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과 창조적 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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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국의 경영자들은 세종대왕의 최고경영자로서의 자질 가운데 어떤 부분을 가장 닮고 싶어 할까? 바로 지식경영 부분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임원급 대상 유료 정보 사이트인 세리 CEO를 통해 지난 10일부터 닷새간 회원 499명을 대상으로 세종대왕의 장점 가운데 가장 닮고 싶은 것을 물은 결과 41.7%가 한글 창제, 활자 발명 등 지식 창조 경영을 꼽았다고 밝혔다. 응답자의 38.8%는 신분보다 능력 위주로 인재를 등용한 인재경영 전략을 제시했다. 이어 쓰시마정벌 등 신 시장 개척(6.4%), 음악을 장려한 감성 경영(1.6%), 측우기·해시계 등을 발명한 과학기술경영(1.2%)이 그 뒤를 이었다.
나는 이 중 인재경영에 집중해 보려 한다. 세종의 인재사랑은 특별했다. 인재를 찾아 다녔고 동시에 인재를 만들어 냈다. 또한 자신의 아들을 뛰어난 군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럼, 실록 안에서 세종의 인재경영을 살펴보자.
■ 나라의 동량이 될 인재 선발
최고 지도자가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는 훌륭한 인재들이 적재적소에서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재를 기르고 공정하게 선발해야 하며, 아울러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훌륭한 정치와 역사적 업적으로 이름을 남긴 지도자들은 이런 점에서 탁월한 사람들이었다.
조선시대에서도 좋은 인재를 골라 능력을 발휘하게 해준 왕들은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겼다. 세종과 정조의 경우, 집현전(集賢殿)과 규장각(奎章閣)을 통해 인재들을 양성하고, 그들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런 바탕 위에서 세종과 정조대의 위대한 업적이 탄생할 수 있었다.
세종과 정조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왕들은 누구나 인재를 양성하고 선발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한양의 성균관을 비롯하여 지방의 향고, 서원 등의 교육 기관에 국가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인재를 선발하는 과거 시험의 공정성을 위하여 여러 제도를 마련하였다.
세종시대 과거는 문과(文科), 무과(武科), 잡과(雜科)를 통해 국가운영에 참여할 관료들을 선발하는 제도였다. 문과는 문신 관료, 무과는 군사 지휘관들을 뽑는 시험으로, 이를 통과한 사람들이 양반 관료가 되었으며 조선시대 관료제를 주도 하였다. 이에 비해 잡과는 통역관, 의사, 법률가 등 주로 행정 실무자나 전문직을 뽑는 시험으로, 보통 중인 계층의 사람들이 지원하였다. 문과와 무과 전시의 결과는 대략 1주일간의 평가 시간을 가진 후 응시생들을 대궐에 모두 모아 놓고 발표하였다. 이렇듯이 조선시대를 주도한 양반 관료는 이렇게 왕의 특별한 관심과 우대 속에서 선발되었다.
■ 세종대왕의 인사정책
또한, 세종대왕은 인사와 제도 운영, 유교이념에 의한 도덕성, 나라와 겨레를 위한 기본 정책에 있어서 뛰어난 경영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세종은 왕도정치에서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인사에 성공한 군주였다.
국왕이 바뀌면 새로운 세력들이 나타나 사건을 조작하고 여기에 관련된 인물들은 희생양을 삼거나 혹은 살생부를 만들어 대대적인 숙청과세 싸움이 벌어진다. 국왕들은 또 이들을 악용하여 형편에 따라 이쪽 편을 들다가 또 필요하면 다른 편을 들어 주면서 수많은 인재들을 희생시켰고 이런 식으로 제왕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세종대왕은 이러한 파벌의 형성이나 세력간의 대립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인재등용의 부당한 제한이나 억울한 숙청이 없었던 유일한 임금이었다.
세종은 능력에 따른 효율적인 인사제도를 실시했다. 인재를 한 사람이라도 버리지 않고 모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폭넓은 인사 정책을 편 세종대왕은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한다. 세종대왕은 재위 32년 동안 19명의 재상을 임명하였는데, 그중 한상경, 이원, 박은, 이직, 정탁은 태종대의 공신 이였다. 이들 중 권근의 처남인 이원을 제외하고는 대개 3년 이내에 관직을 그만 두었으며 세종 10년 동안 모두 세상을 떠났다. 이들을 제외한 14명의 정승은 대왕이 모두 유학적 재질과 소양을 보고 재상에 임명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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