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서 본 교육사상적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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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주는 나무에서 본 교육사상적 가치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어렸을 때부터 너무나도 많이 봐온,(사실 많이 읽어왔다고 하기 보다는 많이 들어온) 단편 소설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처음 들었을 때 ‘아, 이 부분이 교훈적이다’라기 보다는 ‘너무 감동적인 이야기다.’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보통 처음 느끼는 감정이 그런 것이며, 이것에 대해 초등학교 학생들이라면 어느 누구도 교훈적인 내용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나도 그러한 초등학교 학생들 중 한 명이였다. 그런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다시 읽게 되었다. 뭐랄까, 감회가 새로웠다. 다 알고 있는 내용을 다시 읽자니 약간 지루하기도 했지만, 얼마 되지도 않는 내용이기도 했고, 딱히 어려운 내용도 아니여서 그냥 편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보며 일단 떠오른 생각은 ‘아낌없이 주는 것이 과연 정말 좋은 방법일까’하는 점이였다. 초등학교 때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 관한 부분이 나오면 토의를 하던 부분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과연 정말 좋은 방법일까? 동화의 결말부분을 보면 아낌없이 주는 방법은 참으로 좋은 방법 같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시간이 오래 걸렸더라도 어째뜬 늙어버린 소년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고마움을 깨닫게 된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교육적 측면에서 보면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려가면서까지 깨닫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 교육방법이라고 볼 수 있을까. 평생을 가르치며 깨닫게 하더라도 살아가면서 전혀 깨달음을 알지 못하며 살았을텐데, 그게 과연 효과적인 교육방법일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소년에게 주는 교육방법은 끝없는 관대함이었지만, 이는 삶의 끝에 후회만 남게 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오히려 중간에 소년이 하는 일을 끊어주었으면 어땠을까. 소년과 나무는 계속해서 좋은 친구로 지낼 수 있었을 것이고, 소년도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자신의 욕구만 계속해서 말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질적으로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소년은 교육적으로 더 좋은 길로 갈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아낌없이 학생에게 뭐든지 주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학생에게 뭐든지 주는 것은 그만큼 학생을 아끼는 것에서 나오는 행동이기 때문이다.(물론 이곳에서 나무와 소년은 친구사이이지, 스승과 제자 사이는 아니었지만,) 최근의 여러 기사들을 볼 때 스승이 제자에게 대하는 태도에 대해 이러한 모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스승이 제자를 대하는 태도가 과거 일제 시대 때부터 매우 권위적인 형태였다. 현재는 많이 완화 되어서 오히려 제자가 스승을 고발하는 상황, 학부모가 선생을 폭행하는 상황까지 보여 지기는 하지만, 그것은 소수의 경우일 뿐, 아직도, 최소한 내가 이제까지 학교를 다녔던 전주에서는 선생이 아직도 권위적인 경우가 있다.(어디까지나 몇몇 선생님들께서 나타나는 태도이다. 최근에는 학생들과 친하게 지내려는 선생님들이 더 많다.) 그런 상황을 고려할 때, 학생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행동은 현대 우리나라의 많은 교육자들에게 필요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이것이 꼭 좋은 교육방법이 아니라는 점에서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낌없이 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 학생에게 제재를 할 필요가 있다. 즉, 한쪽에서는 매를 들더라도 한쪽에서는 학생을 격려해주는, 약간은 이중적인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음에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소년에게 주었던 것들의 순서를 보면서 생각해보았다. 처음에는 소년에게 놀 공간과 그늘, 두 번째에는 소년에게 필요했던 돈, 세 번째는 집을 만들기 위한 나뭇가지, 네 번째는 자신이 홀로 떠나기 위한 배를 만들 자신의 몸, 다섯 번째로는 그저 앉을 수 있는 밑둥. 교육적 순서로 따질 때(계속 말하고 있지만, 나무는 스승이 아니고 그저 소년의 친구일 뿐이었다. 여기서 생각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 동화에서 교육적 사상을 찾는다는 데에서 나오는 말이다.) 이러한 순서가 맞는 것일까. 처음의 아동 이였던 소년은 그저 나무와 친구와 같은 상황에 있다. 나무가 특별하게 뭐라고 하지 않아도, 소년이 스스로 나무로 왕관도 만들고, 나무에서 그네를 타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논다. 우리의 유치원 때를 생각해 보면, 이러한 교육방법이 나쁘지는 않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놀이’로 인해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나무는 소년에게 열매를 이용하여 돈을 버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사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동이 바로 크자마자 돈을 버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순서상 적절할까. 사실 우리가 학교를 다니던 이유도 어느 정도 그쪽과 관계가 있다. ‘먹고 살기 위함’의 방편으로 교육을 받고 있는 면이 크기 때문이다.(특히 고등학교 이후부터는,) 물론 초등학교 때부터 사회화를 위한 교육을 받기는 하지만, 고등학교 이후부터의 교육은 사실상 직장을 얻기 위한 교육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현재 우리나라의 의무교육은 중학교까지 정해져 있고, 실제로 돈이 있다면 중학교까지 나와 우리나라를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은 없다.(물론 사회적으로 보는 눈이 있긴 하겠지만,) 중간에 사회화의 과정이 빠진 것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과정은 현재의 교육과정과 맞는 부분이 있다. 또, 세 번째로 나무가 준 집. 이것도 사실 물질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살아가는 과정에서 보통 직장을 구한 후 가정을 구하는 과정으로 볼 때 순서가 맞긴 하다. 하지만 나무가 소년을 대상으로 교육을 한다고 볼 때, 이는 옳지 않다. 가정을 만들어주고, 그 가정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지, 소년에게 필요한건 집이 아니다. 이건 그저 물질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에 따른 결과를 네 번째를 보면 알 수 있다. 어느 정도 성장한 소년은 인생이 무료하다면서 배를 타고 어느 곳이든 가고 싶다고 한다. 아내도 옆에 없고, 자식도 옆에 없다. 배를 만들고 이동할 수 있는 나이 정도라면 아직 그리 늙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이 부분에서 나무의 방법이 잘못 됐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순서상은 옳지만, 그것을 해결해 주려는 방법은 매우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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