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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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버핏
I. 워런버핏(Warren Edward Buffett)은?
광대한 목초지, 끝없이 이어지는 옥수수 밭, 인구 40만의 작은 도시, 네브래스카주의 오마하에 세계 각국에서 약 3만 명의 인파가 몰려든다. 그들은 아침 9시부터 열리는 버핏의 투자회사 ‘버크셔 헤더웨이’의 주주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 1시부터 주주총회 장소인 체육관에서 줄을 선다. 무엇이 그들을 그 새벽에 줄을 서게 했을까?
그들은 주주총회 후 이어지는 워런 버핏과의 ‘대화의 시간’ 때문이다. 5시간 이상 이어지는 긴 시간 동안 그들은 깊은 열정으로 경청을 한다. 마치 유명 연예인에 열광하는 청소년들의 콘서트처럼 말이다. 1930년 미국 오마하에서 태어난 워런 버핏은 주식 중개인이며 하원의원이기도 했던 아버지 하워드 버핏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어린 시절부터 자립심이 강했고 돈을 버는데 천부적인 감각이 있었다. 그는 8살 때부터 주식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으며 일찍부터 사업가적인 자질을 보였다. 11살 때부터 주식매매를 시작했고, 골프공을 주워서 팔았으며, 신문을 배달했다. 또 고등학교 시절에는 ‘핀볼머신(Pinball Machine)’을 이발소에 설치해 일주일에 50달러를 벌기도 했으며, 네브래스카 북부에 40에이커의 농장을 구입해 농장주가 되기도 했다. 또한 친구들과 돈을 모아 구형 롤스로이스 자동차를 350달러에 구입한 후 차를 임대해 하루 35달러의 수입을 벌기도 했다. 1950년 콜롬비아대학교 경영대학원에 진학한 워런 버핏은 벤 자민 그레이엄 밑에서 MBA 자격증을 취득한다. 벤 자민 그레이엄은 버핏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그는 투자기업의 ‘내적 가치’를 중시하는 ‘현명한 투자가’로 유명했다. 버핏은 “단기적인 성패에 연연하지 말고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기다려라”는 벤 자민 그레이엄의 저서에 나오는 말을 금과옥조처럼 여겼다. 이는 후에 버핏의 투자 원칙이 된다. 1951년부터 증권회사에서 투자상담가로 일하던 그는 1956년 친척들에게 돈을 빌려 10만 달러의 자본금으로 ‘버핏 파트너십 투자금융사’를 설립한다. 당시 미국 증권시장은 막 불황에 접어들고 있었지만 버핏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승승장구했고 몇 개의 회사를 인수했다.
버핏의 ‘가치투자’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코카콜라 주식 매입이다. 1970년대 초 버핏은 펩시의 강력한 도전에 휘청거리며 주가가 하락하던 코카콜라 주식을 매입했다. 코카콜라사가 갖고 있던 ‘가치’를 주목했기 때문이다. 그는 코카콜라사의 해외사업 능력과 경영진의 솔직함에 높은 점수를 줬고, 현재의 주가가 코카콜라사의 내재적 가치보다 낮다고 생각해 과감히 투자를 했다. 이런 ‘가치투자’로 버핏은 10만 달러를 투자해 38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65년 워런버핏은 오마하에 버크셔 헤더웨이를 인수했다. 그런데 버크셔는 지난해까지 38년 동안 연간 투자 수익률이 50%를 넘은 적이 한 번밖에 없다. 열 배, 스무 배는커녕 1년에 원금이 갑절로 불어난 해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주식투자로 세계 제2의 부자가 됐다. 바로 ‘돈을 잃지 않는다’는 투자 원칙을 항상 지켰기 때문이다. 버크셔 헤더웨이의 인수 이후 38년간 투자로 손해를 본 해는 2001년뿐, 65년부터 2000년까지 36년 연속 이익을 봤다. 수익률은 매년 평균 25∼30%. 고만고만한 수익률을 36년간 이어온 결과 버크셔의 투자 원금은 3000배 가까이 불어났다. 이는 투기 대신 철저히 기업 실적 위주의 정석 투자를 고집한 결과라는 평가다. 버핏의 ‘버크셔 헤더웨이’는 1998년까지 엄청난 수익률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했고 버핏은 어느덧 신화적인 인물이 되었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은 아내 수전 버핏이 사망하자 유산 25억달러를 전액 사회에 기부했다. 평소 "내가 죽으면 재산 중 1%를 아내에게 물려주고 나머지는 내 이름을 딴 재단에 기부하며 세 자녀에게는 한 푼도 물려주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억만장자인 그는 1958년 고향에서 3만1500달러(3500만원 상당)를 주고 산 집에서 계속 살고 있으며 고급 레스토랑보다는 맥도날드 햄버거와 코카콜라를 더 즐긴다고 한다. 오래된 중고 자동차를 직접 몰고 다니고, 동네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는다. 그는 CEO로서의 연봉도 약 10만 달러(약 1억 원)이며 다른 CEO와 달리 스톡옵션 등으로 거액을 챙기지 않는다. 버핏은 일하는 것을 즐기기 때문에 여전히 회사 일에 몰두하고 있다. 대부분의 토요일에도 일을 한다. 그는 "이 세상에서 버크셔 해더웨이를 경영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일은 없을 것 "이라고 말한다. 세계 제2의거부이면서도 매우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며, ‘돈에 연연하지 않고 아낌없이 거액을 기부하는 점’ 등으로 그의 별명이 ‘오마하의 현인’이 된 것이다.
II. 워런버핏의 투자 원칙
워런버핏의 투자원칙은 정말 간단하다.
제1 원칙은 돈을 잃지 않는 것, 제2 원칙은 제1 원칙을 잊지 않는 것이다.
▶잃지 않는 투자자 - 이길 확률 없으면 단돈 1달러도 걸지 않는다
1990년대 버핏는 한 미국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골프를 했다. 그 CEO가 버핏에게 “이번 홀에서 당신이 2달러를 걸고 티샷을 해 홀인원을 하면 내가 1만달러를 주겠다”며 내기를 제안했다. 재미 삼아 해 볼 수도 있었지만 버핏은 “그렇게 확률이 낮은 도박은 안 한다”며 정색하고 거절했다. 무안해진 CEO가 “그렇게 부자면서 2달러 갖고 뭘 그렇게 벌벌 떠느냐”고 묻자 버핏은 이렇게 대답했다. “2달러로 투기를 하는 사람은 1만달러를 손에 쥐어줘도 마찬가지로 투기를 합니다. 이길 확률이 없는데 요행을 바라는 것은 투기꾼이나 할 짓이지 투자자가 할 일이 아니지요.” 워런 버핏은 ‘대박을 노린 투기’를 끔찍이 싫어한다. 즉, 저평가된 좋은 기업 주식에 장기 투자하는 평범한 원칙만이 돈을 버는 올바른 길이라는 고집을 지키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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