀한 이론화는 순자에 의해 이루어졌다. 제자백가의 사상과 학설을 종합 집대성한 순자는 王자에 대해서도 다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그의 왕도정치론을 완성했다. 순자는 패자를 부정함으로써 王을 도드라지게 하고 싶었던 맹자와 달리 패자를 긍정하지만 왕의 다음 순위에 놓으면서 王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하면 역사도 긍정하고, 왕도와 현실 정치 사이에 항상 괴리로 존재하는 ‘정치적 신의’의 문제를 긍정적인 가치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정치가들은 맹자의 王道가 지향해야 할 가치일 뿐 실천하기 어려운 길이라고 외면해버렸다. 반면 같은 王道를 지향하지만 覇道도 왕도로 가는 길목에 있는 가치이므로 긍정하여 키워가야 한다는 순자의 논리는 수많은 후계자를 양성해낼 수 있었다. 『순자』에는 41차례나 覇자가 등장하는데 물론 王을 최상의 것으로 보지만, 어떤 나라의 정치를 평가할 때는 항상 覇를 王의 다음에 두었다. 평가기준이 王이냐 亡이냐 두 가지로 가는 경우는 없었다.
과거의 선왕, 성인들이 완벽한 도덕의 표준을 만들어두었으므로 이를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은 유가사상가들의 공통된 생각이기도 하다. 맹자를 비판했던 순자조차도 같은 입장을 취한다. 유가 왕패론은 결국 성왕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2. 성왕과 폭군
성인, 성왕 관념은 중국의 정치사상사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주제이다. 처음 형성된 글자를 보면 聖자는 사회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 그런데 세월이 가면서 차츰 지혜롭고 능력 있는 사람이란 뜻으로 발전해갔으며, 聖자는 마침내 유덕하고 위대한 최고의 정치지도자로 자리매김되었다. ‘聖’은 또한 정권 장악을 꿈꾸는 자에게, 그리고 제한 없는 제왕 권력의 폐해에 대해 고민하던 학자나 사상가들에게 언제나 꿈과 이상의 가치기준이 되기도 했다.
聖자는 공자의 시대에 이르러 위대한 정치인이라는 정의를 새로 갖게 된 것이다. 『논어』를 통해 공자가 聖자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더 상세히 알 수 있는데, 공자가 생각하는 聖人은 정치하는 계급인 군자들이 더 깊이 수양하여 깨치고 다다라야 할 높은 경지의 사람이다. 공자는 주술의 도덕화 또는 종교의 학문화라는 인문주의의 성취를 聖자에 부여한 셈이다. 결국 오늘날과 같은 도덕의 완성자로서 聖자의 용례는 공자와 그의 시대에 재창조된 개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위대한 聖人이며 정치지도자의 상징으로서 요임금 등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 공자의 재창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공자는 『논어』의 여러 편에서 요순을 칭찬하고, 맹자도 입만 열면 요순 타령이었다. 요임금, 순임금, 우임금에 대한 유학자들의 칭송은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인지 역사적 사실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두 가지는 명백하다. 하나는 세 명의 위대한 군주 즉 후대에 聖王으로 칭송받는 요임금, 순임금, 우임금이 공자에 의하여 ‘성인’으로 추앙되었다는 것이다. 둘은 그 추앙의 내용을 고찰해볼 때 자기 수양을 강조한 것이고 특히 군자다운 정치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 사람에 대한 극찬은 공자정치사상의 요체인 仁을 강조하기 위해 공자가 새롭게 의미를 부여해 재창조한 것이다. 공자에 의해 새로운 인물로 재탄생된 요임금, 순임금, 우임금 이후 그들을 계승하여 성왕으로 추앙받는 역사적 인물은 은나라의 창업자 성탕과 주나라의 창업자 문왕, 무왕이다. 실재했던 이들은 어떻게 요순처럼 聖王으로 대접받게 되었을까? 그 작업은 공자의 제자의 제자들 및 추종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서경』은 주나라 성립에 대한 예찬이며, 천명이 주나라에 왔음을 강조하는 정권교체의 정당화이다. 이 책의 「상서」에는 「탕서」라는 편이 있는데 “이윤이 탕왕의 재상이 되어 걸을 벌했다”는 기록이 있다 ‘伐’이란 정치적 정당성을 가진 최고 권력자가 부당하게 권력에 도전하는 사람을 공격하여 없애는 행위를 말한다. 신하였던 ‘탕’이 왕이었던 ‘걸’을 벌했다는 것은 모순이다. 그런데 이렇게 한 것은 바로 주나라 무왕이 왕이었던 은나라 주왕을 벌했다고 말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이것이 모순이 아니라는 논리를 『서경』은 아주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얘기하고 있는데 그 핵심내용은 ‘천명’이다. ‘탕’과 ‘무’는 천명을 받았기 때문에 聖王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거꾸로 해석하면 폭군을 정벌하여 혁명에 성공하면 성왕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다시 말해 폭군의 반대편에 聖王을 위치시키고 있다.
‘성왕-현신’, ‘폭군-영신’의 구조화된 틀이 만들어짐으로써 성왕은 더욱 성스런 인물이 되고, 폭군의 출현은 민중들에게 성왕을 더욱 그리워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된다. 하, 은, 주 3대의 성왕을 이런 모델 속에 가두게 된 배경과 예시들은 무엇일까. 이상이야말로 현실을 비판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다. 이상이 없으면 현실정치의 폐단을 적시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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