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불교철학 - 원효, 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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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삼국시대 불교철학 - 원효, 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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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시대 불교의 전래와 수용
불교의 전래와 수용 양상을 보면, 초기에는 대승불교와 소승불교가 뒤섞여 들어왔으나, 중국 교학의 영향으로 대승불교가 주류를 이루었다. 고구려와 백제에서는 삼론을 비롯한 대승불교가 유행하였고, 신라에서 역시 열반(涅槃)·화엄(華嚴) 등의 대승교학이 성하였다. 특히 백제에서는 율종(律宗)이 성행하여 계율주의적 실천불교의 성향을 띠게 되었다. 대승불교 위주의 경향은 삼국시대로부터 우리나라 불교의 큰 특징 가운데 하나로 내려왔다.
불교는 대체로 삼국이 중앙집권 국가로서의 체제를 정비할 무렵에 전래되거나 공인되었다. 이것은 불교의 수용이 고대국가의 성립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삼국에 있어서 불교를 받아들이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왕실이었다. 불교가 고대 국가의 정신적 지주였을 뿐만 아니라, 왕권의 신장과 국가의 평안, 국민의 정신적 통일에 크게 도움이 되었으므로 국가에서 적극 장려하여 발전하도록 했던 것이다. 삼국시대 불교는 인간 사회의 갈등과 모순을 종교적 차원으로 끌어올려 해소하려 하는 등 주로 정신적 측면에서 고등종교로서의 큰 구실을 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서역과 중국의 문화를 우리나라에 전달하여 고대 문화의 발달에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왔으며, 아울러 국민 사상을 통합시키려 국력을 강화시킬 수 있었고 중앙집권화에도 크게 도움을 주었다. 한국철학사연구회,『한국철학사상사』, 한솔 아케데미 231, 1997, p60
2. 고구려의 불교철학
고구려는 소수림왕 2년(372)에 전진(前秦)의 왕 부견(膚見)이 순도(順道)라는 중을 통해 불상과 경문(經文)을 전해옴으로써 불교가 전래되었다. 이어서 아도(阿道)와 담시(曇始)가 내화(來化)함으로써 불교가 점차 민간에 보급되었다. 그러나 이에 앞서 진(晉)나라 지둔도림(支遁道林, 314~366)이 고구려 도인(道人)에게 서신을 보내 축도잠(竺道潛)의 도덕을 칭찬한 일 등으로 미루어 보면, 소수림왕 이전에 이미 고구려에서 불교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고구려에서는 대승불교인 삼론종(三論宗)이 크게 발달하였다. ‘삼론’이란 용수(龍樹)의 『중관론(中觀論)』과『십이문론(十二門論)』 및 제바의 『백론(百論)』을 말하는데, 주로 반야공사상(般若空思想)의 천명에 주력하는 종파가 삼론종이다. 한국철학사연구회,『한국철학사상사』, 한솔 아케데미 231, 1997, p61
고구려에서 주로 연구된 것은 삼론종 계통의 불교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기록에서 삼론종 승려들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고 해외에서 활약한 고구려 출신의 승려들 중에 삼론종 계통의 승려가 많기 때문이다. 그 밖에 고구려 불교를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것은 해외에서 활약한 승려들이다. 고구려 요동출신의 승랑(僧朗)이 중국 남조(南朝)에서 삼론을 개척하여 삼론종의 선구자로 추앙받고 있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활약한 승려들로는 혜편(惠便)·혜자(惠慈)·승륭(僧隆)·담징(曇徵)·혜관(慧灌)·도등(道登)·도현(道顯) 등이 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강좌 한국철학-사상, 역사, 논쟁의 세계로 초대』, 예문서원, 1995, p119
불교는 고구려 말기에 이르러 권신 연개소문이 삼교를 조화시키고자 하는 종교정책에 따라 당나라에서 도교를 수용, 상대적으로 도교를 우대함으로써 위축되는 상황을 맞았다. 결국 종교적 알력과 사상적 혼란만 초래한 가운데 고구려는 얼마 있지 않아 사직이 붕괴되는 운명에 처하고 말았다. 고구려의 불교는 국내에서보다 오히려 국외에서 결실을 거둔 감이 있다. 이는 고구려 지배층의 불교에 대한 무관심과 함께, 사회 전반에 거려 있던 전통사상과 불교사상의 이중구조가 갖는 부조화를 극복하지 못한데서 생긴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철학사연구회,『한국철학사상사』, 한솔 아케데미 231, 1997, p62
3. 백제의 불교철학
백제는 침류왕 1년(384)에 서역의 포교승인 마리난타(摩羅難陀)가 동진(東晉)으로부터 백제 사신과 함께 들어와 전교함으로써 불교가 시작되었다. 백제에서는 성실정과 함께 계율을 중시하는 율종이 크게 발달하였다. 성왕 4년(526)에 겸익(謙益)은 인도에서 가져온 범본(梵本) 율부(律部)를 번역함으로써 백제 율종의 비조가 되었다. 그러나 백제 율학은 철학적 의미까지 깊이 파고들지는 못하고 소승적 경지에 머물고 만 감이 있다.
율종의 성행은 위덕왕 35년(588)에 일본 여승 젠신니(善新尼) 등 수인이 백제에서 율학을 배우고 돌아가 일본 율학의 선구가 되었던 사실로도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발달한 율학의 내용이 어떠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법왕 1년(599)에 전국에 영을 내려 살생을 금하고, 민가에서 기르는 매를 놓아주게 하며, 어렵기구(漁獵器具)를 모두 불태우게 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불살생’과 같은 불교윤리를 민중의 일상생활 속에 확고히 심어 주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계율 중시적 경향은 유교의 예문화와 더불어 조화를 이루었는데, 율령국가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데서 그 실천이 강조되었다. 백제 불교는 호국신앙보다도 국민 개개인의 율신(律身)과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얻게 하는 윤리규범 내지 신앙으로 전개되었으며, 이를 국가가 장려하고 보호함으로써 불교적 윤리규범에 의한 사회체제를 형성하려 했던 것이다.
한편 백제에서는 미륵신앙이 크게 유행하였다. 이는 백제시기에 미륵보살반가사유상(彌勒菩薩半跏思惟像)이 많이 조성된 것이라든지, 당시 삼국에서 으뜸가는 대가람이자 왕실의 원찰(願刹)이었던 미륵사가 미륵하생신앙(彌勒下生信仰)에 바탕을 두고 창간되었다는 설화가 잘 증명한다. 백제 불교가 교리보다도 현실 위주의 실천불교였음을 특징적으로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한국철학사연구회,『한국철학사상사』, 한솔 아케데미 231, 1997, p6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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