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로마의 역사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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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고대 로마의 도시들의 시민들은 동시대의 다른 나라 도시들의 시민보다 쾌적하고 윤택한 생활을 누렸다. 또한 전염병으로 인해 고생했다는 기록도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고대 로마가 전성기였을 시기 로마에만 시민 100만 명 이상이 거주 하였으며 당시 전 세계 인구의 1/4이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다. 이렇게 많은 인구가 도시생활을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고대 로마 시민들의 일상생활을 안락하고 편리하게 만들었을까? 물론 당시의 다른 여러 가지의 정책들과 시설들도 로마 시민들의 편리한 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되었겠지만 무엇보다 물의 안정적인 공급이 그 어떤 다른 요소들보다 우선적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고대 로마 주요도시들은 물론 왠만한 중소도시까지 수원지에서부터 수도를 건설하여 시내에 물을 공급했다. 고대 로마 시대의 수도로 남아있는 유명한 유적으로는 ‘퐁 뒤 가르(Pont du Gard)를 들 수 있다. 프랑스 남부 소도시 ‘님’에 있는 ‘퐁 뒤 가르’를 한 문장으로 정의 한다면 프랑스에 있는 고대 로마 수도교 유적의 일부분이다. 하지만 단순히 유적을 설명하기 보다는 왜 고대 로마인들이 왜 수도교를 건설했고 어떻게 이용했는지 먼저 이해한다면 유적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의의를 좀 더 쉽게 파악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따라서 먼저 고대 로마의 수도교에 대한 기능을 정리를 한 다음 유적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논의하도록 하겠다.
2. 고대 로마시대의 수도
로마 수도의 기원은 기원전 4세기경 로마 공화국의 정치가 ‘아피우스’가 수도 로마에 건설한 ‘아피아’ 수도에서 시작된다. ‘테베레’강이 앞에 있어 물이 부족하지 않은 로마에 굳이 상수도를 건설한 이유로는 우물이나 샘에서 의존하지 않고 물의 안정된 공급체계를 확립함으로써 시민들의 쾌적하고 위생적인 도시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피아’수도가 건설된 이후에도 통치자에 의해 추가적으로 건설되어 제정시기인 2세기경에는 로마로 공급되는 수도가 9개로 늘어났다.
(스페인 세고비아, 지금도 물이 흐르는 높이 27m의 고대 로마의 수도교)
서기 1세기 수도를 통해서 로마로 들어오는 수돗물의 양은 1,000,000㎥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며 단순히 계산하자면 당시 1인당 하루 급수량은 1㎥로 계산이 된다. 현재 서울 시민의 하루 급수량이 0.47㎥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고대 로마인들은 물에 대해서는 유례없이 사치스럽게 풍족히 사용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도를 통해서 공급되어지는 많은 양의 물은 개인용과 공공용로 나누어져 시민들이 사용했다. 개인용으로 공급되는 물은 사용자가 정부에 일정수준의 수도 사용료를 지불하고 재정적으로 넉넉한 부자집이나 작업장안까지 수도를 설치하여 물이 공급되어 사용되었다. 공공용으로써는 공동수조, 분수, 목욕장에 공급되는 물은 위한 수도로써 모든 시민이 공공용 수도에서 제공되는 물은 무료로 사용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서민들이 이용한 공동수조는 시내 길가 40m마다 설치되어 있었으며 물을 깨끗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온종일 흐르도록 하였다. 공동수조는 시내거리 70m마다 설치되어 시민들의 물 사용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즉 가장 먼 경우라도 40m만 걷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면 수돗물을 무한정 무료로 사용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폼페이 시내에 남아 있는 공동수조 ‘아본탄차’)
또한 고대 로마인들은 군인들이 머무르는 전선기지에 까지 목욕장을 설치했을 정도로 목욕을 광적으로 좋아하였으며 현대인과 비슷하게 위생을 매우 중요시 여겼던 만큼 청결에 대한 관심도가 높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자연적으로 목욕장의 물 수요가 높은 것을 의미하며 이에 사용되어지는 수돗물 역시 수도를 통해서 공급되어졌다. 놀랍게도 현재 로마시내에 제 기능을 발휘하는 고대 로마 수도가 존재하며 이 수도에서 흐르는 물은 관광지로 유명한 트레비 분수나 스페인 광장의 분수를 비롯하여 로마시내의 거의 모든 분수에 물을 공급하고 있다.
(이탈리아 로마시내의 트레비 분수)
수도의 건설은 원로원과 황제 그리고 지방 속주에서는 통치자가 결정을 하면 입찰을 통하여 민간기업에게 수도공사 발주를 한다. 즉 정부 및 지방정부가 시행사가 되고 공사를 하는 민간기업은 시공사가 되는 셈이다. 시공사는 먼저 수원을 결정하고 수돗물이 수도를 원활하게 흐르게 하기위한 경사도를 계산한다. 수원이나 지역에 따라 수도의 길이도 다르게 나타난다. 비교적 산악지형이 많아서 물이 풍부했던 유럽의 경우 수도의 길이는 수십km 내외 였으나 상대적으로 물이 적고 사막지대인 아프리카의 경우 수도의 길이가 100km가 넘는 경우도 있었다. 다음으로 수도건설공사에 착수하는데 눈에 보이는 고가형식의 수도교와 지하수도의 비율은 2:5정도로 하여 건설한다. 지하 수도를 만드는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로 첫 번째는 수온이 상승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서이다. 완성된 수도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유지, 보수가 필수적이다. 특히 유럽 지역의 물은 석회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오랜 기간 보수를 하지 않을 경우 석회가 수도를 막아 물의 흐름을 방해하는 경우가 생긴다. 따라서 정부에서 수도의 유지, 보수를 관리하는 기관을 만들어 수도가 제 기능을 하는지 감독했다.
파리, 리옹, 알제리의 셰르셸, 쾰른 심지어 시리아 지역에까지 고대 로마 수도의 유적이 존재한다는 것은 당시 로마의 지배하에 있던 지역의 시민들까지 안정적인 물의 공급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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