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감상문]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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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을 읽고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일명 ‘난쏘공’은 1970년대 당시 도시 빈민의 궁핍한 생활과 자본주의적 모순 속에서 노동자가 현실적으로 패배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문학 작품이다. 이 작품은 원래 연작 소설 형식으로 같은 제목의 총 12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도시 빈민과 노동자들이 패배하는 모습을 드러낸 부분이 이 소설의 대표적인 파트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소설을 중학교 때 국어 교과서에서 처음 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교과서에 실렸다는 것 그 자체가 문학적으로 기념비 적이고 충분한 문학적 가치와 의의를 가진다는 것이지만 그 때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해서 그냥 교과서에 실린 여느 글 중 하나라고 생각했지 이 작품의 의의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본적도 없고 느낀 적도 없었다. 그렇게 당시에는 넘겼는데 고등학교 때 이 소설을 다시 접하게 되고 대학교에 와서도 이 소설을 다시 접하게 되면서 이 소설의 가치와 의의를 좀 더 심도 깊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소설은 1970년대의 사회상을 꽤나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는 책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도시 노동자의 여러 문제들은 우리 사회가 당면한 엄연한 현실이었다.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철거되는 삶의 터전, 최저 생계비에 턱없이 못 미치는 임금 수준, 너무나도 열악한 작업 환경, 가진 자의 억압과 횡포 등 이와 같은 모순적인 모순들은 당시 사회 모순의 전형이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때 사회탐구 과목을 선택할 때도 국사와 근현대사를 했고 근현대사를 내 또래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깊게 많이 공부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역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고, 관심도 있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나는 딱딱한 교과서와 참고서의 텍스트로만 당대 사회의 모습들을 읽어 왔기 때문에 별로 실감 나지도 않고 와닿지는 않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소설로 감정을 이입해서 읽다 보니 확실히 더 와닿는게 있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 겪는 슬픈 가족사가 마치 내 가족사처럼 느껴지고 훨씬 더 당대 현실의 문제점과 모순됨을 잘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이 소설은 당대 사회의 모순점들을 고발하는 데만 주안점을 둔 것이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가치 있는 소설이다. 결코 교과서나 참고서의 텍스트로는 표현 할 수 없는 문학만이 가능한 정서적인 면을 두드러지게 표현하고 있다. 내가 이 소설을 읽을 때 교과서의 텍스트를 읽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고 소설이 더 와닿았던 것도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의 정서적인 면을 잘 부가시켜 독자로 하여금 등장인물들에 감정을 잘 이입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이 소설은 사회의 현실적인 모습과 모순됨을 반영하고 폭로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문학적 함축을 통한 정서적 기능을 모두 충족시킨다고 볼 수 있다.
이 소설의 내용적인 면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작가는 주인공인 ‘난쟁이’로 대변되는 가난한 소외 계층과 공장 노동자의 삶의 모습, 1970년대의 핵심 문제인 노동 조건을 폭로한다. 주인공 ‘난쟁이’는 1970년대 도시에서 살고 있는 빈민인데 도시 개발로 인하여 오랫 동안 살아왔던 집이 철거당할 위기에 놓인다. 그리고 그런 극악의 상황속에서 난쟁이 일가가 나름대로 저항하는 모습들을 보여주는데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주인공 ‘난쟁이’는 자살하며 현실 앞에 패배하는 비극적인 결말을 맺게 된다. 마지막에 ‘난쟁이’의 죽음과 함께 그의 딸인 ‘영희’는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부른 사람들을 모두 죽여버려”라며 절규를 하는데 이 절규가 나는 개인적으로 소설의 전체 내용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 절규는 ‘나는 아버지처럼 더 이상은 난쟁이로 남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는데 나는 이 강한 의지가 더 가슴이 아팠다. 난쟁이 일가의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는데도 불구하고 현실 앞에서 무기력하게 패배하는 모습에 이러한 절규가 더해지니 더 슬펐고 오히려 공허한 외침, 무기력한 외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거인으로서의 삶’을 꿈꾸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내용 아닌 형식적인 면에서 살펴보면, 이 소설의 전체를 읽어 봤던 사람은 느꼈겠지만 이 소설은 다른 소설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점의 이동이 굉장히 잦다. 난쟁이 일가 전원의 시점에서 한 번씩 소설을 서술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읽는데 약간 어려움이 있고 정신 없다고 느껴질 수 도 있다. 하지만 그 만큼 난쟁이 일가 구성원 각자의 캐릭터와 이방에 대해서 보다 정확히 알 수 있고 그만큼 더 내용 자체를 보다 심도 깊게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문학적 기법들이 서정적 미감을 불러 일으켰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국가폭력과 트라우마’라는 강의에서 이 소설을 다시 한번 읽게 되고 이 소설에 관련된 과제를 쓰는 만큼 ‘국가폭력’이라는 면에서 이 소설을 생각해보면, 국가폭력의 전형을 보여 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기 시대는 개발의 시대였다. 수출 몇백만불을 돌파하는 등 경제적인 투자와 발전이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인류의 긴 역사가 그랬듯 급격하고 무리한 발전에는 부작용과 누군가의 희생이 따른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는 물론 정치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평가가 긍정적인지 부정직인지 엇갈리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당대 업적이나 가치 등에 대해서 시시비비를 가리기 전에 그 때 희생됬던 도시 빈민들과 노동자들을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분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개발도 없었을 것이며, 어쩌면 그 개발에서 최고로 희생당한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이기도 하신 분들이다. 그 분들의 희생과 당시 모습들을 잊지 않으며 평생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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