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 독서보고서 - 팔꿈치 사회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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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 독서보고서
팔꿈치 사회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 되는가)
오늘날 우리가 사는 사회 속에서 경쟁이란 무엇인가? 떠오르는 것은 서로간의 피비린내는 싸움과 남을 이겨내고 살아남으려는 모습으로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과연 경쟁이란 어떤 것인가? 물론 나의 삶 속에서도 알게 모르게 경쟁하는 모습을 당연시 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과거 가난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서 오늘날과 같은 큰 발전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능력있는 이를 원했기에 경쟁이 당연시되어가고 강자나 재능 있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는 정글과 같은 혹독한 사회의 모습이 현재 우리나라의 모습이라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교회에서도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경쟁을 부추겨서 아이들에게 가르칠때가 있다. 성경말씀을 외우게 한 뒤 달란트를 주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형태를 보며, 교회에서도 경쟁의 모습이 있다는 것이 씁쓸하게 느껴진다. 경쟁이 죄악시되는 것만은 아니지만, 경쟁이라는 것은 얻는 자와 못 얻은 자라는 모습이 나타날 수 밖에 없기에 아이들에게도 교회가 단순히 사회와 다를 바 없다 생각되어 실망될 것이다. 나 또한 어릴 적 성경 시험을 보고 나면 교회에서 주는 것을 얻는 이들은 얻지만, 못 얻는 이들은 크게 낙담하며, 부러워 하는 표정을 짓던 모습들이 떠오른다. 책에서 매우 인상깊은 구절이 있었는데 책의 제목이기도 하는 독일에서 유래된 “팔꿈치 사회”에 대한 묘사에서 달리는 도중 절묘한 반칙으로 인해 승리를 얻고, 이러한 반칙 행위가 사실상 사람들의 시선에서 없어지는 것이다. 오늘날 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책에 이름을 남겼던 정복자, 황제, 대신들이 떠오르곤 한다. 역사 속에서도 오늘날처럼 경쟁하는 모습이 있었을 것이다. 과거 경쟁의 모습은 죽고 죽이는 잔인한 사회이지만, 오늘날의 모습 또한 살아남기 위해 남을 누르고 일어서는 잔인한 사회일 것이다.
이러한 경쟁의 모습이 역사 속에서 뚜렷히 나타나는 것은 난세 즉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 위진남북조 시대나 일본의 센고쿠(전국)시대와 같은 모습이 아니였나 생각해본다.
살아남기 위해 계략과 전략으로 남을 죽여 살아남고 한 발짝이라도 잘못 걸으면 죽게되는 비정한 현실이 바로 이러한 경쟁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보며, 서글프게도 지금은 칼이나 무기로 죽이는 시대는 아니지만, 오늘날에도 경쟁사회라는 모습으로 살아남기 위해 남을 제치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그 시대를 살아가던 이들과 무엇이 다를것인가?
시험전쟁으로 인해 성적을 못 이루는 학생들이 자살하는 사회, 하루살이라는 말이 있듯이 하루 일해 하루 먹고 살며 희망 없이 살아가다가 결국 죽어나가는 사회, 경쟁은 자기와 같이 있는 상대를 꺽어누르는 것이 옳은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회 이것이 정말로 경쟁하는 사회인것인가?
이 책은 한국 사회에서 경쟁의 모습들을 잘 나타내고 있다. 또한 단순히 경쟁의 부정적인 면만 비판하는 것이 아닌 본래의 의미에서 벗어나 엉뚱한 모습으로 변질되어있는 사회를 날카롭게 알려주고 있기도 하다. 살아남고자 노력하며 남을 누르려는 행위는 정당하지만, 남과 협조하고 협동하여 성취해나가는 것은 이상적이며,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비웃는 사회의 모습들을 보며 이것은 인간적인 삶을 살고있다고는 할 수 없다. 글쓴이는 오늘날 경쟁이라는 모습을 다시 한번 우리에게 제시한다. 경쟁은 오늘날 우리가 하고 있는 것과 같이 서로 죽고 죽이는 살벌한 모습이 아닌 서로가 협조하여 이뤄나가는 것이다. 서로가 적게라도 다 같이 이룰 수 있는 사회, 개인주의적인 모습이 아닌 공동체 속에서의 나의 모습이 있는 사회가 바로 그것이다. 과연 오늘의 모습처럼 서로가 남을 이기려고 한다면 결국 승자가 생길것인가? 오늘날 교육에 대한 문제에서 비판이 매우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의 교육이 단순히 배움의 길이 아닌 동급생들과의 대결로써의 모습들을 우리는 자주 느끼고 느껴왔다. 성적을 비관하여 자살하는 학생들의 기사는 이제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닌 익숙해져왔다. 이러한 서로를 누르고 눌리는 교육의 모습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배울 것인가? 그리고 또한 이러한 계속해서 상대를 누르려는 모습들이 나타난다면 이러한 사회는 난세처럼 혼란하고 건강한 사회일 리가 없다. 끝으로 저자는 여러 매체 속에서 나타나는 사랑의 모습과 인간의 가치가 나타나는 모습들을 그려내며 마친다. 이러한 모습이 단순히 어린 아이들의 상상 속에서나 등장하는 완벽한 질서의 사회라며 조소할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이러한 모습이 비록 완벽히 재현되는 것은 어렵겠지만, 적어도 반 아니 하나라도 실천될 수 있는 사회가 점차 형성되어지길 바랄뿐이다. 단순히 이러한 모습을 꿈꾸는 것이 이상주의자들의 망상으로써 조롱당하지 않고 세상을 인간다운 사회로 만들어가는 것이 그것이 역사 속에서 인류의 문명사회가 혹은 인류가 꿈꾸어왔던 모습이었으리라 생각해본다. 도원명의 무릉도원이나 유럽의 유토피아처럼 이러한 모습이 단순히 상상 속의 세계로 되질 않길 바랄뿐이다. 나는 신학생으로써 이 책을 읽고서 한국교회사를 읽으며 구한말부터 역사의 혼란한 시기 속에서 한국교회는 어린 아이처럼 배워가며 겪어가며 성장해나간다. 오늘날 한국교회 또한 우리나라의 급속한 경제 발전과 더불어 교회 또한 유례가 없을 성장을 하였지만, 점차 오늘날에는 교회가 점차 무너지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교회에서 존재하는 본래의 모습을 상실한 경쟁의 모습을 고쳐나가고, 경쟁의 사회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수고하고 짐진 자들과 같이 세상에서 고통받고 치이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교회가 앞장서서 그들을 위해 실천하는 것이 신학자로써 또는 목회자로써의 할 일이라 생각된다. 생각해보면 예수께서도 당시 유대 사회 속에서 소외받고 경쟁은 아니였지만 권력층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약하여서 사람다운 대접을 못 받는 이들을 위해 실천하셨던 것처럼 나 또한 신학생으로써 행하여 할 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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