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월(素月) 김정식 - 작품 경향과 변모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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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소월(素月) 김정식
1. 생애
소월 김정식은 1902년 9월 7일 평북 구성에서 공주 김씨 문중의 장손으로 태어났다. 소월의 부친 성도는 소월이 두 달 되던 1904년 처가 나들이를 가다가 사소한 시비 끝에 당시 정주와 곽산 간을 잇는 철도 공사의 일인 목도꾼들에게 심한 폭행을 당하게 되었는데 그 일로 정신 이상을 일으키고 이후로 일생동안 폐인이 되었다. 소월의 일생에 있어서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의 하나로 그의 첫째 숙모 계희영이 있다. 그녀는 지방 토호의 딸로서 신학문에도 일찍 눈을 떠서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언문을 깨우쳐 주었다. 그 덕택으로 계희영은 많은 고대 소설과 설화를 탐독할 수 있었고 이러한 지식은 후에 소월 문학의 형성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1909년 소월은 남산 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신식교육을 받게 된다. 1915년 남산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4월 오산학교에 진학한다. 이 때 일생동안 스승으로 모시게 된 안서 김억을 만나 문학에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당시 교장이었던 이승훈 선생이나 교사였던 조만식 선생의 영향을 받아 시야를 민족이나 국가차원으로 넓히게 된다. 1916년 14세 되던 해에 홍단실과 결혼한다. 1919년 3ㆍ1운동의 여파로 오산학교가 강제 폐교된다. 그 후 3여년을 집에서 놀던 소월은 완고하기 그지없던 조부의 고집을 꺾고 서울배재학교 5학년에 편입, 1923년 배제 제8회로 졸업한다. 소월의 조부는 그의 아들이 정신이상자로서 폐인이 된 이후 소월이 가문을 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소월이 외지로 나가는 것을 적극 반대하였다.
이후 일본 도쿄 상대 예과에 입학했으나, 가산이 기운 데다 9월 관동 대지진으로 귀국, 중퇴하고 말았다. 처가가 있는 구성 남시 방현에서 23세 때(1925)부터 사망하기까지 10년간 동아일보 지국장 일을 보았으나, 경영난으로 실패한 뒤 심한 염세증에 빠졌다. 1930년대에 들어서 작품활동은 저조해졌고 그 위에 생활고가 겹쳐서 생에 대한 의욕을 잃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34년에 아편을 술에 타서 마시고 자살하였다. 오세영(2000), 『김소월, 그 삶과 문학』, 서울대학교 출판부, 9~31쪽
소월은 오산 학교 때의 스승 안서 김억에게 영향을 받아 시를 썼으며, 오산 학교를 쉬고 있던 1920년(18세) 3월 「창조」지(통권 5호)에 ‘낭인(浪人)의 봄’ 등 5편의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고, 1920년 7월 「학생계」에 ‘먼 후일’을, 1922년 「개벽」지에 ‘진달래꽃’을 발표함으로써 문단의 이목을 끌었다. 그 후에도 계속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등을 발표하였고, 이듬해인 1924년「영대」지 3호에 ‘산유화’를 비롯하여 ‘밭고랑’, ‘生과 死’ 등을 차례로 발표하였다. 1925년에는 창작시 127편을 담은 시집 「진달래꽃」을 냄으로써 크게 각광받았다. 소월의 대다수의 작품은 1920~1925년에 씌었고, 구성으로 이사 가서 2,3년 후(1926년 후)부터 죽기까지는 몇 편의 번역시를 제외하고선 거의 창작 활동을 중단하였다. 김봉군 외(2005), 『한국현대작가론』, 민지사, 79쪽
2. 작품 경향과 변모 과정
소월은 시대와 세상에 대한 관심보다 개인적 아픔을 드러낸 서정시 위주의 창작을 주로 하였는데 대표적인 시로 <진달래꽃>, <먼 후일>,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못잊어>, <산유화>, <접동새> 등을 들수 있다.
소월의 작품 경향은 시집 ‘진달래꽃’과 그 이후로 나눌 수 있다. 초기 시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섭대일 땅이 있었다면([개벽]40호, 1923.10) >, <나무리 벌의 노래>, <옷과 밥과 자유(1925)> 등에서 현실참여적 시각을 간간히 보여왔던 시인은 후기 시에서 식민지하 민족의 빈궁이나 한계상황으로 관심의 폭을 더욱 넓히게 되는데 이 시기의 시에는 시인의 현실인식과 민족주의적인 색채가 강하게 부각되고 있다. 민족혼에 대한 신뢰와 현실긍정적인 경향을 보인 대표적인 시로는 〈들도리〉(1925)·〈건강(健康)한 잠〉(1934)·〈상쾌(爽快)한 아침〉(1934)를, 삶의 고뇌를 노래한 대표적인 시로는 〈돈과 밥과 맘과 들〉(1926)·〈팔벼개 노래〉(1927)·〈돈타령〉(1934)·〈삼수갑산(三水甲山)―차안서선생삼수갑산운(次岸曙先生三水甲山韻)〉(1934) 등을 들 수 있다. 한국학 중앙 연구원 (http://www.aks.ac.kr)
3. 소월의 시 세계
3.1 전통적 율격의 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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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0년대의 문학사적 흐름 고찰
  • 소월이다. 김소월은 단지 민요시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서정시인으로서도 한국의 근대시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영대》 동인으로 문단에 데뷔한 김소월은 비록 이나등과 같은 작품을 많이 써서 20년대 초의 퇴폐적 허무주의 경향과 유사한 일면을 보여준 바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그는 민족적 정서를 전통적 가락과 결합시켜 당대의 국민감정으로 승화시키는데 성공했다. 그의 시집으로는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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