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 시언어 합일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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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 언어, 합일의 소망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닐지니,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륙의 일부분일 뿐,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나가면, 유럽 땅은 그만큼 작아지고, 모래톱이 그렇게 되어도, 어느 누구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키나니, 나 란 인류 속에 포함된 존재이기 때문인가.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를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해 울리므로.
존 던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한 구절이다. 그가 말한대로 인간은 섬이 아니다. 살아가는 것은 나를 둘러싼 세계 안에서 사는 것이며, 아름다움 역시 그 안에서 느끼게 된다.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 인간은 인간들 사이에서 뿐 아니라 자연과 인간, 신과 인간 사이에서 무엇으로 그 대상을 인식하고 그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가. 원시인들에게 언어란 인간들뿐만 아니라 비인간적인 존재인 자연과 신과의 교섭도 언어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인간의 감정이 자연과 신과도 교감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언어는 대상과 언제나 연결되는 마술적인 기능에 의하여 원시인에게 대상과의 연속삼과 일체감을 갖는 ‘유기체의 완전한 전체적 느낌’, 즉 ‘원초적 통일성을 경험하도록 했다.
바필드는 언어가 감각적·물질적 대상의 이름으로 사용되던 원시시대의 언어, 즉 이런 물질적 의미의 말들이 비유적 용법으로 사용되는 ‘비유의 시대’가 발생한 것을 가정하고 이를 탐구했다. 그에 의하면 최초의 언어는 그대로 비유였다. 실제 사물인 ‘달’을 X라 하고 이의 언어적 명칭을 Y라고 했을 때 “X는 Y다”에서 Y는 X에 대한 비유인 동시에 바로 언어인 것이다. 원시인의 언어는 ‘사물(X)-언어(Y)의 형태로 언제나 사물과 구분될 수 없도록 밀착된 통일성을 갖고 있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최초의 언어가 신과 자연과 같은 비인간적 대상과 공감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원시인들의 의식이 대상을 ‘그것’으로가 아니라 ‘너’로 받아들이는 의인관적 세계관임을 시사한다. 그리하여 최초의 언어는 ‘주술적 언어’가 되는 것이다. 가령 “파도가 운다”하면 실제로 파도가 울고, 신에게 구원의 기적을 ‘말하면’ 실제로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원시인은 믿었다. 대상을 ‘너’로 인식하는 이런 의인관적 태도가 시의 본질이다. 왜냐하면 자아와 세계, 시상과 감정이 융합된 결합의 방식이 순수한 미적 형식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감각적 물질대상의 이름이자 인산의 사고와 감정과는 고립되지 않았던 비유로서의 원시언어 속에는 처음부터 시적 가치가 잠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의식의 발달과 문명의 진보에 따라 언어는 자연과 신을 부를 수 없고 공감시킬 수 없다는, 언어의 주술적 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짐에 때라 언어관에 있어서 코페르니쿠스적 변화를 가져왔고 급기야 언어는 의미표출의 상징, 즉 ‘의미론적 기능’밖에 갖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언어가 이제 더 이상 대상과 동일시되지도 않고, 따라서 주술적 기능이 없는, 그 대상을 가리키는 의미론적 기능의 추상적 기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언어관의 이런 근본적 변화 자체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이런 언어관의 변화가 필연적으로 인간의 사고·감정과 감각적 대상이 조화적으로 통일되어 있던 ‘원초적 통일성’이 추상과 구상, 특수와 보편, 사상과 감정, 주관과 객관이라는 여러 가지 대립되는 짝으로 분열되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달’이라고 했을 때 달이란 언어는 한때는 언어가 아닌 달이란 직접적 실재로서 지각되었지만 이제는 대상을 지시하는 단순한 기호로만 고립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비유, 곧 시적 비유는 원시언어인 Y를 추상적 기호로서의 언어인 Z로 대치하여 “Y는 Z다”로 표현되는 형식이다. 즉, Y나 Z는 모두 기호이며 기런 기호들을 인위적으로 결합시키는 형식인 것이다. 이것이 이차적 비유이다. 일차적 비유는, ‘사물-언어’의 형식이지만 이차적 비유는 ‘언어-언어’의 형식이다. 말하자면 이 이차적 비유가 우리가 일고 있는 수사법이다. 언어와 실재와의 이런 분열이 인간의 삶이 언어기호를 강조할수록 또는 이에 의존할수록 심화되어 감은 말할 필요 럾다.
의식(언어)의 발달로 인한 분열현상을 우리의 지성은 문화라는 미명으로 부른다. 그러나 문화의 발달이란 실상 인간이 자연과의 직접적 접촉을 잃고 모든 다른 생명체와 타인들과는 물론이고 마침내 자기 자신과도 소외되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더욱이 현대의 과학적 · 기술적 지성은 이런 분열화, 소외현상을 분업화 · 전문화라는 이름으로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바필드는 의식의 전체 발달과정에서 두 가지 대립되는 원리를 발견했다. 첫째로 단이란 의미가 분리되고 고립된 많은 개념들로 분열되는 힘과, 둘째 이와 전혀 반대로 언어가 처음 발생하던 때의 자연과 인간이 조화된 그 원초적 통일성을 발견하려는 힘이 그것이다. 전자가 일반언어라고 한다면 시의 언어는 후자, 곧 원초적 통일성을 지향하는 언어다. 즉, 시의 언어는 혼자 살아가지 않는 인간이 다른 실재하는 것들과 의사소통하려는 아름다움이다.
2. 김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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