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 두보 초당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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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두보(杜甫) 초당을 다녀와서
지금 중국 쓰촨성(四川省) 성도시(成都市-청뚜시) 성도대학(成都大學-청뚜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으며 제가 살고 있는 청뚜시(성도시-成都市)에서 중국의 시성 두보(杜甫)의 초당을 다녀와서 그의 생애와 시성(詩聖)이라는 이름을 얻은 그에 대한 연민의 정을 느끼며 그에 대한 생애를 정리해 보고자 <김의정의 興과 결합된 단어를 통해 살펴본 杜甫의 방랑과 창작: 중국어문학지 제30집>을 참고하였습니다.
두보는 “詩聖”이자 “詩仙”의 칭호를 얻은 귀한 시인의 발자취를 느끼며 제가 이곳에서 잠시 살고 있는 成都에서 두보가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시 창작을 하였으며 또한 방랑의 벽을 깨지 못하고 長江을 따라 동쪽으로 가면서 노후의 여생을 방랑하다 생을 마감하였다니 새삼 느끼는 바가 많으며 나도 방랑의 벽이 있어서 여기까지 왔나 싶기도 합니다.
두보(杜甫 712-770년)는 중국 당대(唐代)의 시인으로 이백(李白)과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시인이다. 당시 귀족의 부패상과 전란의 참상을 고발한 시편들은 한편의 역사서와 같이 사회의 다각적인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고 하여 시사(時史)라는 이름과 사회와 인간으 ㄹ바라보는 깊이있는 눈과 약자에 대한 끝없는 동정, 나악 시의 형식에 있어서 두보 당대까지 실험된 모든 양식을 부단한 노력으로 한 차원 더 높이 승화시킨 점에서 시인 성인(聖人), 즉 시성(詩聖)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두보는 안사(安史)의 난이 발발하기전 벼슬을 준비하면서 10년간 장안(長安)에서 머물렀고 이후 난을 피하여 서남뽁을 떠돌다가 성도(청뚜 成都)에 정착하여 전후 대략 6년의 세월을 보낸 기간이 있었으니 그의 삶이 완전히 방랑으로만 점철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두 번의 정착은 모두 긴 방랑이 전주곡일 따름이었으며 시의 창작과의 상관관계를 보더라도 정착된 기간보다는 방랑하는 동안 부딪힌 사건과 경험이 시의 형성에 보다 보다 본질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래에서는 시를 쓰게 하는 힘인 흥과 관련하여 그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세 차례의 방랑을 하였다.
1. 청년기
시인의 방랑은 일생을 두고 지속되었으나 시의 창작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띠는 것은 세차례를 꼽을 수 있다. 그 중 첫 번째는 젊은 시절 견문을 넓히기 위해 떠났던 여행이다.
당대(唐代)의 식인들은 서재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독서하는 이외에 천하를 주유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특히 성당(盛唐)시기에는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를 두루 돌아다닌다.(獨萬卷書, 行萬里路)”는 관념이 이미 유행이 되어 있었다. 두보가 태어난 그 해에 마침 현종(玄宗)이 즉위하였다. 집권 전반기의 2-30년간,현종은 국가를 다스리는 일에 정력을 기울여 유능한 인재가 등용되고 정치적 비판을 위한 언로도 열려, 이른바 ‘개원성세(開元盛世)’라는 태평세월이 출현하였다. 당시 사회는 재화가 풍족하고 민생이 안정되었으며 도로는 시원스럽게 소통되엇고 이러한 상황은 지식인의 유력(遊歷)에 필요한 조건을 제공해 주었다. 이 밖에도 당시의 과거시험에는 “온권(溫卷)”이라는 별도의 풍조가 성행하여 사대부들은 과거에 응시하기 전에 자신이 지은 시문을 “출세한 사람”과 “시험관”에게 바쳐 명성을 높이는 것이 관례였다. 따라서 지식인이 서재를 나와 사회의 명사들과 접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며 이르 위한 교유와 여행이 매우 중시되었다. 두보는 바로 이러한 희망을 품곻 여행을 작하여 20세에 시작하여 34세에 이르기까지 모두 세차례에 걸쳐 기나 긴 여행을 하였다.
그 첫 번째는 오월(吳越)지방(江蘇省과 浙江省)으로의 여행이었다. 개원(開元)19년(731), 그는 낙양(洛陽)을 출발하여 수로로 강녕(江寧-강소성 남경(南京)에 도착하여 약 4년간 남방의 명승고적을 둘러보고 저명인사들과 교류하였다.
개원24년(736) 두보는 두 번째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이때는 제조(齊趙-山東省과 河北省)
지역을 유람하였으며 여행기간은 약 5년이었다. 이 기간에 그는 평생의 벗 蘇源明과 사귀었다. 두보는 만년에 이때의 즐거운 생활을 “제조 지역을 마음껏 노닐어, 갖옷 입고 말 타며 얼마나 통쾌했었나! 放蕩齊趙間馬頗淸狂.”(<젊은 날의 여행 壯遊>)라고 회고하였다. ‘방탕(放蕩)’이란 마음껏 놀러 다닌 것을 말하여 ‘청광(淸狂)이란 제멋대로 거리낌이 없엇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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