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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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장애인 정책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앞서 장애, 장애인을 알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새로운 것을 알았다기보다 잊고 있었던 것을 깨달은 느낌이다. 이 책은 장애, 장애인을 인문학적으로 접근했다고 쓰고 있다. 과거 문헌 속에 장애, 장애인을 살펴봄으로서 전통사회에서 장애, 장애인을 알고자 하였다. 장애, 장애인은 역사성과 사회성을 가진다. 과거에는 장애였던 것이 이제는 장애로 인식되지 않기도 하며, 사회구성원 다수가 장애로 인식하지 않음으로서 장애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도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쓰는 안경이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책의 내용은 우리 조선의 선비들께서는 대단한 인권주의자들이였던 것 같다. 세종 때 박연은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장애인 복지론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고 보니 출산한 종의 남편에게까지 출산휴가를 줬던 것도 역시 세종 때였던 것 같은데 선비들께서 인권론자인건가? 아님 세종께서 앞서가는 공공 복지론자인건가? 한마디로 이 책은 역사 속 장애인의 모습에 대해 다뤘다. 따로 장애인들에 대해서만 다룬 기록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역사적 타당성을 지닌 자료들 외에 구전문학이나 야담, 재담, 개인편찬지 등 다양한 곳에서 자료를 취했다. 시대가 명확히 기록되지 않는 이야기들도 많긴 한데 주로 조선조에서 자료를 취한 것 같다. 읽다보면 조선조가 참 살기 좋은 사회이고 사회복지제도도 ‘덕’측면에서 잘 정비되어 있으며 지역사회 복지쪽으로는 뭐 더 손 댈 부분도 없어 보인다. 고을에 굶어 죽는 자가 있으면 고을 수령에게 덕이 없는 거라 하여 중징계 했다는 얘기는 상당히 미담이다.
조선시대 세종 때에 세종이 정치를 잘 해서 나라 전체가 굉장히 풍요로웠는데, 단순히 그것에 그치지 않고 그 당시에는 생각해내기 어려웠던 복지에 대한 투자를 했다는 것에 감명을 받았고 현대사회에 와서도 복지정책은 완전하지 않고(우리나라의 경우는 더더욱), 특히나 장애인의 경우는 사회적인 편견이 자리잡고 있어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조선시대가 우리나라의 암흑기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이런 점은 본받아야 할 것 같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인식도 선진국이고.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이 사회에 대한 기록도 이백년 후에는 대단한 이상국가로 남아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저자가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수준의 현주소가 아니라 그들을 대하는 인식이 오히려 하락했다는 것이다. 저자가 조선시대 사람들은 장애인의 신체적 특징으로 농담을 하긴 했어도 그들을 경멸하고 피하진 않았다고 하는데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나중에 자료를 보는 저자의 관점이고, 그 당시에 어쨌든 그들이 공공장소에서 공공연한 모욕을 당했다는 분명한 얘기 아니려나. 그들을 향한 농담이 기록으로 남아있을 정도라면 꽤나 그런 농담이 빈번했을 거 같은데. 거리끼고 숨기지 않았다는 관점에는 수긍도하지만. 아무튼 과거 경증장애인의 경우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했다고 한다. 중증장애인의 경우 국가와 가족의 도움을 받았고. 그러던 것이 근대사회에 접어들면서 ‘효율성이 중요한 사회 잣대, 사실 사회 잣대라기보다 자본의 잣대다. 가 되면서 장애와 장애인은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과거 국가에서는 장애인에 대하여 각종 세를 면제해주기도 했으며, 구휼의 대상으로 삼아 노약자와 함께 사회가 보살펴야할 존재로 보았다. 가끔은 잔치를 열어주기도 했다.(심청전을 보면 알 수 있다.) 전통사회가 장애, 장애인을 대하는 것이 오늘날 보다 나은 것이다. 그러나 여성 장애인에 대한 처우에 있어서는 예외다.
공동체가 짊어지고 나누어야 할 몫이던 것이 공동체사회가 깨어지면서 장애는 개인의 짐으로 지워졌다. 그리고 현대, 80년대에 이르러서는 각종 시설이 난립하였고 장애, 장애인을 격리하는 것으로 우리 사회에 장애, 장애인은 존재하지만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조금 놀라운 사실은 장애인이란 단어를 쓰게 된지 30년이 못된다는 것이다. 80년대 초반 보건복지법이 만들어지면서 사용되었다는데 그전까진 공공연하게 불구자란 말을 썼다는 것이다. 과거보다 못한 오늘의 장애, 장애인에 대한 정책 그리고 인식이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장애, 장애인도 이 사회의 일부다. 그들에 대한 지원 폭은 당연히 넓어져야 하지만 그 폭이 살만큼만 받아라식이 아니라 자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럴려면 저축도하고, 계획도 세우고 그래야는 것인데 현행법이 장애인 자활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 주는 돈 아깝다 생각하지?
마지막으로 장애인 이야기를 하자면 그들에 대한 우리의 ‘시선’에 대한 논의를 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곤 하지만 우리는 과연 장애인을 아무 편견 없이 바라보고 있을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친척중에 장애를 앓고있는 친척이 있다. 그래서 나는 장애인에 대해서 거리낌이 없을꺼라고 생각해도 친척이니까 많이 보고 만나고 해서 조금 괜찮은것일 뿐이지.. 다른 타인이 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겉으로는 괜찮은척 잘 대하겠지만 무의식 속에는 약간, 아주약간의 이질감을 느끼는것 같다, (물론 그게 옳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장애인들에게 당혹스러운 것은 어린아이들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장애인들을 보면 괴물같이 생겼다느니 하면서 대놓고 막 울어버리면 장애인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정말 나 같으면 아무리 아이라도 너무 비참하고 나에대해 다시생각하게 되고 창피할 것 같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장애인들에게 이질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 우리의 잘못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장애인들이 실제로 우리와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지 않는가? 그렇지만 장애인들을 보호한다면서 그들을 따로 보호시킴으로써 오히려 비장애인과 장애인들 사이가 더욱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는 책은 제목 그대로 장애인이건 아니건 모두 버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나라 역사를 고찰함으로써 증명한다.
사실 조선시대에만 해도 장애인은 특별한 인간이 아니었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함께 지내왔고 그들도 사회생활을 하는 ‘정상인’이다. 오히려 오늘날의 우리들의 이분법이 잘못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자기 몸을 스스로 건사하지 못할 정도로 심한 장애는 보호받아야 한다. 그렇지만 장애인도 우리와 같은 인간인데 그들을 보호시설에 집어넣어 ‘보통사람’과 다른 범주로 취급함으로써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생긴 것은 아닐까, 아니면 사회구조 자체가 자본주의로 넘어오면서 유능력할수록 고소득적이 되기 때문에 일할 수 있는 사람일수록 사회적 평판이 좋았는데,(혹은 경제적 수준이 윤택해졌는데) 장애인은 신체의 문제상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능력할 수 없었고 유능력하지 못하다는 것은 고소득으로 이어질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사람들에게 "우리와 다르다=함께 생활하지 못한다"는 편견을 주어, 예전(조선시대)보다 오히려 더 장애인이 사회의 그늘로 숨어들게 되는 계기를 부여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사람들의 인식에 자리 잡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현재까지 지워지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다.
참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의 수준이. 그리고 다시 한 번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시선’에 대해 돌이켜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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