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문 나의 하나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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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나님 이야기
♠ 들어가면서
수 많은 날들을 살아오면서 나는 기독교인이었다. 그러하기에 나의 하나님은 어떠한 분일까에 대한 고민은 마치 내게 풀어야 할 숙제와도 같은 것이었다. 삶의 순간 순간, 나는 기독교인이기에 하나님에 대한 고민을 하고 갈등해야 했다. 어떨 때는 잡히지 않는 공허한 이름의 하나님처럼 그분이 느껴졌고 어떤 때는 무력한 하나님으로 인해 나는 번민했고 방황했다. 어떤 때는 내 옆에 참위로자로서 신실하신 하나님이 내옆에 계셨다. 나는 이제부터 나의 삶의 순간 순간 느껴지고 보여졌던 하나님을 말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나의 신앙과 신학함을 반추해보고 나의 신학함에 반성과 함께 앞으로 어떠한 하나님을 계속해서 추구해야 할 것인가 생각해 보고자 한다.
♠ 몸말
1. 어린 나의 눈에 비춰진 하나님
어린 시절 나는 매우 약한 아이였다.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인해 고생했고 또 죽음의 언저리까지 오가던 나였다. 이런 나를 어머님은 불쌍히 여겨주셨다. 그래서 어린 목숨을 살리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니셨다. 결국 모든 방법이 막힌 상태에서 어머님은 좌절하고 마셨다. 그러다 어머님은 기도로 병도 고칠수 있다는 말을 듣고 실낫같은 희망으로 교회를 찾아가셨고 기도를 받고 난후 나는 거짓말 같이 치유되었다. 사랑하는 아들이 치유된 기적을 보고 어머님은 하나님이라는 분이 신이시고 살아계신분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되셨고,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시게 되었다. 그로 인해 가정에 첫 기독교신자가 되신 어머님은 나를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하셨다. 그 일로 인해 나는 그 이후로부터 내가 말을 알아듣기 시작할 때부터 살아계신 하나님, 나를 살려주신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어머님을 통해 끊임없이 들어야 g했다. 초등학교때부터 나는 어머님에 의해 예수님을 잘 믿는 신실한 아이이어야 했다. 나는 어머님의 뜻에 부응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교회에 빠지는 일이 없었고, 어머님과 함께 새벽기도도 같이 드리러 다녔다. 그리고 방학때에는 어머님을 따라 기도원도 많이 다녔다. 나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소중한 분이시기라보다도 소중히 여겨야 만 할 대상으로 생각되어졌다. 나에게 생명을 주신분 그래서 그 은혜에 보답해야할 대상으로서 여겨졌다. 의무적으로 내가 섬겨할 대상으로서의 하나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거기에는 고민도 없었고 번민도 없었다. 단순히 나의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하감하고 채워주는 분이었고 나는 그러한 그분께 그분을 인정하며 섬기면 되고 내가 바른 섬김을 하나님께 드릴때, 나는 세상에서 나의 질병을 고쳤 주신것처럼 좋은 것들로 내게 대하시며 나의 집안의 안녕과 나의 개인적 모든필요에도 민감하게 공급하실 것을 믿었다. 그러한 나의 믿음으로 인해, 신앙 생활로 인해 나는 너무나 즐거운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어머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나는 교회에서도 어린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신앙생활을 잘 하는 아이로 꼽혀서 칭찬도 받고 귀여움도 많이 받았다. 나는 그러한 것들에 만족을 느끼고 행복함을 느꼈다. 나의 어린눈에 비춰진 하나님은 나에게 있어서 날 보호하시고 내가 가야할 곳을 친절히 인도하시고 나를 축복하시고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시고 나를 좋은 아이로 인정받게 해주는 너무도 좋은 그야말로 나의 하나님이었다.
2. 나의 고통과 어려움에 함께 하지 않는 하나님
중학교를 들어갈 무렵 우리 가정에 엄청난 고통이 찾아왔다. 아버님의 사업이 크게 기울면서 우리가정은 매우 궁핍한 처지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가정에 경제적 어려움은 우리 가정의 심적인 모든 부분을 위축시켰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나의 어머님은 그 고난과 어려움속에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으셨다. 오히려 더욱 강하게 하나님을 믿고 구하고 바라셨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하나님의 도우시지 않음을 억울해 했고 원망했다. 처음에는 이렇게도 생각했다. 내가 하나님께 드린 모든 정성과 노력을 아신다면 하나님은 나에게 이렇게 힘든 어려움을 주실수 없다. 그러하기에 이 모든 어려운 상황은 금방 해결되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집안의 형편은 나의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만은 풀려가지 않았다. 아버지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글자 그대로 망해버렸다. 우리는 하루 아침에 길바닥에 나앉게 되었다. 갈곳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 친척의 집으로 흩어졌다. 어머님은 이것을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욱 강하게 하시려 연단하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런 어머님의 말씀은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하나님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나의 기도를 무시하며 응답하지 않고 철저히 침묵하는 그 하나님을 이해 할 수 없었다. 몇 개월이 지난후 우리 가족은 무허가 비닐하우스에서 다시 모여 살 수 있었다. 우리는 주소를 가질 수 없었다. 우리에게는 전기가 공급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언제 우리의 보금자리를 철거할지 모르는 구청 철거반의 “철거”위험이 상존하고 있었다. 중,고등학교 내내 나의 하나님은 무엇일까 고민했다. 나와 관계있는 하나님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나의 마음 가운데 항상 있었다. 어머님의 반강제적인 요구로 인해 교회를 다니고 있었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의미없는 교회 땅 밟기에 불과했다. 도무지 우리에게 아무런 선한곳도 줄수 없는 하나님을 맹신하는 어머니가 불쌍할 따름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 우리의 형편은 조금 나아지게 되었고 집도 비록 남의 집에 월세이긴 하지만 주소도 있고 전기도 잘 공급되는 집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어머님은 주님께서 우리를 돌보아 주셔서 형통함을 주셨다고 말씀하셨지만 나의 마음속에 하나님은 떠난지 오래였다. 고3이되어서 이제 대학진로를 결정할 때 쯤 나는 더 이상 기독교 신자가 아니고 싶었다. 그래서 어머님께서 그렇게 바라시고 원하시던 신학을 절대로 공부하고 싶지도 않아서 나는 어머님과 상의없이 대학 진학을 신학이 아닌 경영학을 선택했다. 즐거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더 이상 교회도 가고 싶지 않아 이런 저런 구실로 교회를 출석하지 않았다. 캠퍼스의 생활은 만족스러웠고 캠퍼스에서 내가 만나는 학생들은 나에게 신선함을 주었고 하나님이란 허울속에 내가 속아 살아왔음을 느꼈다. 선배들과의 나름대로 진지한 대화와 몇권 안되는 사회과학서적의 탐독을 통해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허위적인 존재였는가를 알게되는 듯 했다. 대학 생활을 통해 나는 마음 한 구석에 그래도 남아있던 하나님의 대한 부담감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를 짓누르고 억압했던 족쇄에서 풀려나는 기쁨을 누리는 순간이었다. 글자그대로 무신론적 신관들과 마르크스, 레닌, 포이어바흐, 니체는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다. 더 이상 신은 없다. 신은 단지 인간의 투사일뿐이며 인간이 꿈꾸는 초월적인 존재의 허상이다. 신이 없음을 인정함으로 인해 인간의 비로소 자유로와 질수 있다는 그들의 말들을 통해 나는 분명 자유함을 얻었다.
3. 우리의 고통과 어려움에 함께 하지 않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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