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사 소논문] 서포 김만중 작품론 - 구운몽, 사씨남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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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고전 문학사 소논문
서포 김만중(金萬重)을 중심으로
서포 김만중 작품론
『구운몽(九雲夢)』과 『사씨남정기(謝氏南柾記)』을 중심으로
<목차>
Ⅰ. 서론 문학의 현실 세계 반영
Ⅱ. 본론 서포 김만중과 그의 작품 세계
1. 서포 김만중
-시대적 배경과 그의 사상적 입장
-문학사상
-김만중의 문학 외적 연구_종교사상과 자연과학
2. 『서포만필(西浦漫筆)』
3. 『구운몽(九雲夢)』
4. 『사씨남정기(謝氏南柾記)』
5. 두 작품의 문학사적 의의
Ⅲ. 결론 서포 김만중이 추구한 문학
Ⅰ. 문학의 현실 세계 반영_서론
17세기 후반과 18세기는 붕당 간의 권력 투쟁에 따른 희생과 왕권강화 과정에서의 힘겨루기로 곤혹스러웠던 시기이면서도 이른바 문예부흥기 및 실학시대라는 새로운 분위기가 조성된 시기이기도 했다. 이 시대에 나타난 소설은 이러한 시대정신을 충실하게 반영하면서 형상화 되었다. 17세기 후반에 등장한 <사씨남정기>, <구운몽> 등은 고소설사에 한 획을 긋는 대작들이다. 이 작품들은 창작되자마자 독서계에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18세기에 접어들면서 독후감이나 논평 성격이 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서포 김만중은 이러한 고전 문학사의 한 맥은 이끌어 나갔던 인물이라고 평가 받는다. 17세기 후반에 등장한 이 소설들은 당시 현실을 우의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이에 따라 18세기 전반기 소설 비평의 양상들은 작자들이 우의한 현실 문제를 간파하여 소설이 지향하는 숨겨진 의도를 밝혀내는 것이었다.
작가들이 현실세계의 문제를 소설 양식으로 진지하게 풀어갔다는 것은 이 시기에 이르러 소설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였음을 보여 준다. 서포 김만중은 한글 소설의 중요함을 역설하여 국문 소설의 발전에 이바지 했으며 동시에 창작 뿐 아니라 <서포만필>을 통하여 다른 작품들에 대한 비평하기도 했다. 이는 문학 발전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권력의 중심에 서 있으면서도 자신의 기득권 박탈을 두려워하지 않은 채 현실 세계를 작품 속에 담고자했던 서포 김만중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Ⅱ. 서포 김만중과 그의 작품 세계_본론
1. 서포 김만중(金萬重)
서포 김만중(1637~1692)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소설가로 본관은 광산, 아명은 선생(船生), 자는 중숙(重淑), 호는 서포(西浦),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조선조 예학의 대가인 김장생의 증손이고, 충렬공 익겸의 유복자이며, 숙종의 장인인 광성부원군 만기의 아우로서, 숙종대왕의 초비(初妃)인 인경왕후의 숙부이다. 유복자인 탓에 어머니의 남다른 가정교육에 힘입어 성장하였다. 김만중은 1665년 문과에 급제하여 지평, 수찬 등을 역임하고 암행어사로 활동한다. 그러나 임금 앞에서 직언도 불사하는 강직성으로 관직을 삭탈당하고 김金씨 성을 사용하지 못하는 벌을 받기도 했다. 이후 예조참의로 복귀하여 대사헌을 거쳐 대제학에까지 오르는 등 7년간은 전 생애를 통한 황금기를 누렸다. 그러나 숙종이 인현왕후를 폐비시키고 장희빈을 세우려 하자 이를 반대하다가 남해에 유배당한다. 유배지에서 숙종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쓴 것이 사씨남정기다. 이러한 와중에 그의 어머니 윤씨는 아들의 안부를 걱정하던 끝에 병으로 죽었으나 효성이 지극했던 그는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채 남해의 유배지에서 56세의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사상과 문학은 독특한 특징을 보인다. 주희의 논리를 비판하거나 불교적 용어를 거침없이 사용한 점 등에서 사상의 진보성을 찾아볼 수 있으며 그가 주장한 국문가사 예찬론은 문학이론에서의 진보성을 보여준다. 김시습의 금오신화 이후 허균의 뒤를 이어 소설문학의 거장으로 나타난 그는 우리 문학사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즉 소설을 천시했던 조선시대에 있어 소설의 가치를 인식, 창작했을 뿐 아니라 우리의 문학은 마땅히 한글로 써야 한다고 주장하여 이후 국문소설의 황금시대를 가져오게 한 것이다. 그의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한 국자의식(國字意識)은 높이 살 만하며 특히 숙종을 참회시키기 위해 쓴 사씨남정기나 모친을 위로하기 위해 순수한 우리말로 유배지에서 쓴 구운몽 같은 국문소설의 창작은 허균을 잇고, 조선후기 실학파문학의 중간에서 훌륭한 소임을 수행한 것으로 평가된다.
1)시대적 배경과 사상적 입장 조동일,『한국문학사상사시론』, 지식산업사, 2005.
김만중이 활동했던 17세기는 주자학의 체계가 엄격히 수립된 시기인 동시에, 주자학의 사상체계가 무너지던 시기였다. 한학과 불교 등 주자학 이전의 사상이 다시 등장하고, 양명학과 실학 등 새로운 사상을 모색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는 주자학 때문에 억압되어 온 시야를 여는 데 각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만중의 사상적 입장도 이런 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는 주자학의 절대적인 입장인 송시열의 정치세력에 속하고, 노론의 일원이었지만 송시열의 명분론을 불신하였다. 송시열의 명분론은 중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삼고, 화이론(존화양이론尊華攘夷論. 중국을 존중하고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뜻으로, 조선시대 성리학적 명분론에 입각해 취한 대외정책)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을 특히 사명으로 삼았는데, 김만중의 경우는 중국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고, 인륜의 질서를 분명히 하는 것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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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김만중의 구운몽 2
  • 구운몽>을 지었다는 것이 최근 밝혀졌다.) 정규복 진경환, 위의 책. p. 43) 저작 동기의 저작 동기는 와도 상관관계를 갖는다. 의 저작을 통해서 의도했던 것이 실패하고 보니 서포에게는 날로 적막한 생활뿐이었다. 여기서부터 서포에게는 제 2의 저작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나손선생추모논총간행위원회, 『한국문학작가론』, 현대문학, 1991. p. 584김만중은 어머니의 남다른 가정 교육에 힘입어 성장하였다. 그의 아버지 익겸

  • 구운몽의 구조와 그 중층적 의미
  • 구운몽 연구」 ( 고려대 출판부, 1974)로 묶어 내었는데, 이는 70년대까지의연구에서 가장 주목되는 성과였다.특히 그의공사상설은 작품 이해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 놓는 중요한 성과였다. 그런데 80년대 들어 김일렬과 조동일에 의해사상설에 대한 체계적 반론이 제기되고, 김일렬(1981), “구운몽의 신고찰”, 한국고전산문연구, 동화문화사.조동일(1983), “구운몽과 금강경, 무엇이 문제인가?”, 김만중연구, 새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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