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연극의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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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우리나라 연극의 흐름
1. 일제 강점기 연극
일본 경찰에 의해 1909년 9월부터 창극 대본을 검열하기 시작했고 그 20일 이후에는 창극극단을 해산시켜 결과적으로 창극이 한국의 근대연극으로 발전될 수있는 기호니느 무산되었고 창극단들은 지방을 떠돌아다니게 된 반면, 일본의 신파가 창극과 판소리를 대체하게 된다.
봉건적 정치체제의 말미에 근대시민국가에 대한 민중적 욕구가 격렬하게 일어나는 가운데 그 전환점 마련에 실패한 지배계층의 몰락과 함께 일본의 식민통치로 이어지는 시기에 한국연극이 출발한 사실은 한국 연극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후 1910년대에는 일본 신파 번안극들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애초에 일본에서 자유민권 운동을 위한 정치선전극으로 출발한 신파극이 이제는 가정 비극을 다루는 멜로드라마로 변질된 시점에 한국에 수입된 신파극은 식민통치하에서 민중들이 현실을 무력하게 감상적으로 수용하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1919녀의 3.1운돌의 실패는 저항의 전략을 새롭게 세우도록 해서 정치적인 대항보다는 서양의 신문화를 수입해서 민중을 계몽하면서 힘을 축적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연극계에서는 그 일환으로 신극운동이 일어나느데 일본에서 신극공부를 하고 돌아와 1920년에 예술학원을 설립한 현철은 한국의 신극은 미흡한 창작극을 고집하기보다는 한국ㅁ니들에게 맞는 외국의 희곡들을 수입해서 소개해야한다고 주장한다.
1920년대 신극운동이 일어난 후 일제의 식민정치가 끝나는 1945년까지의 연극활동은 대개 세가지의 지류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1920년대 일본에 유학했던 지식인들에 의해서 형성되어 1930년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신극운동이고, 두 번째는 1920년대 말에 시작해서 1930년대까지 활발하게 펼쳐진 경향극이고 세 번째는 1940년대 일본 정부에 의해서 정책적으로 펼쳐진 국민연극이다. 신극운동은 1923년에 결성된 토월회가 입센이나 버나드쇼오 체홉 스트린드베리히와 같은 서양근대작가들의 작품을 본격적으로 소개하면서 시작된다.
1930년대에는 1931년 7월에 결성된 극예술연국회(이하 극연)의 활동으로 신극운동의 두 번째 단계가 시작된다. 관객에게 극예술을 이해시키고 상업연극이 대중을 오도하는 것을 막으며 한국에서 진정한 현대연극을 수립하고자 발족된 극연은 유럽의 소극장 운동과 아일랜드의 민족연극운동을 참고로 동시대 서양연극을 다양하게 도입한다.
그 가운데서 특히 유치진은 아일랜드의 밀링톤신이나 숀 오케이시의 작품의 영향을 받아 한국인들의 비참한 현실을 그린 <토막> 이나 <소>와 같은 희곡을 생산해서 일본경찰의 검열대상이 된다. 그로 인해 유치진을 비롯한 작가들은 현실을 다룬 희곡보다는 낭만주의적인 역사극 창작에 주력하나, 일본 경찰은 극연을 정치집단으로 간주하고 1938년 3월 강제로 해산시킨다.
신극은 애초에 의도했던 성과를 올리지는 못하는데 그 이유로는 문화적인 격차와 미학적인 차이로 인해 희곡의 내용을 관객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서양에서 근대극의 출현을 뒷받침했던 중산층이 식민지하 한국에서는 아직 형성되지 못해서 연극활동을 주도하는 지식인들과 일반 대중사이의 간극을 메울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일본은 한국인 지주들의 위치를 강화함으로써 한국의 경제를 장악하는 정책을 썼는데 그 결과 대다수의 자영 농민들이 소작농이나 도시 노동자로 전락하게 된다. 그들의 양적인 팽창과 더불어 더욱 열악해지는 주거환경과 노동환경의 실태는 1920년대부터 세계적으로 힘을 얻고 있던 사회주의가 한국에서도 지지를 얻게되는 배경이 된다. 이에 따라 1928년 한국 프롤레타리아 연맹(KAPF)은 메가폰과 이동극장이라는 연극단체를 조지하고 노동자와 농민들에게 계급투쟁에 참여할 것을 선전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신극 극단들은 양식적이고 미학적인 것에만 관심이 있다고 비판하고 신파에 대해서는 감상주의적이고 퇴폐적이라면서 노동자 계층이 당면한 문제들을 아지-프로극(선동목적극)의 양식으로 표현했다. 한편 일본 조선 총독부는 30년대에 배우통제법(1934)과 연극영화통제법(1935)들의 두 가지 법률을 신설하고 지방 경찰들에게 연극인들의 신분, 그들의 교육 정도와 이데올로기 등을 조사하도록 지시한다. 그리고 1934년에 카프를 강제 해산해서 이에 가담했던 연극인들은 대부분 상업연극활동으로 편입된다. 일본의 통제는 37년 중일전쟁과 41년 태평양전쟁을 겪으면서 더욱 강화되는데 1940년 12월에는 상업극단들이 주축이 되어 자진해서 조선연극협회를 결성하고 군국주의 연극 수립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한편, 유치진이나 서항석 같은 시극의 지도자들도 1941년 극단 현대극장을 창설해서 해방이 될 EO까지 국민 연극을 적극적으로 실행한다.
해방공간과 분단시대의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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